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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한남스타일'과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예술계에서 일종의 '브랜드'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리다 곧 뽑히고 이동하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자가발전식 예술 공간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태도를 지금껏 꾸준히 유지하고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지금 가수 싸이와 시작된 역대 세 번째 명도 소송과 더불어 바로 얼마 전 이태원 공간에서도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힘들게 성취한 탄생 10주년을 최악의 상황에서 맞는 잔인한 봄날을 겪고 있다. 디자인, 나아가 문화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처한 문제는 단순히 커피 마시는 공간 하나의 소멸이 아니다.

  • 전종현
  • 입력 2015.04.28 05:56
  • 수정 2015.06.28 14:12
ⓒ전종현

'강남스타일'로 유명한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가 자기 소유의 서울 한남동 건물에 세든 카페 임차인과 계약 문제로 명도소송을 하고 있다. 13일에는 싸이 쪽 법률대리인이 고용한 사람들이 카페에 진입해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건물 5~6층에 입주한 ㅌ카페 주인 최아무개씨와 싸이 쪽 변호사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싸이와 새로 계약을 맺은 임차인 등 5명이 건물에 진입하려다 이를 막는 카페 쪽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카페 직원 1명이 병원에 실려 갔고, 카페 6층에 진입해 문을 잠그고 있던 싸이 쪽 사람 2명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퇴거됐다. - 2015년 3월 13일 <한겨레>

이 기사를 접했을 때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설마"였다. 한남동 지리를 잘 모르는 내게 기사 속 'ㅌ' 카페는 단 한 곳이었다. 요즘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한남동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 거리가 별칭을 갖기 전이던 2010년 5월 개장해 올해로 6년째를 맞은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 Drawing)' 말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공동 창업 멤버 중 한 명인 현대미술가 최소연이 2000년대 초부터 선보였던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권위적인 기존 미술관을 말 그대로 사진과 퍼포먼스로 접어버리는 '접는 미술관' 활동에 매료된 3명의 창업 멤버들은 각자 호명하는 명칭까지 삼성(삼성미술관 리움)과 탄(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고 레이나(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처럼 '접어'버릴 정도였다.

그들은 현실과 초월한 화이트 큐브와는 정반대로 예술, 관객, 전시 공간을 지역성과 밀접히 연결해 서로 소통하는 새로운 미술관을 꿈꿨다. 그런 실험 중 하나였던 '명륜동에서 찾다' 프로젝트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자 그 상금을 종잣돈 삼아 그들이 고대하던 미술관을 현실에 구현했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연명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 자가발전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방식이 당시 시작되던 커피 열풍을 적용한 예술 레지던시 카페였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두 달간 아티스트에게 카페 공간 전부를 작업실로 제공하고 작가는 공간이 자리한 지역에 영향을 받으며 카페를 창작물로 채우기 시작한다. 카페를 들린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 고객이자 예술을 즐기는 관람자의 역할을 동시에 향유하고 이런 관계의 결과는 전시를 통해 완성된다. 들릴 때마다 생생히 숨 쉬는 예술을 목격할 수 있고, 입주한 작가의 주제를 재해석한 드로잉 메뉴를 음료로 즐길 수 있으며, 테이크아웃드로잉을 거쳐 간 사람들의 소식과 카페의 전방위적 활동을 재능있는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인 자체 신문을 통해 생생히 알 수 있는 이 복합문화공간은 지금 생각하기에도 무척 파격적이고 기묘한 매력이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예술계에서 일종의 '브랜드'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리다 곧 뽑히고 이동하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자가발전식 예술 공간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태도를 지금껏 꾸준히 유지하고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실제 2006년 10월 삼성동에서 실험실 형태로 시작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2007년 5월 22일 성북동으로 이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도 공간을 유지하다 지금의 한남동과 이태원으로 차례차례 떠밀렸다. 두 번의 명도 소송과 함께. 그러면서도 2014년에는 이태원에 운영하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서점 섹션을 근처 'ㅊ'이란 공간으로 확장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지금 가수 싸이와 시작된 역대 세 번째 명도 소송과 더불어 바로 얼마 전 이태원 공간에서도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힘들게 성취한 탄생 10주년을 최악의 상황에서 맞는 잔인한 봄날을 겪고 있다. 대중 가수 싸이와 분쟁 중인 법적인 문제는 변호사가 아니므로 함부로 말하기 힘든 점이 있다. 하지만 디자인, 나아가 문화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처한 문제는 단순히 커피 마시는 공간 하나의 소멸이 아니다. 현재 테이크아웃드로잉 신문을 디자인하는 그래픽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의 권준호는 이렇게 말한다.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싸이의 법적 분쟁이 알려지면서 여러 매체에서 기사를 냈다. 그러나 누구도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갖는 문화적 상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란 소비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문화 역시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갖는 문화적 가치가 아닌, '영화 <건축학개론> 속 등장인물이 앉아 있던 공간에서 마시는 커피'의 이미지에 돈을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국민 가수 싸이라는 거대한 자본에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은 국민 가수에게 들러붙어 돈을 뜯어내려는 욕심 많은 세입자의 발버둥으로 치부하고 있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저항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무력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싸이는 이 공간에 대기업 계열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오픈한다고 한다. 100억여 원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문화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한가한 낭만적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문화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며 그들이 지불한 돈으로 거대 자본가 대열에 합류한 대중가수 싸이에게 자본의 지원 없이 자가 생산을 겨우 일궈낸 문화 공간의 가치를 존중하라는 요구는 지나치게 부당한 것일까. 전국에서 같은 맛의 커피를 판매하는 대형 커피 체인점에서 '문화 대통령' 싸이가 성취하고자 하는 문화적 가치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묻고 싶다."

