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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사학비리

중앙대의 부채는 10배가 늘었다. 재벌이 대학을 인수하면 기업식의 구조개혁이 있을 것을 예상한 이들은 많았겠지만 대학 재정이 부실화될 것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비회계와 법인회계를 뒤섞고, 법인 출연금은 모기업의 건설회사로 다시 흘러들게 하고, 등록금을 학교 빚을 갚는 데 끌어다 쓰는 회계 사이클. 유사 학과 통폐합이나 정원 조정이 아니라 바로 이 새로운 사이클이 중앙대를 운영하면서 두산그룹이 보여준 '혁신'의 핵심인 듯하다.

  • 김종엽
  • 입력 2015.04.23 06:46
  • 수정 2015.06.23 14:12
ⓒ연합뉴스

사립학교의 운영주체는 학교법인이다. 그리고 학교법인은 공익법인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의 하나는 학교를 통해서 형성되는 자산과 수익금이 학교 밖으로 한 푼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는 사립일 때도 완전히 공적 자산이어서 학교 자체가 점점 더 커지고 발전하는 일은 있어도, 그것으로부터 수익을 얻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극우파라면 그 많은 학교가 이렇게 '사회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것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립중고등학교나 사립대학의 이사진은 이런 공적 자산을 놀라울 정도로 자본주의적으로, 정확히 말하면 천민자본주의적으로 운영해왔다. 그렇게 해온 대표적인 방식이 족벌경영, 회계부정, 인사비리다. 이 셋은 '사학비리 3종 세트'라 불려왔는데, 각각은 서로를 유기적으로 떠받친다. 족벌경영 덕에 회계부정과 인사비리를 은폐할 수 있는 총장과 이사진은 교직원 채용 리베이트나 교비 횡령 같은 비리를 저질러 얻은 수익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비리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강화되자 사학비리도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추적 60분>이 상세히 보도했던 수원대는 그런 예다. 학생들로부터 받은 대학등록금을 절반 가까이 쓰지 않고 적립했다. 교육에 써야 할 돈을 적립하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강의실에 비가 새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실습실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게 쌓은 4000억원이 넘는 적립금을 은행에 예치한다. 그런 다음 총장은 자신의 사업자금을 그런 은행에서 저리로 대출하는 것이다. 회계장부 조작 같은 것이 필요없는 창의적인 방법이다. 학교 바로 옆에 리조트를 짓고 교비로 지은 컨벤션센터를 리조트가 헐값에 임대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총장의 개인기업인 리조트는 이 컨벤션센터 덕에 단체연수를 많이 유치해 높은 수익을 올렸는데, 이 또한 번연한 형법 위반을 무릅쓰던 예전의 사학비리에 비해 한결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수원대 사례는 인사비리를 비롯해 낡은 부패기법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법률 위반의 경계선에서 멀리 벗어나지도 못한 편이다. 이에 비해 두산그룹이 인수한 중앙대는 여러 면에서 한결 더 진화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비리 사학재단은 음지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사회적 주목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적극적으로 사회적 주목을 끌어내고자 했다. 논란을 야기하며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을 억누르며 '진격'해 나갔는데, 그런 중에 항상 자신을 '개혁'의 기수로 표방했다.

이렇게 우리의 주의력을 온통 잡아끌고 중앙대 교수와 학생들을 방어적인 투쟁에 묶어 두는 야단스런 '개혁'의 우산 아래서 두산그룹은 중앙대 재정을 두산건설의 자금 흐름 속에 편입시켰다고 해석할 만한 일들을 벌여왔다. 여전히 퍼즐의 조각들이 모자란다. 하지만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는 두산건설"이며 두산건설 회사채 금리가 매우 높음을 전하는 경제면 기사와 2009~2014년 중앙대의 건물 공사를 두산건설이 독점 수주한 액수가 2457억원에 이른다는 사회면 기사를 연결하면 대략의 구도를 엿볼 수 있다.

같은 기간 중앙대의 부채는 10배가 늘었다. 재벌이 대학을 인수하면 기업식의 구조개혁이 있을 것을 예상한 이들은 많았겠지만 대학 재정이 부실화될 것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비회계와 법인회계를 뒤섞고, 법인 출연금은 모기업의 건설회사로 다시 흘러들게 하고, 등록금을 학교 빚을 갚는 데 끌어다 쓰는 회계 사이클. 유사 학과 통폐합이나 정원 조정이 아니라 바로 이 새로운 사이클이 중앙대를 운영하면서 두산그룹이 보여준 '혁신'의 핵심인 듯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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