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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합법화 추진하는 베트남과 태국의 딜레마

Participants walk on a street during a gay parade festival, organized by gay rights groups, in Bangkok, Thailand, Sunday, Nov. 16, 2003. (AP Photo/Sakchai Lalit)
Participants walk on a street during a gay parade festival, organized by gay rights groups, in Bangkok, Thailand, Sunday, Nov. 16, 2003. (AP Photo/Sakchai Lalit) ⓒASSOCIATED PRESS

사이몬(47)과 노이(43)는 타이 방콕 시내 고급 주택가에 사는 게이 커플이다. 두 사람 모두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고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하이소’(Hi-Society·상류층)다.

영국에서 온 사이몬에게 물었다. 15년간 타이에 살면서 성소수자로서 차별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정말 관용적”이란다. 굳이 하나 들자면 ‘섹스 투어리즘’ 편견 때문에 (나이차가 좀 났던) 전 파트너와 관계가 약간 어려웠다고. 둘은 헤어졌다. 그리고 사이몬은 5년 전 노이를 만났다.

타이-영국 동성 커플이 베트남으로 날아간 이유

노이, 고향 치앙마이에서 대학 강사를 하다 외국 대사관 근무를 거쳐 지금은 외국계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한다. “집안에 동성 커플이 있어선지 거부감이 별로 없었”단다. “맞아, 노이 이모님이 레즈비언이셔!” 사이몬이 맞장구를 쳤다.

사이몬(오른쪽)과 노이는 영국-타이 게이 커플이다. 두 사람은 2년 전 베트남 주재 영국대사관에서 ‘시민연대’ 절차를 밟아 공식 커플이 됐다. 그러나 영국법으로만 보호받을 뿐 이들이 살고 있는 타이에서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두 사람은 2년 전 ‘시민연대’(Civil Union·법률혼에서 배제되는 성소수자에게 파트너십을 인정해주는 제도) 커플이 됐다. 절차를 밟은 곳은 베트남 주재 영국대사관. 영연방 네 곳 중 영국과 웨일스가 지난해 3월부터 동성혼을 합법화했으나, 이들이 등록할 당시에는 ‘시민연대’만 가능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시민연대 절차 가능’ 대사관 위치를 공지했다. 타이에는 없었다.

동성혼 합법화가 지구적 추세라지만 아시아는 여전히 탐탁잖은 분위기다. 아시아에서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한 국가로는 동성 간 사실혼을 인정하는 이스라엘이 있다. 아·태권에선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일부 주에서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한다. 4월1일 일본 도쿄 시부야구가 자치단체 재량으로 파트너십 인정의 돌파구를 열었지만, 사회 전반적 논의에서 앞선 건 대만이다. 그리고 동남아에선 베트남과 타이가 주도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1월 ‘동성혼 금지 조항’을 폐지했다. 동성혼 합법화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동성 결혼식장에 경찰이 나타나 식을 중단시키고 벌금을 물렸다. 이제 그 결혼식을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성소수자 운동에 적극 동참해온 베트남 작가 라나 트란(28)의 설명이다. 라나는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에) 취한” 현지 분위기를 전하며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정부는 2012년부터 관련법 개정에 착수했다. 그해 5월 법무부는 관계기관에 보낸 공문에서 “인권의 관점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이슈”라고 적었다. 두 달 뒤 법무부 장관은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틀을 고려할 때”라고 언급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후 속도가 빨라졌다. 국회는 성소수자를 초청해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줬고, 해외 학자들도 초청해 세계 흐름을 경청했다. 동성혼 금지 조항 삭제는 이런 과정의 1차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NGO ‘정보공유센터’(ICS)와 ‘아시아에서 LGBT로 살아가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유엔개발계획(UNDP)의 기여도 컸다.

“유엔인권위원회 이사국 희망과 관련 있을 것”

지난 3월8일 타이 방콕의 ‘여성의 날’ 행사는 페미니즘 운동과 깊이 연계된 레즈비언 단체가 주도했다. 최근 기안을 마친 타이 신헌법에 ‘젠더’ 개념이 도입될 예정인 가운데 성소수자들은 ‘젠더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ICS는 2012년부터 대학에서 성소수자 인권 포럼을 열기 시작해, 올해는 고등학교에서도 포럼을 열고 있다. 같은 해 시작한 성소수자 부모 대상 프로그램도 반향이 컸다. 올해 초 ‘게이&레즈비언의 부모와 친구들’(PFLAG) 모임이 결성된 건 큰 성과다.

