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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왜 낙후됐나

  • 김병철
  • 입력 2015.04.19 12:38
  • 수정 2015.04.19 12:43

[토요판] 생명

서울대공원 비전보고서

오랑우탄은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전신인 창경원이 1909년 개원할 때부터 전시됐다. 세계적 수준의 동물원으로 출발했던 서울동물원은 1990년대 이후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뒤처졌다. 2013년 호랑이의 사육사 습격 사건 이후 동물원의 혁신 방안이 논의되면서, 연구·보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법인이나 국립동물원으로 장기 전환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유인원사의 아기 오랑우탄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 누리꾼들의 해외여행 블로그를 살펴봤습니다. 런던에 가면 런던동물원에 가고, 싱가포르에 가면 싱가포르동물원에 가더군요. 반면 2013년 서울대공원을 방문한 376만명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은 3만8571명에 그쳤습니다. 0.78% 입니다.

왜일까요? 좋은 인프라에도 서울대공원은 정체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을 갖췄습니다.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고 예산 잡아먹는 천덕꾸러기가 됐습니다. 서울대공원은 왜 세계적인 동물원이 되지 못했을까요?

서울대공원 동물원(서울동물원)은 ‘국립 서울동물원’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17일 “서울동물원을 2018년부터 서울대공원에서 분리해 연구·보전 중심의 동물원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한 뒤 장기적으로 법인화 혹은 국립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울대공원 비전 보고서’가 최근 서울시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공원은 서울동물원과 주변의 테마가든, 캠핑장, 서울랜드(민간 운영) 등으로 이뤄진 서울시 소유의 종합 테마파크다. 이 보고서는 동물원을 2018년부터 공원 관리 중심의 기존 조직에서 분리해 야생동물 연구·보전 기능을 강화한 조직으로 전환하고 2026년부터는 서구 유명 동물원처럼 법인화하거나 국립동물원으로 전환하는 일정표를 제시했다.

또한 동물복지 관리가 엄격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기준에 맞춰 사육시설을 개선하는 방안도 추가됐다.

서울동물원의 법인화·국립화 방안은 생태동물원 및 연구·보전센터로의 전환 등 선진 동물원의 변화 추세에 서울동물원이 한참 뒤처졌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지난해 민간자문기구로 운영된 ‘서울대공원 혁신위원회’ 논의 결과와 서울연구원의 서울대공원 비전 수립 연구용역을 토대로 만들어진 서울대공원의 미래 청사진은 부서간 조율이 끝나는 대로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자료사진

3000원짜리 ‘국가대표 동물원’

서울동물원은 언제부터 낙후됐을까? 1909년 서울 창경궁에 문을 열 때만 해도 적어도 서울동물원은 당대의 시대적 진보를 담은 동물원이었다. 시베리아호랑이, 반달곰 등 토종 동물은 물론 런던이나 파리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동물’ 오랑우탄과 캥거루를 들여와 동양에서 7번째, 세계에서 36번째로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정책과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계몽, 근대, 첨단을 표상하며 세계 주요 동물원과 어깨를 겨루며 출발했다. 1984년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 오면서 서식지별로 동물을 전시하는 동물지리학적 전시기법을 도입하는 등 선진 동물원에 한층 가까이 다가갔지만, 역설적으로 그때부터 서울동물원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2015년, 국가대표 동물원인 서울동물원은 ‘싼’ 동물원이다. 입장료 3000원으로 2003년 이후 12년째 동결됐다. 영국 런던동물원 입장료의 10분의 1도 안 되고, 일본 도쿄동물원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한겨레>가 16일 세계 주요 동물원의 입장료를 조사해보았다. 런던동물원은 3만9500원(24.30파운드·현장구매가). 정문 앞에서 기부금(입장료의 10%)을 낼 거냐고 묻는데, 이를 포함하면 4만3800원(27파운드)이다.

런던동물원은 런던 시내 한가운데 있는 도심형 동물원으로 비영리법인인 런던동물학협회(ZSL)가 운영한다. 역시 비영리법인인 야생동물보전협회(WCS·전 뉴욕동물학협회)가 운영하는 미국 뉴욕 브롱크스동물원은 2만1700원(19.95달러·현장구매가)을 받는다.

아시아의 동물원은 싼 편이다. 도쿄 우에노동물원은 5500원(600엔)으로 서울동물원의 두 배다. 대만 타이베이동물원은 2100원(60대만달러)으로 서울동물원보다 조금 싸다. 서울동물원, 도쿄동물원(1882년), 타이베이동물원(1914년) 모두 일제 때에 설치됐고 지방정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자료사진

세계적인 동물원들을 서울동물원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원 역사와 인프라만 놓고 보면, 서울동물원이라고 뒤지진 않는다. 서울동물원도 대도시 주변에 있고 외국인 관광객이 많고 세계 수준의 동물원이 지닌 희귀동물들도 다 지녔다.

