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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성장으로

요탐과의 대화 중 '외상 후 성장'(PTG; Post-Traumatic Growth)라는 말이 마음 속에 꽂혔습니다. PTG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PTSD는 큰 충격을 겪은 이들이 나중에 겪는 고통을 묘사한 말입니다. 여러 국민적 참사 이후 많이 회자되고 있는 개념이지요. 요탐의 그 다음 말은 제 마음을 더 세게 때렸습니다. "한국인들은 세월호 사건 이후 집단적 트라우마에 걸려 있는 것 같아요.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s guilt)을 다 같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이원재
  • 입력 2015.04.28 06:17
  • 수정 2015.06.28 14:12
ⓒ연합뉴스

최근 국제구호단체 이스라에이드(IsraAID)의 아시아지역 책임자인 요탐 폴리저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세계 각지 재난지역을 다니면서 구호활동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새터민(탈북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생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활동도 했습니다. (이스라에이드 상세 소개글 링크)

요탐과의 대화 중 '외상 후 성장'(PTG; Post-Traumatic Growth)라는 말이 마음 속에 꽂혔습니다. PTG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PTSD는 큰 충격을 겪은 이들이 나중에 겪는 고통을 묘사한 말입니다. 여러 국민적 참사 이후 많이 회자되고 있는 개념이지요.

거대한 재앙을 겪은 이들은 대부분 누구도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게 됩니다. 또한 누구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외상 후 성장은, 이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그 사람의 삶이 오히려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탐의 그 다음 말은 제 마음을 더 세게 때렸습니다. "한국인들은 세월호 사건 이후 집단적 트라우마에 걸려 있는 것 같아요.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s guilt)을 다 같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생존자의 죄책감'은 '생존자 신드롬'이라고도 불립니다. 큰 재난을 겪고 난 뒤 생존자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자신의 탓인 것처럼 자책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증상입니다.

전 세계 재난 현장을 돌아다니며 깊은 슬픔의 현장을 지켜본 사람의 진단이니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전 국민이 다 같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죄책감을 느끼는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라는 이야기지요.

세월호 참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마음 속 멍에로 남아 있습니다. 참사로 생긴 유족과 전 국민의 트라우마가 수습과정에서 더 큰 트라우마로 악화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저도 역시 트라우마, 또는 생존자 신드롬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일이지요. 글 한 줄 말 한 마디도 쉽게 내뱉을 수 없었습니다.

요탐이 전한 '외상 후 성장'(PTG)이라는 말에서 한 가지 중요한 희망을 떠올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고통을 극복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면, 국민적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의 변화에 힘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한국 사회 전체의 외상 후 성장(PTG)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 사회는 많고도 많은 참사와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그것들을 극복하고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생명과 물질적 기반이 모조리 파괴되는 참혹한 전쟁을 겪어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트라우마는 물질적 생존을 향한 강력한 에너지로 이어져 산업화를 향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쿠데타와 독재, 인권 파괴의 트라우마를 비폭력적 민주화로의 성장 계기로 삼기도 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성장하려면 그것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요? 속도와 눈 앞의 이윤을 절대적으로 숭상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트라우마 극복법 아닐까요? 거창하게 들리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국민 모두가 조금씩만 거들고 실천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한 학부모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이제 학원 안 다녀도 돼" 링크)

최근 저는 이런 생각을 좀 더 상세하게 정리해 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속도에서 지속가능성으로 -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본 한국경제 패러다임" 링크)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일본사회가 무언가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겪은 일이 헛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들었던 쓰나미 희생자 유족의 이야기입니다. 4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말 속에 한국 상황이 겹쳐 들립니다.

잊지 않았다면 변화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들의 고통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 이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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