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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리면

일반적인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 개별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별도의 교육과정도 운영하지만 의사소통조차 힘든 아이들을 대할 때면 특수교사인 나조차도 막막할 때가 많다. 응답 없는 친구들로 인해 고민하던 못난 후배 교사에게 어느 날 선배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한 마디를 건네신 적이 있다. "아이들은 충분히 노력하고 변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조급함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1년 만에, 2년 만에 대답하는 친구도 있지만 10년 만에 갑자기 변화한 듯 놀라게 해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기적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선생님들의 묵묵한 기다림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 안승준
  • 입력 2015.04.17 15:11
  • 수정 2015.06.17 14:12
ⓒShutterstock / Evlakhov Valeriy

우리학교 학생들 중에는 시각장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반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있다. 일반적인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 개별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별도의 교육과정도 운영하지만 의사소통조차 힘든 아이들을 대할 때면 특수교사인 나조차도 막막할 때가 많다.

생활에 꼭 필요한 말하고 쓰고 셈하는 것들을 주로 가르치는데 한 달, 두 달 정도 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느껴질 때도 많다.

응답 없는 친구들로 인해 고민하던 못난 후배 교사에게 어느 날 선배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한 마디를 건네신 적이 있다.

"아이들은 충분히 노력하고 변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조급함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1년 만에, 2년 만에 대답하는 친구도 있지만 10년 만에 갑자기 변화한 듯 놀라게 해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기적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선생님들의 묵묵한 기다림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고 계셨지만 오랜 시간 쌓인 깊은 내공 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옆을 가리키시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심한 지적장애를 가진 고등학생 아이들이 점자를 읽어내고 악보를 보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작은 지팡이로 길을 찾아다니고 스스로 집안일까지 해내는 아이들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응답 없던 친구들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주셨다.

놀라웠다. 그리고 특수교사로서 너무도 부끄러웠다.

즉각적인 성과와 변화를 쫓는 동안 묵묵한 인내와 기다림을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기다림이 필요했던 아이들에게 소리 없는 사과를 표현하면서 삶 속에서 기다림을 잊어버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도 하고 싶은 일들 속에서도 나도 모르게 너무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상황들 속에서 쉽게 사람들을 판단하고 순간의 실수 속에서 놓아버린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순간을 헐떡이고 있었지만 조금씩 변하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다시는 안 볼 원수처럼 대하던 친구들과도 한 잔 술을 기울일 수 있다는 사실이 보였고 조금씩 변해온 나의 모습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천천히 시간을 흐르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아무 변화가 없는 듯 천천히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과 수많은 불합리를 논하고 정치와 정부를 탓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너무도 빠르게 지치고 포기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필요한 건 오랜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 우리 아이들이 그렇듯 기적처럼 답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오리라 확신한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오랜 기다림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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