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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다 2020과 올림픽의 미래

평창. 삼년 전 삼수 끝에 동계올림픽유치를 따내고 흥분의 도가니였던 이곳은 2015년 현재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갈림길의 한쪽 끝은 아젠다 2020으로 다가온 근대올림픽의 거대한 변화흐름을 받아들여 합리적으로 분산개최를 실현하는 것이고 다른 한쪽 길의 끝은 높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절벽이다. 멈추어서든가 아니면 낭떠러지로 발을 옮기든가 두 가지 선택만 남아있다. 처음 분산개최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발끈했던 지역유지 분들은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대다수의 시민들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올림픽만 유치하면 당장 잘 살게 될 거라는 믿음에 균열이 가고 있다.

  • 정용철
  • 입력 2015.04.23 10:36
  • 수정 2015.06.23 14:12
ⓒASSOCIATED PRESS

<기획연재>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가 대안이다 (6) | 아젠다 2020과 올림픽의 미래

지난 2014년 12월 9일 IOC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올림픽 아젠다 2020은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에겐 그리 새로운 아젠다가 아니다. 바흐 위원장이 IOC 위원장에 출마하면서 발표했던 올림픽 매니페스토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왕년의 펜싱 금메달리스트답게 그는 빠른 스텝과 경쾌한 칼놀림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근대올림픽의 생사를 가를 중요한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그의 칼끝은 IOC 위원들의 부정부패와 선수도핑과 같은 올림픽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그러나 그가 칼을 든 목적이 케케묵은 올림픽 정신의 회복이나 IOC가 그동안 저질러 왔던 갑질의 포기에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뻣속까지 올림픽 귀족인 바흐 위원장의 목표는 지금처럼 거대한 자본으로 잔뜩 부풀어진 올림픽 패권을 오랫동안(가능하다면 영구히) 지속하는 데에 있다. 이미 북유럽 국가들은 막대한 재정부담과 환경파괴 같은 올림픽 부작용을 간파하고 유치경쟁에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경쟁에 남은 두 나라가 모두 중국과 카자흐스탄과 같은 동계스포츠 신생국이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앞으로 IOC는 더 노골적으로 개발도상국의 분산개최를 통해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유인책을 내놓을 것이고 불행히도 아직도 개발주의를 신봉하는 동남아시아나 중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까지도 그 올가미에 걸려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결국 올림픽 아젠다 2020의 핵심 키워드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 지속성은 IOC의 올림픽 지배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구현된 런던 올림픽

물론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그리 나쁜 말은 아니다. 특히 환경적인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2010년 런던 하계올림픽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에 충실했던 모범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있었던 시드니 올림픽, 베이징 올림픽도 말로만 그린올림픽을 표방했지만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로부터의 환경평가점수에서 낙제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반해 런던 올림픽은 18세기 산업혁명의 시발도시였지만 심각한 오염으로 인해 쓰레기 매립장으로 버려졌던 스트래트포트(Stratford)에 친환경 파크를 건설하고 올림픽 경기장을 지어 명실상부한 그린올림픽을 성취했다. 그뿐만 아니다. 토양복원기계까지 동원해 카르, 납으로 오염되었던 땅을 야생동물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정화시켰고 철거된 건물의 폐기물도 90% 이상 재활용했다. 경기장들도 설계부터 조명과 통풍을 고려해 지어졌고 풍력이나 냉열병합 발전을 이용한 발전시설을 적극 설치하였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올림픽 이후 런던 올림픽 파크를 그린필드에서 브라운필드로 전환해 새로운 공업단지로 조성했다는 점이다. 경기장 사후활용방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강원도에 꼭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사후활용방안은 경기장을 지으면서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철학을 바탕으로 경기장 공사 첫 삽을 떼기 전부터 계획하고 의지를 가지고 실천해야 (간신히!)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올림픽 아젠다 2020의 최대수혜자 - 도쿄와 알마티

