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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으나 쭉 아름다웠고...좌절했으나 끝내 ‘부활' 30년

21일 밤 9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 건물 지하. 서재혁의 베이스 기타가 노래 ‘사랑하고 있다’를 변주하기 시작했다. 채제민의 드럼이 심장을 두드린다. 김태원의 폴 제페토 기타가 무궁무진한 소리를 내보낸다. 김동명의 음성이 반주를 압도한다. 록밴드 부활이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을 시작했다.

3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 모인 부활 멤버들. 왼쪽부터 베이스 서재혁, 보컬 김동명, 기타 김태원, 뒤쪽은 드럼 채제민.

■ 김동명과 부활의 소리

지난해 부활은 서른살 무명 가수 김동명을 보컬로 맞았다. “록밴드 ‘퀸’이 돌아온다면 나는 그들의 보컬이 되고 싶다”던 보컬 지망생 김동명은 그러나 스무살 초반 데뷔가 좌절되면서 일찍이 음악에 대한 꿈을 접었다.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면서 온라인 사이트에 노래를 실어 보냈던 것이 유일한 음악활동이었다. 그런데 상처 받은 삶을 달래며 시작한 이런 활동이 그의 음악 인생을 ‘부활’시켰다. 보컬 정동하가 팀을 떠나고 신해철이 죽고, 또다른 가까운 사람을 잃은 뒤 “너무나 절박하고 외로웠다”는 김태원. 그의 눈에 일본 밴드 엑스 재팬의 ‘포에버 러브’를 부르는 김동명이 눈에 띄었다. 김동명은 그렇게 부활의 10번째 보컬이 됐다.

이승철부터 정동하까지 부활의 보컬이 된다는 것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기량을 지닌 가수라는 인증과도 같았다. 금속성 고음과 발라드에 적합한 풍부한 소리를 갖춘 김동명은 앞선 보컬들의 무게에 눌리지 않기 위해 누구의 곡도 부르지 않고 매일 발성연습을 거듭한다고 했다. 김동명은 “난 밴드 중의 하나이길 바란다. 무대를 장악하려 하지 않는다. 고요하지만 내 느낌을 객석까지 보내는 보컬이 되길 원한다. 내가 스타가 되길 원했다면 날 안 뽑았을 거다”라고 잘라 말했다.

“승철이는 엑스(×)표 해라. 헷갈릴라. 오지도 않는다는데.” 멤버들과 선곡표를 들여다보던 김태원이 이렇게 말해놓고 기자를 보며 웃었다. “아, 감정을 실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활 30년 음악을 압축하는 이번 공연에선 김동명만 노래하지 않는다. 김태원의 설명에 따르면 “박완규, 정단, 이성욱, 김재희처럼 가난 때문에 헤어졌던 보컬들이” 지나간 부활의 음악을 함께 부른다.

■ 김태원과 부활의 음악

“부활은 가난했던 것이 다였다”면서도 김태원의 음악적 자부심은 여전했다. “9명 보컬들 중에선 자신의 이득을 위해 헤어진 사람도 있죠. 하지만 어떻게 헤어졌든 그 사람들이 나를 벗어날 길은 없을 거예요. 이승철이나 정동하가 부활 보컬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봐요. 난 그 친구들과 있었던 추억이 너무 아름다워서 시간을 주고 싶어요. 그건 갑자기 포옹하는 게임 같은 게 아니라 긴 시간 끝에서 문득 생각나게 될 거라고 보는 거예요. 하지만 가난할 때 더 그런 생각이 잘 나죠. 이번 공연엔 그런 보컬들이 와요.”

1985년 7월3일 결성된 부활은 1986년 이승철이 부른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담긴 2집 앨범이 30만장 넘게 팔리면서 처음 대중적 성공을 맛보았다. 헤비메탈 성향으로 출발했던 밴드는 이때부터 록발라드에 가까운 음악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태원은 “솔(soul)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은 음악을 처음 할 때부터 느껴왔던 고뇌예요. 염세적이고 폐쇄적이며 조울에 시달리던 22살 청년이 ‘사랑할수록’이라는 약간 밝은 음악을 썼더니 갑자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사람들은 밝은 음악을 좋아하는구나 알게 됐지만 알수록 그런 노래는 잘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털어놓았다.

젊은 팬들을 사로잡을 새로운 노래를 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곡을 쓰긴 하는데 이 곡이 과연 누구에게 아름다울 수 있냐는 의심을 한다”고 했다. 익숙한 상황이다. 김태원의 이론에 따르면 부활은 30년 중 20년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고 조명받은 시기는 10년에 지나지 않는다. “제가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상에 있었잖아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제 인생의 행복한 황금기였어요. 어느 정도냐면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지금 고백하는데 음악을 알릴 목적으로 예능을 했지만 그땐 노래는 한 곡도 쓰지 못했어요. 이제 제 나이가 50입니다. 기로에 서 있다고 느껴요. 이때 김동명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들어왔고 어떡하나 싶지만 고민하고 뒹구는 것 자체가 내 삶이죠.”

■ 부활, 가난한 30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30년을 넘긴 록밴드는 드물다. 드러머 채제민은 “우리가 최고”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부활의 역사는 좌절의 역사로 정리하는 게 더 빠르다. 멤버들은 1989년 이승철이 탈퇴하며 팀이 깨졌을 때, 1995년 4집이 전혀 팔리지 않았을 때, 2005년 또 해체 위기, 2013년 보컬 정동하가 팀을 떠난 일 등 부활이 겪은 위기의 순간을 짚어가며 30년 부활의 역사를 정리했다. “기타리스트 신대철이나 김대균이 날 보면 다 가진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내가 얼마나 고독하고 가난한지를 고백할 수는 없어요. 고백하는 순간 구차해지니까요.” 자정 무렵, 연습을 끝낸 김태원의 말이다. 연습할 때 김태원은 멤버들에게 자주 “줄이자”고 당부했다. 30년 콘서트는 오히려 관중들이 흥분할 만한 요소를 철저히 줄이는 방향으로 준비됐다. “뮤지션도 관중도 서로를 배려하거나 부추기지 않고 각자 즐기는 것이 부활 스타일”이라는 이유다.

5월1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여는 부활은 5월30일에는 미국 팜스프링스주에서도 기념 공연을 한다. 가을엔 미니 앨범을, 내년엔 14집을 낼 계획이다. 곡은 아직 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콘서트에 오지 않을까봐, 아니 그래서 또 상처 받을까봐” 불안하다. 앞일은 알 수 없지만 지금 부활은 계속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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