이미 한남동 '꼼 데 가르송' 거리는 대기업과 거대 자본에 잠식된 지 오래다. 작은 규모로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장소가 테이크아웃드로잉이다. 싸이가 한남동에서 쟁취하려는 바가 기적처럼 유지해 온 '예술 레지던시 카페'를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로 교체하는 것이라면 '강남스타일'로 글로벌 스타가 된 대중 가수의 이 같은 무수한 노력을 '한남스타일'로 명명해 보는 건 어떨까. 그의 새로운 창작물, '한남스타일'은 얼마나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그 결과야말로 우리 사회가 문화를 소비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과의 인터뷰> - 2015년 4월 19일

현재의 분쟁은 이전 건물주와의 갈등에서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임차계약은 중요한 '약속'입니다. 저희는 새로운 장소를 결정하기까지 세심하게 진행합니다. 첫 번째 임차 계약서에 '임차인이 원할 시 매년 연장 가능'을 명시했기에 오래되고 낡은 건물의 내외부를 리노베이션하며 10~20년의 장기 계획을 품고 입주했습니다. 하지만 15~20년간 임차를 주겠다고 한 첫 번째 건물주는 저희가 리노베이션한 지 6개월 만에 비밀리에 건물을 팔면서 일본으로 사라졌고, 그 즉시 두 번째 건물주는 '재건축'을 이유로 저희를 내몰았습니다. 재건축의 증거로 영국 건축사가 작성한 재건축 설계도면을 법원에 상당한 두께로 제시했기 때문에 부득이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건축은 없었고 조정 후 2개월도 채 안 돼 건물은 현재 건물주에게 매각되었습니다.

현 건물주와의 분쟁에서 상대방에 대한 요구 사항이 무엇인가요?

갈등의 시작점은 임차인을 대하는 건물주의 태도 그리고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갑의 자세에 있습니다. 도시의 변화, 우리가 속한 지역 상황의 변화 속에서 어떤 건물주들은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들은 이윤을 더 찾을 방법을 생각합니다. 현재의 세입자보다 더 돈을 많이 주는 세입자를 들이겠다는 건물주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정당한 주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임대료를 올리겠으니 더 낼 수 있겠느냐는 제안조차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현 건물주의 요구는 '무조건 나가라'입니다. 일방적일 뿐 아니라 상당한 무리입니다. 지금 현 건물주는 자신의 건물에 합법적으로 세 들어 있는 세입자를 억압하고 거짓말하고 모욕을 주고 협박하고 소송을 걸고 폭력을 사용해 내모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건물주들의 폭력적 주장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쫓겨난 우리의 많은 이웃, 골목가게들이 있습니다.