입지 조건은 오히려 더 좋다. 서울대공원 가운데 동·식물원 부지(2.42㎢)만으로 비교해도, 런던동물원(0.15㎢), 뉴욕 브롱크스동물원(1.07㎢)을 훨씬 앞지른다.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서울동물원은 세계적인 동물원이 되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경기도에 있는 지리적 특이성 △서울시의 소극적 예산 투자 △서울대공원 조직의 모호한 위상 등을 꼽는다. 1983년 창경원에서 이사 온 뒤 대규모 시설 투자와 개선이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서울대공원의 소유 및 운영 주체는 서울시다. 정작 보금자리는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의 청계산 기슭이다.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이용객의 상당수는 ‘산책하러 나온’ 경기도민이다.

게다가 서울대공원 부지는 그린벨트 규제에 묶여 있다. 노정래 서울동물원장은 17일 “새 건물을 지을 수도 없고, 짓더라도 기존 건물을 부수고 똑같은 크기로 지어야 한다”며 “대대적인 동물사육사 개선은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매년 다르지만 서울대공원의 한해 예산은 대체로 300억원 안팎이다. 입장료, 서울랜드와 각종 점포 임대 등으로 돈을 벌지만, 예산의 절반 이상은 서울시에서 지원받는다. 재정자립도는 50% 수준이다.

입장료 1000원을 올리면 한해 20억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서울대공원은 예상한다. 입장료 인상이 쉽지 않은 이유는 서울대공원이 ‘시영동물원’이기 때문이다. 운영상의 현실적 요구가 선거를 앞둔 시장과 시의원의 정치논리 앞에서 뒷전으로 밀린다.

외국 동물원처럼 기업과 시민에게 기부금을 받을 수도 없다. 최고관리자인 서울시장의 선거운동으로 간주돼 선거법 위반이 된다. 서울시에서 운영비 이상의 예산을 지원받지도 못한다. 지난해 서울대공원 혁신위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서울시 소속이지만 과천에 있어서 서울시의회 지역구 하나조차 없다. 이런 구도로는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깜짝 발표’로 서울대공원을 정치적으로 이용이나 했지 끝까지 책임지는 서울시장은 그동안 없었다.

매년 100억원씩 들여 생태동물원으로 바꾸겠다는 청사진이 장기 연구를 통해 2004년 마련됐지만, 2006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퇴임 직전 방송 인터뷰에 나와 이듬해 디즈니랜드를 착공하겠다며 계획을 뒤엎었다. 디즈니랜드와의 협상의 실체는 모호했고 생태동물원은 유야무야됐다. 그렇게 서울동물원은 뒤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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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락시설로 갈 건가, 종 보전센터로 갈 건가

미래 전망을 세우지 못하는 소유구조를 지적하면서 동물원을 서울대공원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해 운영된 서울대공원 혁신위에서 본격적으로 터져나왔다. 동물원을 ‘비영리법인’으로 바꾸거나 나아가 ‘국립 동물원’으로 승격하자는 것이다.

비영리법인의 대표적 모델은 런던동물학협회와 야생동물보전협회다. 각각 런던동물원과 브롱크스동물원을 운영하는 두 단체는 이름만 들으면 학회나 시민단체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동물원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동물학 연구기관도 겸한다.

시민, 기업의 기부를 받거나 일부 예산은 정부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동물원 담장을 넘어 세계에서 야생방사 및 야생동물 연구, 서식지 보전에 뛰어들고 있다.

야생동물보전협회의 2012년 예산은 약 2426억원(2억2330만달러)인데, 입장료 수익과 기부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예산의 10%를 뉴욕시에서 지원받고 14%는 국가과제 수행으로 번다.

전세계 동물원 가운데 가장 큰 공룡급 조직을 갖췄다. 박사급 연구원 200여명, 직원 4000여명이 동물원·수족관 네 곳을 운영하고 65개국 500개 지역에 나가 보전활동을 펼친다.

런던동물학협회는 작지만 강한 조직이다. 한해 수입은 약 723억원(4460만파운드·2012년)으로, 서울대공원 예산의 갑절 수준이다. 입장료 수입이 39%를 차지하며 연구·보전사업 외의 동물원 운영에 대해선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입장료 및 기부금 수익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시대적 감각에 맞게 동물원을 혁신해야 한다.

선진 동물원은 안에서는 동물복지를 강화하고 밖에서는 야생보전 활동을 벌임으로써, 동물을 가까이서 보고자 하는 욕망과 반대로 갇힌 동물을 불편히 여기는 마음 등 관람객의 모순적 태도에 맞서 성공적인 줄타기를 해왔다.

국내에는 아직 전통있는 동물학 연구기관이 없다. 비영리법인의 설치가 당장 힘들다면 비슷한 성격의 환경부 산하 법인 국립생태원에 위탁 관리하는 방안도 일각에서 거론된다. 현재 서울시가 서울어린이대공원과 부속 동물원을 서울시설공단에 맡긴 것과 같은 방법이다.

충남 서천에 본부를 둔 국립생태원은 야생동식물 연구·전시·생태교육 기관이다. 자연스럽게 서울동물원의 연구·보전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내셔널아쿠아리움처럼 운영을 비영리법인에 맡기고 ‘국립’ 지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서울시는 소유구조를 포함한 서울대공원 비전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위락시설에 무게를 둘 것인가, 연구 및 종 보전센터에 무게를 둘 것인가가 미래 경로의 갈림길이다. 선진 동물원이 후자를 중심으로 친환경적으로 변신을 꾀했다면 서울대공원은 전자의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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