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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 관계와 썸타기

리바운드 관계란, 주로 장기간 계속되었던 깊은 관계가 끝난 후 그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갖는, 전 애인이 아닌 이성과의 새로운 관계를 일컫는다. 리바운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진지한 관계 사이 다시 튀어 오르는 공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이성은 지상에 깔린 돌멩이나 보도블록쯤 되는 것이겠다. 그들은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당신을 잠시 거쳐 가는 중이란 걸 알리거나 혹은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 관계에는, 원하는 것이 어긋날 때마다 피를 흘리는 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 이서희
  • 입력 2015.04.27 11:30
  • 수정 2015.06.27 14:12
ⓒShutterstock / sebra

전화로 이별을 통보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문자로 이별을 통고받은 적은? 내 친구 K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메일은? 음성 메시지는? 종전을 선포하듯 연애의 종말을 일방적으로 공포하는 행위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참 부당하다. 사귈 때는 동의를 얻어 사귀었는데 왜 헤어질 때는 내 의사가 중요하지 않지? 더 기막힌 경우는 다음이다. 헤어졌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이 멀어지는 경우. 잠적하거나 연락을 씹거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다 지쳐 한바탕 문자로 퍼붓기도 해 보지만, 그래도 감감무소식. 치사해서 그의 이름을 주소록에서 지워보지만, 아뿔싸, 망할 놈의 기억력이라니. 술 처먹고 필름이 끊긴 후에도 방뇨하듯 그의 전화번호를 싸지른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붙잡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이면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시지 창을 열어보면, 그러면 그렇지. 과학기술의 폐해와 현대문명의 이기를 성토하고 싶어진다. 그에게 또 문자를 보내고 말았거든. 폼 나게 잊어주고 싶었는데, 폼 나지 않게 버림받고 나면 수습조차 어려워서 제풀에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몇 차례 후렴처럼 반복되는 이별 끝에 내 후배 A가 다다른 경지는 바로 다음이다. 사귈 때도 사귀지 않는 듯, 헤어져도 그저 쿨하게. 썸녀의 탄생. 동시에 어장관리녀로의 변신도 가능하다. 그녀가 연락하는 남자만 해도, 삼십 대 초반의 잘생겼으나 전망 불투명인 자유직 가 군, 40대 중반 잘 나가는 유부남 나 씨, 그럭저럭 다 가져서 즐거운데 독신주의라 최강 갑인 다 오빠가 있다. 셋 다 다가올 듯 다가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 모두 썸남의 단계를 배회하는 종자들로 보인다. 연애와 연애 아닌 지역 사이에 자리 잡은, 삶과 죽음의 중간 단계 림보와 같은 썸의 지역에는, 생각보다 많은 영혼이 떠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깨달았다. 그녀는 아직까지 10년 전 열애로부터 회복된 것이 아니라고. 열렬히 연애했고 장렬히 이별했으나, 그 이후 연애의 온도는 쉽게 오르지 않았다. 다만, 열 받아서 열렬했던 이별이 두어 차례 있었고 그 이후로는 만남도 헤어짐도 미지근한 기온을 유지했다. 오늘의 날씨는 흐리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고 먹구름이 몰려왔으나 비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를 반복하며 착실히 한 해 두 해를 보내고 삼십 대 중반에 이르렀다. 대학 1학년 때 만나 6년을 사귄 사람과 헤어질 때는 세상이 두 조각 나는 것만 같았지만, 동시에 해방의 기쁨도 함께 있었다. 태어나서 단 한 명과 섹스하고 죽어버릴 생각에 서글프고 억울했던 나날도 있었으니까. 헤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남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진 죄가 커, 이렇게 길고 꾸준히 벌을 받고 있는 걸까.

나는 고민하는 A에게 리바운드 관계(rebound relationship)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한국에서 여기저기 썸타기와 썸남썸녀 구분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내가 머무는 미국에서는 리바운드 관계나 리바운드 섹스에 대한 담론이 많이 형성된 편이다. 리바운드 관계란, 주로 장기간 계속되었던 깊은 관계가 끝난 후 그 관계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갖는, 전 애인이 아닌 이성과의 새로운 관계를 일컫는다. 대체로 짧은 기간에 끝난다는 통설이 있으나, 리바운드 관계가 바로 장기간의 연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현재 만나는 상대가 자신과 리바운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법이 각종 칼럼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면, 세상은 이별 이후 재도약을 도모하는 인간들로 그득한 모양이다.

