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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지진 현장으로 떠나는 산악인 엄홍길 인터뷰

"불과 2주 전 다녀온 고르카 주 만드레 지역이 이번 지진의 진앙에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큰 걱정입니다. 모든 연락이 두절되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피해가 클 것 같아요. 불과 2주 전만 해도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며 기뻐할 정도로 축제 분위기였는데 이게 무슨... 일단은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적십자사가 하는 일을 도울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할 임무를 다 마치게 되면 학교를 지은 곳, 또 지으려고 했던 곳도 방문하고 산에도 올라가 둘러볼 생각입니다. 사실 정신이 좀 없고 정확히 얼마나 어떤 지역에서 머무르게 될지도 아직은 모릅니다. "

  • 손미나
  • 입력 2015.04.28 14:45
  • 수정 2015.06.28 14:12
ⓒ연합뉴스

손미나의 INTERVIEW | 산악인 엄홍길

"네팔은 제2의 조국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번 지진과 관련한 피해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질문을 던지자 마자 전화 너머로 길고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거 뭐 내가 지금... 내가 뭐 도저히... 휴..."

또 한번의 길고 거친 한숨 끝에 산악인 엄홍길씨의 힘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마디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에베레스트가, 히말라야가,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란 말이죠."

지난 25일 네팔에서 발생한 강도 7.8의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현재까지 사망 4천3백여명, 부상 8천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 외에도 수많은 봉우리와 트래킹 코스가 있고 지금은 여행객이 가장 많은 시기 중 하나다. 또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곳이 많아 정확한 피해상황은 아직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다. 그야말로 무섭게 쏟아져내리는 눈사태처럼 피해는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도 있는 상황. 산악인 엄홍길씨는 대한적십자사 긴급구호대장 자격으로 오늘 밤 자정 카트만두를 향해 출국한다.

아마도 엄홍길 대장은 지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미 짐을 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끔찍한 자연재해가 수많은 생명을 집어 삼켜버린 네팔의 비극을 그냥 두고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사실 나는 얼마전 엄홍길 대장과 만나 그의 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진행하는 여행 팟캐스트 <싹수다방>에 출연한 그는 2004년 7월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동료 산악인 박무택씨를 산에서 잃게된 가슴 아픈 사연을 들려주었다. 정상까지 무사히 올랐다 하산하던 중 설맹(눈쌓이 산에서 반사된 빛이 너무 강해 발생하게 되는 증상) 때문에 한발자국도 더 떼지 못하게 된 동료가 숨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기막힌 상황. 생명을 위협하는 눈보라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동료를 남겨두고 뒤돌아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는 산사람의 심정을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한국에 돌아온 그는 약 8개월에 걸쳐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특별훈련에 매진했다. 2005년 3월 '에베레스트 휴먼 원정대'가 다시 네팔을 향해 떠났고 두 달 후인 5월 시신을 찾는데 성공.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던 순간 모습 그대로 얼음조각이 된 동료의 시신을 발견하고 얼마나 울어야 했는지. 얼음을 다 깨어내고 시신을 수습하긴 했지만 결국 운구는 실패, 돌무덤을 쌓아 안치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이야기 끝에 엄대장은 어금니를 악문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나를 비롯해 현장에 있던 모든 이가 함께 울었다. 장담컨대 지금 네팔로 떠날 채비 중인 엄홍길 대장의 마음은 그때와 비슷할 것이다. 그가 제2의 고향, 나의 형제 자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네팔과 네팔인들, 또 산을 사랑하는 수많은 생명들을 하나라도 더 살리고 돕겠다는 비장한 각오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그의 가슴 속을 파고들 틈이 없으리라.

네팔에는 당연히 지인들도 많을 텐데 그들의 생사는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지금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 중에 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아는 사람들이나 우리 재단에서 지은 학교가 있는 지역들은 비교적 무사합니다. 그런데 불과 2주 전 다녀온 고르카 주 만드레 지역이 이번 지진의 진앙에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큰 걱정입니다. 모든 연락이 두절되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피해가 클 것 같아요. 불과 2주 전만 해도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며 기뻐할 정도로 축제 분위기였는데 이게 무슨 ... "

그는 다시 한번 말끝을 흐렸다. 팟캐스트 녹음현장에서 보았던 그 침통한 표정과 붉은 눈시울이 다시 떠올랐다. 엄홍길 휴먼재단은 이미 네팔 고산지대 오지 마을 12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완공했거나 짓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고르카 주 만드레 지역은 그들이 13번째 학교를 세우기 위해 최근 착공식을 진행했던 곳이다. 만드레는 해발 8163미터의 마나슬루 산 끝자락 해발 1410미터에 자리한 마을. 40년 전 세워진 작은 초등학교 하나에 의지하고 있던 어린이들을 위해 최신식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세울 예정이었다. 언론에서는 지금 현재 카트만두와 에베레스트 소식을 전하기에도 벅차지만 실제로는 고르카 같은 산악지대 작은 마을들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한 BBC기자는 고르카주에 다녀와 전하는 뉴스에서 '마을들이 완전히 파괴됐다. 어떤 의미에선 네팔 지도에서 지워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엄 대장의 마음은 그저 무겁기만 하다.

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긴급구호팀은 우선 카트만두에 도착해 네팔 적십자사, 세계 적십자사와 함께 피해 현황 파악 후 사태 수습 계획과 작전에 착수하며 다음주 월요일 추가 의료팀과 구호팀이 후발대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네팔로 향하게 된다.

"적어도 5월 말까지는 그곳에 있을 예정입니다. 88년에도 네팔에 진도 6.6의 지진이 났고 그때는 제가 그 현장에 있었지요. 해발 5400미터의 베이스캠프에 있었고 지진으로 인한 후폭풍을 맞았습니다. 비명 한번 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쓰나미 같은 눈사태가 밀려와 베이스켐프가 초토화되었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요. 그 당시 뉴스에서 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요. 그러니 이번 지진으로 인해 지금 산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지는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일단은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적십자사가 하는 일을 도울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할 임무를 다 마치게 되면 학교를 지은 곳, 또 지으려고 했던 곳도 방문하고 산에도 올라가 둘러볼 생각입니다. 사실 정신이 좀 없고 정확히 얼마나 어떤 지역에서 머무르게 될지도 아직은 모릅니다. 지금 저의 심정은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수만, 수십만 아이들이 고아가 되어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아져야 할 때입니다."

엄홍길 대장은 현재 네팔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구호품, 즉 지붕을 잃은 자들을 위한 텐트와 이불, 침낭, 의류, 그리고 먹을 것과 의약품 등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 같이 가서 도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니 고마운 마음을 구호품 지원으로 대신해 주시면 좋겠다고. 엄대장은 부디 몸조심 하시라는 나의 당부보다 허핑턴포스트에서도 최대한 많은 지원의 손길을 모으기 위해 애쓰겠다는 이야기에 더 크게, 더 수차례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지구 반대편의 재난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세계는 좁아졌고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으며 이러한 일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던 네팔인들과 뜻밖의 사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수많은 지구촌 이웃과 친구들을 구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을 위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네팔 지진피해 성금 계좌

예금주 : 엄홍길 휴먼재단

은행명 : 우리은행

계좌번호 : 1006-380-118848

더 자세한 내용은 엄홍길 재단 사무처(02-736-8850)로 문의.

* 산악인 엄홍길씨가 동료의 시신을 찾아 에베레스트 산을 다시 오른 감동적인 사연과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르카주 작은 마을 학교 착공식 소식 등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는 이번주 일요일 업로드되는 팟캐스트 <손미나의 싹수다방>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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