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비정규직이 늘어야 경제도 살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인건비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인건비의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1991년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4%를 상회했으나 IMF 당시 10% 밑으로 떨어졌다가 2004년까지 조금 올랐으나 이후 계속 떨어져서 지금은 8%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기업은 수익을 투자 대신 유보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Getty Images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선과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하에 2014년 12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놓았다.

그 내용을 보면 사실상 비정규직 확산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사내하도급 합법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저성과자 해고 기준 마련, 업종 제한 없이 55세 이상 파견 허용, 파견 허용 업종 확대, 산재 적용 대상 특수고용 범위 확대 등이 그러하다. 판결을 통해 불법임이 확인된 사내하도급을 합법화하고 기간제 사용 기간을 연장하게 되면 간접고용·기간제 노동자는 비정규직 신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진다. 여기에 파견 규제를 완화하고 고용 해지 기준과 절차까지 마련하면 기업은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고 해고한 노동자를 비정규직 신분으로 다시 채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산재 보험 가입이 허용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결국 더 많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비정규직 확산 정책을 펴는 이유는, 고용의 유연화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한국 사회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비정규직법(「파견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과 그간의 비정규직 정부 대책들도 이러한 논리에 기반해 왔다.

그러나 고용의 경직성의 지표가 되는 고용보호지수(Indicators of Employment Protection,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고용보호법제의 엄격성을 측정)에 의하면 한국은 OECD 평균보다 고용이 유연화되어 있으며, 집단해고의 경우 특히 유연화되어 있다. 당해 고용보호지수는 법제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법과 현실의 간극(사용자의 법규 준수 정도, 단체협약 적용률, 정부의 의지와 능력 등)을 고려한다면 실제 고용의 유연성은 더 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건비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인건비의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1991년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4%를 상회했으나 IMF 당시 10% 밑으로 떨어졌다가 2004년까지 조금 올랐으나 이후 계속 떨어져서 지금은 8%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기업은 수익을 투자 대신 유보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가계 및 기업 저축률 추이(각주1)

기업의 인건비 지출이 줄면서 노동자 1인당 국민소득은 아래와 같이 1980년대보다 못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비정규직 확산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0년대 후반부터 계속해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가계소득과 가계저축이 줄어들다 보니 소비는 줄고 내수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투자를 하는 대신 저축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기업의 이익이 국내 경기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비정규직 확산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에 관한 정부 주장도 사실과 맞지 않다. 고용의 유연화는 노동자의 실업과 비례 관계에 있다. 고용의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기존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자르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것을 두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오히려 고용 증가율은 감소했다. "고용증가율지수는 2006년 2.66에서 2007년에는 3.16으로 증가했다가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2년 -0.83으로 하락하였다. 장기적 추세로 기업의 고용증가율 평균이 감소하는 것은 경제 전반적으로 노동에 대한 자본(혹은 기술 등)의 대체 정도가 심화되고 있으며, 기업의 신규고용 창출이 저조하다는 점을 반영한다."(각주2) 특히 대기업의 고용 창출 기능은 약화되었다. 분사화, 외주화를 통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300인 이상 대기업 고용 비중은 1993년 22.6%에서 2009년 13.7%로 떨어졌다. 반면 외주가공비는 증가하고 있다.

10대 재벌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2013년 466조원에서 2014년 503조원으로 10% 가까이 증가했지만 고용률, 특히 정규직 노동자 고용률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일자리 창출을 한다고 했을 때 여기서 말하는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여야 한다. 그런데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그 수를 늘리는 데에만 착목하고 있다. 한 개의 일 자리를 두 개의 일자리로 쪼개면서 노동자 한 명에 투입되는 비용을 두 명에 투입되는 비용으로 쪼개려 한다. 그 결과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의 안 좋은 일자리다. 임금근로자수 증가율로는 5~9인 규모의 사업체는 12.7%로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50~99인과 300~499인 사업체의 경우에는 감소하고 있다(각주3). 노인, 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불안정한 일자리 취업률은 높아지고 있다. 청년의 경우 가장 취업률이 높은 업종이 음식·서비스업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가교가 아니라 덫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정규직 중심의 일자리 창출은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할 것이다.

비정규직은 단순히 노동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 당하고 있다. 비정규직 확산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자녀들에게도 회복할 수 없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더 나아가 모든 노동자, 아니 모든 사회 구성원이 비정규직 확산 정책의 피해자다. 비정규직 확산 정책은 사회와 국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 효과는 돈이나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정규직 확산 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그 실패의 역사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정부는 정원관리제도와 총액인건비제를 통해 그 누구보다도 노동자를 강하게 통제하고 착취해 온 주체였다. 비정규직 확산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것이다.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_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_________________________

(각주1) '한국경제의 구조적 과제 :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 저축의 역설', 박종규, 2013. 12. 한국금융연구원

(각주2) '기업의 일자리 창출지수 심층 분석 연구', 고용노동부, 2013. 6.

(각주3) '기업의 일자리 창출지수 심층 분석 연구', 고용노동부, 2013. 6.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