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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를 또 안락사 시켜야했나

이런 행동이 오싹한 이유는 아내의 개를 처리하는 방식이 죽은 아내의 개를 안고 질질 짜는 것보다 훨씬 '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인칭 화자가 이런 행동으로 자신의 글을 마무리 짓는다면 그가 자기가 쓰는 이야기의 예술적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이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면 <나이트크롤러>에서 완벽한 화면 구도를 얻기 위해 교통사고 사망자의 시체를 옮기던 제이크 질랜홀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화장> 쪽이 더 끔찍하다.

  • 듀나
  • 입력 2015.04.23 14:20
  • 수정 2015.06.23 14:12
ⓒ리틀빅픽처스

듀나의 영화 불평 | 화장

김훈의 <화장>에 나오는 화자의 말을 믿었던 적은 없다. 원래 1인칭 화자란 거짓말쟁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이건 습관이다. 하지만 그 습관을 잊는다고 해도 그는 여러 모로 수상쩍은 인물이다. 이미 일상으로 굳어졌을 직업 묘사는 지나치게 자세하고 그가 남몰래 욕망하는 부하 직원을 향한 고백은 과도하게 정련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문학작품이 아니라면 나는 그가 자신의 진짜 감정이나 실제로 일어난 진부하고 뻔한 일을 은폐하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문학작품이라고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뭔가.

이런 의심에 불을 당기는 것은 그가 죽은 아내의 개 '보리'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는 아내가 입원한 동안 방치되어 있던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가 안락사시킨다. 그의 냉정한 어투는 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구체적인 행동이다. 아무리 변명을 붙여도 여기엔 귀찮음과 냉담함밖에 읽히지 않는다. (작가가 키우는 개 역시 이름이 보리이고 그가 보리라는 개를 주인공으로 한 책까지 따로 썼다는 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죽은 배우자가 가족처럼 키우던 개를 이렇게 처리하는 남자는 그냥 공감능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인물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아마 그것은 작품 내내 그가 감추려고 했던 비밀일 것이다.

이런 행동이 오싹한 이유는 아내의 개를 처리하는 방식이 죽은 아내의 개를 안고 질질 짜는 것보다 훨씬 '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인칭 화자가 이런 행동으로 자신의 글을 마무리 짓는다면 그가 자기가 쓰는 이야기의 예술적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이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면 <나이트크롤러>에서 완벽한 화면 구도를 얻기 위해 교통사고 사망자의 시체를 옮기던 제이크 질랜홀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화장> 쪽이 더 끔찍하다.

임권택의 <화장>을 보면서 영화가 위에 언급한 점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관찰했다. 이 소설을 각색한 사람들도 여기에 대해 생각은 했던 것 같다. 그 증거로 내가 앞에서 화자의 문제점으로 제시했던 것에 대한 알리바이가 여기저기 존재한다. 영화에는 부하직원 추 대리와 그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다. 그가 개를 안락사시킨 건 아내가 생전에 한 요청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고 있지도 않다.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 그의 책임은 사방으로 분산된다.

소설 속에서 나는 화자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내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 따른 것이지만 나는 이 인물의 재료를 소설에서 거의 완벽하게 끌어올 수 있다. 그만큼 재료가 단단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의 <화장>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떤 인물을 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안성기의 주름지고 고통받는 얼굴을 보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행동의 책임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넘어가고 변명만 남은 이 영화에서 골라낼 수 있는 것은 죽음, 질병, 욕망에 대한 익숙한 주제의 반복뿐이다. 그리고 개인의 경험이 이렇게 쉽게 일반화의 영역으로 옮겨간다는 건 결코 긍정적인 일이 아니다. 글쓰기 수월해진 평론가들은 좋겠지만.

다시 안락사 당한 개에 대해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는 보리가 살 수 있는 선택의 길이 심지어 소설보다 더 많다. 수의사는 입양을 제안하고 개 한 마리 정도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키워줄 것 같은 '이 거사'란 인물도 있다. 안성기의 얼굴을 한 주인공이 그런 행동을 당연시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보리는 소설이 지정해준 길을 따른다. 그리고 각색가들이 이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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