“가족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극복할 대상이자 함께할 이들이다.” ICS 대표 따오민후인의 말이다. 따오는 3년 전 TV 토크쇼를 통해 전국적으로 커밍아웃한 베트남 ‘톱 게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성소수자 문제는 다른 어떤 (인권) 문제보다 진보적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부심이 담긴 이 말은 다른 관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인권 문제에 취약한 베트남이 유독 성소수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독일 함부르크 소재 지역학 연구소인 GIGA(German Institute of Global and Area Studies)의 조르그 위처만 박사는 “베트남 정부가 성소수자 단체의 압력에 굴복해 이 문제에 적극적인 건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유엔인권위원회 이사국 희망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실제 베트남이 법 개정에 착수한 시기는 인권위 이사국을 희망하던 때와 맞물린다. 2013년 11월, 마침내 베트남은 이사국으로 선출됐고 임기는 2016년까지다.

“베트남 시스템은 일방향이다. ‘다른 방향’은 없다. 정부가 지지하기로 한 이상 성소수자 반대 행사는 허용치 않을 것이다.” 종교단체의 반대는 없는지 묻자 라나의 답변이 그랬다. ‘다른 방향’이 없는 베트남 정치가 성적 다양성을 인정해가는 건 재미난 역설이다.

이제 타이로 날아와보자. 일전에 초대받아 간- 실은 초대해달라 졸라서 간- 성소수자 파티는 국제포럼을 막 마친 국제 게이들로 북적거렸다. 펀자비를 입은 파키스탄 게이는 지치지 않고 춤을 췄고, 게이라는 이유로 사형당할 수 있는 나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자비드는 줄곧 소파에 앉아 인도 게이의 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튀는 색의 롱지(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남자들이 입는 치마의상)를 곱게 두른 뷔는 피지에서 왔다. 대만에서 온 하이커 치우는 춤보다 ‘대화’에 집중했다. 그는 최근 성소수자 그룹에 포함되기 시작한 인터섹스(Intersex·간성,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성 혹은 잠재성을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다. 이들 사이를 타이 게이 엠과 밋 나잇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둘은 주최 쪽 스태프다. 타이 수도 방콕은 ‘게이 수도’이기도 하다.

혹시 ‘톰보이’를 아는가. 사내처럼 차려입은 여자. ‘톰’ 옆에는 여자친구 ‘디’(‘레이디’의 준말)가 있다. 톰의 정체성은 독특하다. 사내처럼 굴지만 현지어 여성 조사인 ‘카’를 포기하지 않는다. ‘레즈비언’도 아니란다. ‘디’는 레즈비언이거나 양성애자 혹은 전 남친과의 관계가 끔찍해 잠자리마저 헌신적이라는 ‘톰’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방콕 거리에서 애정 표현을 하는 커플을 보는 건 쉽지 않은데 그런 커플이 있다면 바로 ‘톰디’일 확률이 높다.

베트남톱게이 타오 Mr.Thao PFLAG(‘게이 레즈비언 부모와 친구들‘ 모임) 행사중 발언. Information Connecting Sharing (ICS) 제공

“직설법 문화가 아니라서 관용적으로 비친다”

지난해 말, 인터넷에 오른 영상 하나가 타이 사회의 관용을 도마 위에 올렸다. 지상철(BTS) 안에서 키스하던(장면은 안 담겼지만) 톰디에게 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따져물었고 “내가 ‘빠랑’(서양인)이라도 당신이 소리 질렀겠냐?”며 톰이 받아쳤다. ‘타이 전통’을 내세운 여성과 ‘개인 자유’를 내세운 커플 간에 언쟁이 오갔다.

승객들은 모두 ‘먼 산’을 봤고 상황을 정리한 건 ‘레이디보이’다. “톰보이라도 예의를 지켜야지! 인터넷을 봐봐. 공공장소에서의 애정 표현을 다들 비난하고 있다고.” 이후 BTS 쪽은 핫라인을 개설해 애정 행각 발견시 신고를 하라고 공지했다. ‘착하고 도덕적인’ 거리 만들기로 종결된 이 소란은 타이식 관용의 속살을 잘 보여줬다.

