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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옷장을 열었다

ⓒ20th Century Fox

타운젠트

[매거진 esc] 스타일

슈트입은 스파이 활약 그린 <킹스맨> 흥행으로 부쩍 관심 높아진 남성정장 올봄 트렌드 따라잡기

‘슈트 포르노’, ‘슈트성애자’. 관객 600만명을 넘긴 영화 <킹스맨>이 남긴 문화적 현상 가운데서도 유독 두드러지는 건 슈트, 즉 남성들의 정장 차림에 관한 찬양이다. 입는 사람은 불편하고 보는 사람은 딱딱하게 여기는 줄 알았던 슈트에 관한 생각은, 영화 속 해리(콜린 퍼스)가 ‘슈트의 정석’ 더블브레스트(단추가 왼쪽과 오른쪽 옷섶에 각각 세개씩 달린 재킷) 슈트를 완벽하게 갖춰입은 채 선보인 엄청난 액션을 보며 산산조각난다. 군더더기 없는 어깨선, 신뢰감을 주는 등과 허리선, 들러붙지도 펑퍼짐하지도 않은 품격 있는 바지선까지, 해리가 입은 슈트는 남자가 어디까지 멋있고 어디서 섹시해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콜린 퍼스

콜린 퍼스는 2009년 영화 <싱글맨>에서도 완벽한 ‘슈트발’을 뽐낸 적이 있다. <싱글맨>에서 그의 슈트를 만든 이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 ‘한물갔다’ 소리를 듣던 구치에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구치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세운 톰 포드는,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만든 슈트를 콜린 퍼스가 입도록 했다. 187㎝의 큰 키에 드넓은 어깨를 가진 콜린 퍼스와 톰 포드 슈트의 조합은 빛을 뿜었다.

그렇다면 슈트는 콜린 퍼스처럼 타고난 키와 체격이 있어야만 섹시해지는 옷일까? 그렇지 않다. 서울 명동 한복판 쇼윈도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검붉은색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를 입은 30대 중반의 그를 보고 사람들은 연봉 1천만원대, 매력 점수 0~2점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말끔한 슈트 차림으로 쇼윈도 안에 서자 그의 예상 연봉은 10배, 매력 점수는 5배가량 뛰어오른다. 2009년 <교육방송>에서 제작한 프로그램 ‘인간의 두 얼굴 Ⅱ-아름다운 세상’에서 방영한 이 실험은, 지금까지도 에스엔에스(SNS)상에서 회자되는 흥미로운 동영상이다. 여러 가지 함의가 있고, 생각해볼 대목도 많지만 부인할 수 없는 건 슈트 자체가 남성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의상이라는 점이다. 하긴, 온 동네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 남자 주인공들이 괜히 슈트 차림으로 클럽에 드나들고, ‘우정 사진’을 찍었겠는가.

슬림핏 유행 한풀 꺾이며

어깨선 편안해지고

바지폭도 약간 넓어져

허리둘레와 바지통 사이 고민될 땐

허리 맞춰 고르고 바지통을 수선해야

캠브리지 멤버스

하지만 지금 당장 모든 남성들이 더블브레스트 슈트를 차려입고 거리로 나서는 건 곤란하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슈트는 ‘신사의 갑옷’인 동시에 ‘직장인의 작업복’임을 잊어선 안 된다. 현대카드와 그 계열사엔 기업문화, 일하는 방식 등과 관련한 지침을 적은 (프라이드)라는 책이 있다. 신입사원 교육과 대외 홍보용인 이 책자엔 금융회사 직원으로서 갖춰야 할 업무 태도뿐만 아니라 복장과 관련한 규정도 적혀 있다. “개개인이 회사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강조하는 이 회사에선, 남성의 경우 “짙은색 아래위 한벌의 슈트를 기본으로 하며, 반드시 흰색과 청색 계열의 긴팔 드레스 셔츠를 착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금융회사 직원으로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옷차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차경모 홍보팀 과장은 “규정이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를 존중한다. 게다가 이런 규정 때문인지 유독 우리 회사 사람들이 옷을 좀 잘 입는 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여의도에 양복 차림의 직장인이 많지만 우리 회사 사람은 바로 알아본다. 통이 약간 좁고 복사뼈 위까지 오는 양복바지에 갈색 계열 구두를 신은 사람을 보면 ‘어, 현대카드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며 “바짓단이 짧아지면 자연스레 양말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다채로운 줄무늬 양말을 신고 나가면 ‘센스 있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더블브레스트는? “나이 들어 보이고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느낌이어서 거의 안 입는다. 대부분 투 버튼이나 스리 버튼 재킷을 입는다”는 게 그의 답이다.

커스텀멜로우

이런 차 과장도 슈트를 고르거나 입을 땐 고민이 생긴다. 서양인보다 키가 작은 한국 남성의 체형에 맞는 슈트, 그러면서도 활동성과 내구성을 갖춘 소재로 만든 슈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몇년 동안 스키니진을 비롯해 몸에 꼭 맞는 슬림핏이 유행하면서 슈트 또한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딱딱한 패드를 넣어 어깨를 강조하면서 허리선과 바지통은 최대한 가늘고 좁게 만든 이 스타일은, 팔다리가 긴 게 고민이라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아니라면 소화하기가 어렵다. 다행히도 이번 봄여름에 나온 슈트들에선 종아리가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패션계에 불고 있는 놈코어(노멀(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 평범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패션) 열풍의 영향인지, 슈트도 패드 없이 어깨선이 자연스러워지고 바지통도 약간 넓어진 것이 올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극단적으로 좁아졌던 라펠(옷깃)도 다시 넓어져 점잖은 느낌을 원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로가디스

활동성과 기능성이 강화된 소재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도 최근의 슈트에서 달라진 점이다. 폴리우레탄처럼 신축성과 탄력성이 좋은 스트레치 소재를 혼용하거나, 리넨에 울, 실크 등을 섞은 혼방 원단을 써 구김을 줄인 슈트가 많이 출시됐다. 여기에 발수성 높은 원단으로 가벼운 생활방수 기능을 더하거나 자외선 차단 기능, 발한 기능 등이 있는 쿨맥스 등의 소재를 사용해 쾌적한 여름나기를 강조하는 슈트도 나왔다. 잡아당길 때 견딜 수 있는 힘, 즉 인장강도가 높은 소재로 내구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다. 최욱진 ‘캠브리지멤버스’ 디자인실장은 “클래식을 새롭게 해석한 뉴클래식의 슈트 스타일이 트렌드인데, 고객들의 다양해진 취향에 맞추기 위해 소재와 디자인도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이크

디자인이 바뀌고 소재가 좋아져도 슈트를 아름답게 입으려면 ‘한 끗’이 더 필요하다. 바로, 내 몸에 맞게 입는 것이다. 흔히 ‘핏이 살아 있다’고 하는 옷은,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이 아니다. 슈트 재킷은 어깨가 꼭 맞아야 허수아비처럼 보이지 않는다. 허리둘레와 바지통 사이에서 고민할 땐, 허리에 맞는 옷을 골라 바지통을 수선한다. 김형범 엘에프(LF) 홍보팀 대리는 “허리를 건드리면 엉덩이 부분까지 손을 봐야 해 전체적으로 옷의 균형이 무너진다. 바지통을 수선하면 전체적인 모양을 흩트리지 않고 손쉽게 몸에 맞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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