법원은 어떠한 부분을 조정해주는 것인지요? 판결 일정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

본 명도소송은 첫 변론기일이 4월 2일에서 5월 8일로 연기되었습니다. 명도소송은 판결이 나오기까지 수개월 소요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명도소송 외에 건물주가 이 공간에 대해 제기한 수많은 소송 중 '단행가처분' 소송입니다. 단행가처분은 수개월~수년간 월세가 밀린 세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시 조치로, 저희처럼 본안소송인 명도소송이 있거나 월세가 한 달도 밀린 적 없는 건에 대해서는 그 요구 자체가 상당히 무리한 절차입니다. 지난 3월 6일 한차례 강제 집행을 받고, 같은 날 강제 집행 정지 판결을 받으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일주일 후 건물주와 새로운 임차계약을 했다고 주장하는 용역들에 의해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도 건물주는 폭력은 없었다며 언론 보도를 했고 단행가처분을 다시 신청함으로써 저희를 계속 압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강제집행대상이 아닙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불의를 만났고 이를 목격한 후 이의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건물주로부터 '돈을 뜯어내려고 버틴다'는 이야기가 횡행합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입장은 어떤가요?

일본의 경우, 건물이 붕괴하거나 멸실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임차인이 원할 시 재계약 거절의 사유가 없고, 유럽의 경우 기본 임대차 권리가 8년에서 12년은 보장된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최근 내린 판례를 인용하자면 기존 임차인이 영업하는 공간에 찾아오는 많은 단골의 '행복추구권'이 있으므로 건물주가 개인의 재산권만을 행사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임차인의 경영권이 보장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서울의 많은 동네는 투기자본의 타깃이 되어 프렌차이즈 상점들이 넘쳐나고 이런 과정에서 임대료가 2~3배로 폭등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한국은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빈약하므로 명도소송과 폭력사태가 난무하는 자본과 골목가게 간의 '분쟁지역'이 되는데요. 특히 저희 같은 문화 공간이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과 비교될 정도로 힘든 경우라고들 합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새로운 건물주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저희에게도 물어봐 달라는 겁니다. 건물주인과 세입자가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소장을 보내는 행태, 자리를 함께하고 쫓겨나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임대료를 올려야 한다면 저희에게도 가능한지, 한번은 물어봐 주길 바라는데 이런 기본권조차 무시될 뿐 아니라, 사람을 보내 저희 공간 직원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며 협박을 하는 등 인격적인 모욕을 왜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왜 공존하면 안되는 걸까요? 공존하기 싫으면 우리에게 왜 임대료를 받는 걸까요? 임대료는 매월 꼬박꼬박 받으면서 원만하게 영업할 수 있는 임차인의 기본 권리는 묵살하는 건물주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할 수도 있는데요. 향후 계획이나 대책이 궁금합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올해로 10년 차입니다. 이 모든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비전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직면한 문제가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의 이웃들도 같은 문제로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운 좋게 저희 공간만 안전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 척박한 토양에서 어떻게 문화가 싹트고 골목가게가 유지되며 문화예술이 꽃필 수 있을까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갖는 상징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신 것 같습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이곳을 방문하고, 체류하고 경험하는 분들에 의해 기억되는 유기체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사업장이겠고, 호기심 많은 방문자에게는 현대 미술을 목격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자 특색있는 카페, 레지던시에 지원하는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미술관, 지역 이웃에게는 산책길에 들러보면 재미난 동네가게일 것입니다. 예술계의 대안공간은 운영 위기로 문을 닫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맞닥뜨립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님은 저희가 '한국 예술계의 기적'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10년간 자가발전하고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라고.

P.S: 지난 19일 진행한 테이크아웃드로잉과의 인터뷰 이후인 4월 22일, 싸이 측은 당일 계획한 강제집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를 무대 삼아 펼치려던 싸이의 '한남스타일'은 잠시 소강 상태가 됐다.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가 양쪽을 중재했다는 소식인데 부디 쌍방 간의 현명한 대화가 시작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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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5년 05월호 'Insight'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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