“겉만 보고 관용적이라는데, 성소수자들 삶의 수준을 봐야 한다. 소외계층, 지방으로 가면 (성소수자를 겨냥한) 강제결혼, 성폭행도 적잖다.” 레즈비언 단체인 평등실천연대(TEA) 활동가 타오는 타이 사회가 직설법 문화가 아니라서 관용적으로 비치는 거라고 말했다. 성소수자들이 진정으로 존중받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사회적 지위가 낮다 싶으면 행동거지가 좋아야 해. 민주주의, 계엄령 같은 도전적 의제는 삼가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성소수자라도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할 거야.” 6년 전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플라(29)의 말이다. 플라의 엄마와 이모 넷은 모두 성노동자로 살며 자식을 부양하고 생계를 일궜다. 플라가 15살 때부터 공장과 주말학교를 병행해 다니고 개방대학을 5년 동안 기를 쓰고 이수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실제로 타이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트랜스젠더인 ‘레이디보이’는 이 사회의 관용을 상징하지만 차별의 주 대상이기도 하다. 예컨대 섹스 투어리즘의 허브 파타야에 뜨는 단속은 트랜스젠더들을 겨냥할 때가 많다. 트랜스젠더 모델로 미국 뉴욕까지 진출한 사리나 타이조차 지난 2월 눈물을 글썽이며 인권위를 찾았다. 방콕 한 클럽의 문지기가 사리나의 신분증을 보고 출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타이에는 성전환자가 무수히 많지만 성별 정정은 허용치 않는다.

“형법과 민법을 건드려야 하는데 두 법은 한 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바이블이다.” 레인보스카이타이협회(RSAT) 사무차장 라피푼 좀마렁은 ‘왜 성별 정정 소송 사례가 없는가’라고 묻자 그렇게 답했다. 타이가 동성애를 비범죄화한 건 1956년. 그러나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라는 보건부의 공식 발표는 2002년에 나왔다. 2007년 헌법에 ‘성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최초로 넣었지만 지난해 쿠데타로 종이 조각이 됐다.

지난 1월 군정 의회 헌법기안위원회(CDC)는 ‘제3의 성’을 신헌법에 넣겠다고 밝혔다. ‘펫 사팝’, ‘섹스’보다는 ‘젠더’에 가까운 신조어다. CDC 부의장 수칫 분봉칸 쭐랄롱꼰대학 교수는 최근 신헌법 관련 포럼에서 “성정체성과 성적 활동의 다양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라피푼은 획기적 조치로 환영하면서도 절차의 복잡성을 짚었다. “관련법에 명시되려면 타이국립어학원에서 관련 신조어를 승인해줘야 하고 이를 법조계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한 절차가 될 것이다.”

베트남톱게이 타오 Mr.Thao. Information Connecting Sharing (ICS) 제공

“민주적 체제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2011년 9월 타이 인권위와 ‘다양한 성 네트워크’(Sexual Diversity Network)가 동성혼 합법화 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다음해 12월 정부는 ‘동성 커플을 위한 시민파트너십 구현 법안 작성위’를 꾸렸고 2013년 9월 ‘시민파트너십법’(Civil Partnership Act)이 몸통을 드러냈다.

법안은 “20살 이상 동성 커플은 시민파트너십으로 등록 가능”하며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타이인”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험, 연금, 세금 감면, 유산 문제 등 이성 커플에 해당하는 권리 사항도 모두 다뤘다. 단, 입양권은 허용치 않았다. 2013년 12월, 국회 논의와 통과를 기다리던 파트너십 법안은 반정부 시위대에 밀린 당시 잉락 친나왓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초당적 지지가 뚜렷한 사안이지만 늪에 빠진 정치가 발목을 잡았다.

동성 파트너십 법제화의 중요성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이몬-노이 커플 사례에도 잘 투영된다. 영국법으로는 보호를 받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타이에서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노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도 배우자 자격이 없는 사이몬은 어떤 종이에도 사인할 수 없다.

베트남톱게이 타오 Mr.Thao와 친구들. Information Connecting Sharing (ICS) 제공

레즈비언 운동가 추마폰은 다른 소외계층이 ‘우선 탄압’ 대상이 되고 있는 마당에 성소수자 인권만 옹호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한다. 지난 1월23일 ‘민주주의와 성정체성 표현(SOGIE) 권리 동맹’이 발표한 성명도 같은 맥락이다. 성명은 군정의 ‘개혁’에 협력하고 있는 일부 SOGIE 운동을 비판했다. 정당성이 부재한 법제화 과정이라는 게 그 이유다. 군정이지만 주어진 공간활용론에 호의적인 라피푼도 우려가 없진 않다.

“이 나라가 민주화 궤도에 다시 들어서면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들이 인정받은 게 비민주적 체제하에서였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게이 수도’를 세운 타이의 성소수자운동은 지금 고민과 분열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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