IOC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개최국이나 유치를 신청한 나라들에게는 예산을 줄이고 환경파괴도 최소화할 수 있는 호기가 생긴 셈이다. 예산절감과 환경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걷어찬 평창과는 달리 도쿄 올림픽위원회는 개최국 선정 시 제출했던 원안을 수정해 IOC의 승인을 얻어냈다. 도쿄 올림픽의 원래 계획은 선수촌 반경 8km 이내에서 모든 경기를 치루겠다며 경기장을 무려 22개나 새로 짓는 안이었다. 그러나 아젠다 2020으로 바뀐 근대올림픽의 변화를 발빠르게 받아들여 무려 400km 떨어진 오사카에서 농구예선전을 치루는 등 기존의 경기장을 이용한 분산개최를 통해 10억 달러 정도의 예산을 절약하게 되었다. 심지어 2022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고 중국의 베이징과 경쟁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마저 최근 예산을 대폭 줄인 변경안을 제시했다. 새로 짓겠다던 두 개의 활강장 건설계획을 철회하고 기존에 있는 시절을 활용한다는 제안이다. 선수촌의 수용규모도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이를 통해 운영비와 인프라 건설비를 합해 총 5억 5천불 수준의 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2020년과 2022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올림픽 아젠다 2020은 선언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패권주의의 한 가운데에 있는 근대올림픽 앞에 놓인 오늘의 이야기인 셈이다. 더구나 2020년을 기점으로 특별히 생겼다가 없어질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근대올림픽이 존재하는 한 더욱 강화되면 되었지 사라지지 않을 큰 흐름인 것이다.

답답한 평창, 무능의 조직위, 그리고 불통의 대한민국

평창. 삼년 전 삼수 끝에 동계올림픽유치를 따내고 흥분의 도가니였던 이곳은 2015년 현재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갈림길의 한쪽 끝은 아젠다 2020으로 다가온 근대올림픽의 거대한 변화흐름을 받아들여 합리적으로 분산개최를 실현하는 것이고 다른 한쪽 길의 끝은 높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절벽이다. 멈추어서든가 아니면 낭떠러지로 발을 옮기든가 두 가지 선택만 남아있다. 처음 분산개최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발끈했던 지역유지 분들은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대다수의 시민들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올림픽만 유치하면 당장 잘 살게 될 거라는 믿음에 균열이 가고 있다. 정부지원금으로 이웃사촌이 원수로 변한 지역주민들의 갈라진 마음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전망이 불투명한 3년 뒤가 걱정스럽다. 평창은 근대올림픽의 마지막 실패작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근대올림픽의 첫 마중물이 될 것인가? 그 결과는 3년 뒤 분명하게 판가름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의 결과를 결정하는 시간은 3년 뒤가 아닌 바로 오늘이다.

<기획연재>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가 대안이다

1회 : 국가체면 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

고광헌 / 평창올림픽분산개최촉구시민모임 상임대표

2회 : 올림픽 경제효과의 진실

임정혁 / 스포츠칼럼니스트

3회 : 평창동계올림픽, 강원도 재정의 밑빠진 독

김상철 / 나라살림연구소

4회 : 여론조작, 왜곡된 의사결정

박지훈 / 변호사, 스포츠문화연구소 사무국장

5회 : 500년 원시림, 가리왕산의 울음

이병천 /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6회 : 어젠다 2020과 올림픽의 미래

정용철 / 서강대학교 교수

7회 :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와 방안

배보람 / 녹색연합 정책팀장

"평창동계올림픽분산개최를촉구하는시민모임"은 평창동계올림픽 및 메가스포츠 이벤트의 반복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위해 만들어진 시민모임입니다. 시민모임은 강원도 지역, 체육, 환경, 문화 시민단체 50여개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분산개최를촉구하는시민모임 후원계좌

하나 : 159-910003-63404 (문화연대)

* 후원금은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 추진을 위한 시민모임의 활동에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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