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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과잉시대 '쓰레기 유발자' 오명을 벗어라

  • 남현지
  • 입력 2015.04.23 11:04
  • 수정 2015.04.23 11:07
ⓒgettyimageskorea

[esc] 스타일

세계적인 매출 신장세 속 환경파괴 주범이라는 비난 벗어나기 위한 SPA 브랜드들의 노력

환경오염과 자원낭비 등의 문제로 비판받는 스파 브랜드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에이치앤엠 서울 명동 눈스퀘어점.

H&M, 해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표

2010년부터 유기농 면, 재활용 소재 제품 라인 발표

유니클로 자사의류 수거해 난민캠프 등에 전달

정리 컨설턴트인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는 ‘네벌 신사’다. 집 정리를 도와주거나 정리와 관련한 강연, 방송 출연 등을 하는 게 본업인 그가 입는 옷은 청바지 4벌과 옥스퍼드 남방 4벌이 전부다. 날이 쌀쌀할 땐 거기에 니트 하나를 덧입고, 겨울엔 외투 2벌을 번갈아가며 입는다. 계절별로 4벌 이상의 옷을 갖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들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하는데,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가 입기에 아래위 4벌은 모자란 게 아닐까?

“직업이 정리 컨설턴트라서 가정집 정리를 하러 많이 다니거든요. 가보면 정리할 때 제일 처치 곤란한 게 옷이에요. 가진 옷의 70%는 안 입는 건데, 언젠간 입을 때가 있을 거란 미련, 비싼 돈 주고 샀다는 후회 같은 것 때문에 버리지를 못하더라고요. 예전에 한 가구회사랑 작업을 하면서 150가구를 조사해보니까, 평균적으로 가진 옷이 남성은 125벌, 여성은 185벌이었어요. 입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는 옷이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아래위 각 4벌로 살아보는 실험을 한 지 이제 1년6개월이 넘어가네요. 이 옷들이 제 유니폼인 거죠. 해보니까 전 무척 만족스러워요. 뭘 입을지 고민 안 해도 되고, 옷 사는 데 돈도 안 들고, 집안 공간도 넓어졌거든요.” 윤 대표의 대답은 이랬다.

윤 대표가 한정된 옷만으로 생활하는 데 아이디어를 준 것은 ‘유니폼 프로젝트’다. 인도 여성으로 미국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시나 마테이켄은 2009년 5월부터 1년 동안 검은색 미니 드레스 1벌만 입는 실험을 했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광고계에서 일하느라 창의성이 고갈되고 윤리적으로도 진이 빠졌다고 느낀 그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꿈꾸며 이 일을 시작했다. 똑같은 옷이지만 매일 다르게 보이도록, 손수 만들거나 재활용하거나 기부받은 액세서리 등으로 365가지의 각기 다른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화제를 일으켰다. 그는 인도의 빈곤층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모금 활동도 벌여, 안 입는 옷을 사는 대신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이 있음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유니클로가 ’전 상품 리사이클 캠페인’을 통해 수거한 자사 의류를 네팔 난민촌에 전달하는 모습. 유니클로 제공

윤 대표나 유니폼 프로젝트처럼 옷을 두고 실용성과 윤리성을 고민하게 만든 건 스파(SPA: 기획·생산·유통·판매까지 모두 도맡아 하는 업체) 브랜드의 등장이다. 예술성에 무게를 둔 오트 쿠튀르나 유행을 창조하면서도 너무 비싸 선뜻 사기 힘든 명품 브랜드와 달리, 스파 브랜드는 평균 2주 만에 한번씩 매장에 걸리는 옷이 바뀔 정도로 유행에 재빠르게 올라타면서도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싼값에 옷을 구입할 수 있다.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이젠 1년에 8차례씩 컬렉션을 할 정도인 ‘패션 과잉’의 시대지만, 스파 브랜드가 쏟아내는 옷의 양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런 속성 때문에 스파 브랜드는 패스트푸드에 빗대어 ‘패스트 패션’, ‘정크(쓰레기) 패션’으로도 불린다. 미국의 갭,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에이치앤엠(H&M), 일본의 유니클로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다.

최신 유행의 옷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일까? 쇼핑중독자였던 엘리자베스 클라인은 책 <나는 왜 패스트 패션에 열광했는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당연히 패스트 패션 소비자는 다른 소비자보다 더 많이, 훨씬 더 많이 쇼핑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나도 거의 항상 에이치앤엠에서 쇼핑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갈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소가 풀을 뜯어먹듯 옷을 사고 있었다. 자라의 고객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열일곱번 옷을 산다.” 이렇게 사들인 많은 옷은, 한 철이 지나면 옷장 속에 처박혔다가 몇년 뒤 쓰레기통으로 가게 된다. 자원 낭비, 환경 파괴 우려만 있는 게 아니다. 스파 브랜드의 저렴한 가격은 저개발 국가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한 대가라는 지적도 거세다.

에이치앤엠 매장마다 비치된 의류수거함. 사진 박미향 기자

‘쓰레기 유발자’,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은 스파 브랜드들에도 부담이고 고민이다.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도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앞서나가는 건 에이치앤엠이다. 에이치앤엠은 지난 9일 영국 런던에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표했고, 14일엔 한국에서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라인’을 론칭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이 회사가 2002년부터 매년 4월 발표해온 것으로, 옷의 소재인 면화 등을 생산·가공할 때 사용하는 물, 염료, 살충제 등을 얼마나 줄여나가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라인’은 유기농 면, 페트병을 재활용한 재생 폴리에스테르 등 재활용 원단처럼 지속가능한 소재로도 얼마든지 예쁘고 트렌디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2009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선보인다. 2013년부터는 전세계 매장에서 의류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는데, 2년 동안 모은 옷이 1만3000t에 이른다. 정해진 에이치앤엠 피아르(PR) 매니저는 “우리가 쓰레기를 양산한다고 하지만, 실은 수거한 옷의 95%를 재활용한다. 중고시장에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거나, 재생 원단으로 만들거나 카시트 원단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에이치앤엠은 전세계 800개의 생산공장 노동자 85만명에게 2018년까지 공정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재활용 원단으로 만든 에이치앤엠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라인’

유니클로는 2006년부터 자사 의류를 매장으로 가져오면 이를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캠프 등 옷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전달하는 ‘전 상품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해, 2014년 9월말까지 53개국에 1000만벌 이상의 옷을 전달했다. 한국 유니클로에선 지난해부터 환경의 날인 6월5일, 재활용을 위해 유니클로 옷을 매장으로 가져다준 고객에게 청바지 밑단 수선 뒤 남은 천으로 만든 커피컵 홀더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하고 있다.

글로벌 스파 브랜드에 비해 에잇세컨즈, 스파오, 탑텐 등 국내 스파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관련 움직임은 아직 더딘 편이다. 패션 저널리스트인 홍석우 <스펙트럼> 편집장은 “기업이 커지고 매출이 많아지면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의 더 많은 감시와 비판, 올바른 길로 가라는 요구가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강하게 요구하지 않으면 기업은 이런 문제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파 브랜드의 노력은 인정해야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마케팅 전략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미현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최근의 마케팅 트렌드가 ‘공유가치 창출’, 즉 소비자가 힘을 합쳐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내자는 것이고, 스파 브랜드의 공익적인 캠페인도 이런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캠페인이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위한 ‘포장’이 아니라 실제 현실을 바꾸는 노력이 되려면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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