리바운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진지한 관계 사이 다시 튀어 오르는 공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이성은 지상에 깔린 돌멩이나 보도블록쯤 되는 것이겠다. 그들은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당신을 잠시 거쳐 가는 중이란 걸 알리거나 혹은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 관계에는, 원하는 것이 어긋날 때마다 피를 흘리는 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머리 위 사과를 향해 쏜 화살이 심장에 꽂히는 수도 있으니.

리바운드 관계의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다. 지난 관계로부터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갖는 가벼운 관계가 혼돈을 더 가중시킬 뿐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기는 하나, 적절한 도움을 받았다는 증언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연한 친구를 다독이기 위해 동료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 중, 지금이 기회이니 마음껏 즐기라는 조언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 역시 그 주장에 일부 동의하는 편이다. 우선, 장시간 계속되었던 관계에서 벗어난 후유증은 생각보다 크고, 새로운 만남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적응과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산 속으로 들어가 도를 닦고 돌아올 수도 없고,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과의 화해를 먼저 이루라는 조언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지난 관계를 충분히 애도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장기연애에 돌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충분한 준비"란 도대체 언제 이루어지는 걸까? 우리는 관계의 끝, 누더기가 되어 남겨진 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리바운드 관계는 다양한 사람을 가볍게 만나, 자신이 다음 관계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 탐색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단, 리바운드 상태임을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명백히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리바운드 중임을 잊고 새로운 관계가 당장 옛 연애를 대신하기를 기대했다가는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또 다른 리바운드 관계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서라도.

A의 경우는 만성적 연애 재활 구역에 갇혀버린 것일까. 땅을 치고 튀어 오르지 못한 채, 바닥을 낮게 통통거리다 그대로 굴러가버리는 걸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사랑이 사랑의 기준이 되어버렸던 것 같아. 그 이후 만났던 사람들은, 그와 닮았거나 반대이거나, 그만큼 열렬하거나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했던 것을 보면. 그 사람을 극복하려고 정반대의 남자를 만났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집중도를 연애에 쏟지 않았어. 그 다음 남자는 또 그와 많이 다른 사람을 택했지만, 열정이 식자 종적을 감춰 버렸고. 연애에 빠졌다가 헤어 나오는 게 힘들어서 적당히 관심을 여러 사람에게 분산하는 식으로 해결했지만, 설레는 건 잠시이고 금세 시들해져."

리바운드 관계와 썸타기의 교집합에 맴도는 그녀, 과연 원하는 연애에 돌입할 수 있을까.

리바운드 관계는 짧고 가볍고 즐겁게 지나가야 재활의 몫을 해낼 수 있다. A는 10년 전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리바운드의 도미노 상태에 빠진 것에 가깝다. 지난 관계의 리바운드로 다음 관계를 갖고, 이어지는 관계 역시 이전 연애의 리바운드라면 땅을 치고 더 높이 올라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로 들어서는 감각조차 잃게 만들 수 있다. 썸타기도 마찬가지다. 가벼운 만남과 탐색의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곳에 언제까지 머물 생각이 아니라면, 자신을 그곳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가치를 연애 상대의 열렬함에 의존하여 판단했던 것은 아닌지, 처음부터 옛 연인이 충족시킨 모든 것을 새 관계에서 바랐다가 너무 일찍 실망한 것은 아닌지, 연애의 득실을 과히 따져 미리 겁먹은 건 아닌지, 지난 연애 끝에 맛본 고통과 허무함을 모든 연애의 본질이라 미리 설득당한 것은 아닌지.

실연을 잘 극복하고 다시 건강한 관계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높은 자존감을 든다. 자신이 개입된 관계를 함부로 폄하하지도 않는다. 상대가 떠나든, 내가 그를 떠나든, 그 여부에 매달리지 않는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자신을 실패했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한 생명이 죽었다고 해서 그 삶을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듯, 사랑도 명을 다했거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을 뿐이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수는 있어도 끝났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을 얻었다면 그에 감사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썸타기와 리바운드 관계는 본질에 충실하게 활용한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모두 새로운 연애로 잘 이어가기 위해서다. 자주가 아니라, 잘, 헤어지기 위해서다. 이는 썸과 리바운드 관계 자체에도 적용되는 사항이다. 썸이든 재도약이든, 만나서 인연을 맺었으니 이별에도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 그러니까 헤어짐의 의식에 서로 최소한의 예의는 차릴 것.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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