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는 20일 밤 사의를 표명했으나, 이 사실이 공식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27일까지는 ‘버티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았다.
이 총리는 앞서 이날 오전, 최근 1년 사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217차례나 통화를 했다는 검찰 기록과 관련해, “국회의원을 같이 했던 사이일 뿐”이라며 친분 때문이 아니라 업무 차원에서 통화했을 뿐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성 전 회장에게 3000만원을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즉시 총리직 사퇴를 하진 않겠다는 태도로 해석됐다.
■ 사퇴 요구는 ‘묵묵부답’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로 출근, 차에서 내리고 있다. 결국 이날이 그의 '마지막 출근'이 됐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한 이 총리는, 지난해 3월부터 1년 동안 217차례나 전화통화를 했다는 검찰 수사 내용을 묻는 기자들에게, “다 말씀드렸다”며 바로 청사로 들어가려 했다. 기자들이 따라붙어 관련 보도를 부인하는 것인지를 묻자, 그는 “(성 전 회장과) 국회의원을 같이 했고, 1년인데, 하여튼 그건 나중에 얘기합시다”라며 말을 끊었다. 평소 기자들의 질문 서너가지에 답변을 온전히 끝낸 뒤 청사로 들어갔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날 이 총리는 출근 뒤 간부들을 만났고,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어 외부에서 총리실 간부들과 오찬을 한 뒤 오후에는 청사 내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했다. 외부에서 빗발치는 ‘대통령 귀국 전 자진사퇴’ 요구에 귀를 닫은 채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총리 쪽은 박근혜 대통령이 순방을 떠나기 전 “(남미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한 이상, 그 이전에 자진사퇴는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행정부 2인자로서 대통령 부재중에 국정 운영을 대리 총괄해야 하는 총리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청문회 때 크게 흠집이 난 상태에서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여론 비판만으로 물러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조기 자진사퇴론이 불붙은 상황에서 이 총리도 이제 사퇴를 포함해 출구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동시에 나왔다. 검찰 소환이 이 총리의 선택을 가를 기점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이 총리는 지난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총리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검찰) 수사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소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비춰 박 대통령 귀국 전에 검찰이 소환을 통보할 경우, 현직 총리 자격으로 수사를 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총리직을 자진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 대통령의 국외 순방 시기 친일사관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던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사례도 새삼 주목받았다. 지난해 6월 문 후보자 지명 뒤 여론이 악화되자, 박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 도중 국회 제출 인사청문요청서 재가를 보류하는 방식으로 ‘자진사퇴’해 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 217차례 통화는 ‘인정’
이 총리 쪽은 성 전 회장과 여러차례 통화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다. 총리실 관계자는 “검찰이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니까, (통화) 사실을 부인하고 그럴 건 아니다”라며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다만, 이 총리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자신과 충남도당위원장이었던 성 전 회장 사이에 주고받은 업무상 연락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1년 동안 217차례는 산술적으로 사흘에 이틀꼴로 통화를 시도한 것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거의 뭐 부부관계라고 봐야 한다”고 비꼬았다.
더구나 검찰 수사로 드러난 1년치 통화기록은 지난해 3월 이후의 내역이다. 8개월치는 성 전 회장이 지난해 6월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뒤의 통화 기록이다. 동료 의원·당직자 사이의 ‘공적 연락’이었다는 이 총리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의 관계가 단순한 동료 의원 사이를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 갈수록 불거짐에 따라, 이 총리의 해명도 점점 궁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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