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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반감기 단축 따라잡지 못하면 '문맹'

디지털 세상에서는 실질문맹률의 개념이 더욱 중요해진다. 학교라는 제도교육을 마친 이후에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대한 학습을 게을리 한 결과가 선진국 최악의 실질문맹률로 이어졌다. 디지털 사회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을 더 단축시키고, 제도교육의 의존도를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명문대 졸업장보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따라잡고 학습해, 자신에게 필요한 용도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각광받는 미국의 정보기술 창업자들이 중도에 학위를 포기하고 창업에 뛰어든 배경이기도 하다.

  • 구본권
  • 입력 2015.04.29 05:58
  • 수정 2015.06.29 14:12
ⓒShutterstock / Sergey Nivens

천동설이 지동설에 의해 대체된 것처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변화한다. 부모세대는 태양계의 행성을 9개로 배웠지만, 지금 자녀들은 8개라고 알고 있다. 1930년 발견돼 태양계 9번째 행성으로 불린 명왕성이 2006년 국제천문연맹의 분류법 변화에 따라 행성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의술이나 화학합성물에 대한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식품첨가물이나 합성물이 유해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는 흔하다. 치명적 독성을 지닌 비소와 수은은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의료와 미용에 사용되었으며, 생태계 파괴를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돼 퇴출당한 디디티(DDT)는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기적의 살충제였다.

1962년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발간되고 10년이 지나서야 미국에서 DDT는 공식적으로 사용금지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기적의 살충제로 홍보, 판매되었다.

몇해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간 성인의 문서해독능력을 조사한 비교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로 드러난 적이 있다. 학습하기 쉬운 문자체계, 높은 교육열, 의무교육 체계 덕분에 누구나 편리한 문자생활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한국사회의 통념과 달리, 한국은 선진국중 실질문맹률이 가장 높았다. 취업서류, 봉급명세서, 약품복용법 등의 일상문서를 제대로 해독할 수 없는 성인이 많았으며, 특히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독해 능력도 조사대상 22개국가 중 꼴찌였다.

KBS의 실질문맹률 조사 보도 캡처

누구나 원하는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선 형편이 달라졌을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일찌감치 말한 대로, 디지털 세상은 정보의 힘과 역할이 커지는 지식정보사회다. 디지털 세상은 정보소통과 생산을 원활하게 만들어, 엄청난 양의 정보가 지속생산되는 환경을 만들었다. 방대한 규모의 지식 생산은 정보의 유효기간도 단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통사회에서 노인의 지위가 지금보다 높았던 현상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지녔던 것도 배경이다. 권위와 존경은 지식과 지혜를 요구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실질문맹률의 개념이 더욱 중요해진다. 학교라는 제도교육을 마친 이후에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대한 학습을 게을리 한 결과가 선진국 최악의 실질문맹률로 이어졌다. 디지털 사회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을 더 단축시키고, 제도교육의 의존도를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명문대 졸업장보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따라잡고 학습해, 자신에게 필요한 용도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각광받는 미국의 정보기술 창업자들이 중도에 학위를 포기하고 창업에 뛰어든 배경이기도 하다.

복잡계 물리학자 새뮤얼 아브스만은 <지식의 반감기>라는 책에서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변화하는 지식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를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빛나는 졸업장'을 갖고 있다 해도 디지털 세상에서는 계속 학습하지 않으면 이내 낡은 지식과 권위에 의존하는 구세대가 된다. 어느 분야에서든 계속 배워야 하는, 평생학습사회로 이미 들어선 까닭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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