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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시를 보고 드럼 스틱을 잡은 기자의 이야기(동영상)

ⓒ한겨레

재즈 드러머를 다룬 영화 <위플래쉬>를 보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난폭한 선생 플레처(제이케이 시먼스)가 제자 앤드루(마일스 텔러)를 극한으로 몰아붙일 땐 심장이 쫄깃해졌고, 마지막 대반전의 연주 장면에선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극장을 나서며 드럼에 대한 관심지수가 급상승했다.

재즈 드러머를 다룬 영화 <위플래쉬>

음악 기자를 꽤 오래 했지만, 드럼을 쳐볼 생각은 감히 못했다. 악기라면 중학생 시절 뚱땅거려본 통기타를 동네 학원에서 뒤늦게 다시 배우고, 어린이집 ‘가족의 밤’ 행사에서 우쿨렐레를 쳐달라는 여섯살배기 딸의 부탁에 벼락치기 독학을 한 게 전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변에서 드럼을 친다는 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나보다 10살 많은 회사 선배는 집에 전자드럼을 놓고 독학한다고 했다. 드럼을 두드리면 행복해진단다. 라디오 피디를 하는 대학 후배는 드럼 학원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나도 한번 도전해봐?

재즈 드러머 신동진에게 전화했다.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유학하고 윈터플레이, 오재철 라지 앙상블 등에서 연주하는 그다. <위플래쉬> 상영관에서 ‘캐러밴’ 등 영화 속 음악을 실제로 연주한 ‘위플래쉬 프로젝트 밴드’의 드러머이기도 하다. 대학 강의뿐 아니라 개인레슨도 한다. 그는 “<위플래쉬>로 드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기쁘다”며 기꺼이 특강 요청을 수락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신동진 개인연습실을 찾았다. 원룸텔이 있는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15~16개의 악기연습실이 노래방처럼 복도를 따라 쭉 줄을 서 있다. 신동진의 방에 들어가니 3평 남짓한 공간에 드럼 세트가 놓여 있다.

먼저 드럼 세트를 살펴보자. 묵직한 저음의 베이스 드럼이 중심을 잡고 있다. 그 위로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스네어 드럼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 오른발로 페달을 밟아 베이스 드럼을 치고 왼손으로 스네어 드럼으로 두드려 “쿵짝 쿵짝” 소리를 낸다. 스네어 드럼 주위를 둘러싼 북 2~3개는 ‘탐탐’이라 부른다. 하이탐, 미드탐, 플로어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소절과 소절 사이 빈 공간에서 “두둥 둥 두두두둥” 하고 변주를 할 때 쓴다. 이를 빈 곳을 채워넣는다는 의미로 ‘필인’(fill-in)이라 부른다. 금속으로 된 심벌즈는 왼쪽의 하이햇 심벌, 그 옆의 크래시 심벌, 오른쪽의 라이드 심벌 등으로 구성돼 있다.

드럼 세트 1 하이햇 심벌 2 스네어 드럼 3 하이탐 4 베이스 드럼 5 라이드 심벌 6 플로어탐 7 베이스 드럼 페달

기본 드럼 세트를 갖추려면 적게는 100만원대부터 가능하다. 하지만 집에 드럼 세트를 두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방음 시설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연습실이나 학원에서 드럼을 치고, 집에서는 고무로 된 연습용 드럼패드를 친다. 매주 한 번씩 레슨 받고 집에서 연습하기를 두 달쯤 하면 쉬운 곡 하나를 연주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제 스틱 쥐는 법을 배울 차례다. 검지의 둘째 마디 위에 스틱을 얹는다. 그리고 엄지로 살포시 누른다.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는 스틱을 부드럽게 감싸쥔다. 너무 세게 움켜잡으면 안 된다. 양손 다 이렇게 쥐는 걸 ‘매치트 그립’이라 한다. 가장 흔한 방식이다. 왼손만 다르게 잡는 방식도 있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 가장 깊숙한 곳에 스틱을 끼운 뒤 중지와 약지 사이를 통과시킨다. 이를 ‘트래디셔널 그립’이라 한다. 북을 메고 행진하면서 치는 마칭 밴드에서 많이 쓰인다.

통기타를 배울 때는 지판을 누르는 왼손 손가락 끝이 아프고 때론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굳은살이 박이는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서야 괜찮아진다. <위플래쉬>를 보면 주인공이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손에서 피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피 좀 봐야 하는 건가? “아무리 많이 쳐도 손에서 피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물집이 잡힐 수는 있지만, 그런 일도 드물죠. 영화를 보면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드럼을 치던데, 그러면 안 돼요. 힘을 빼고 부드럽게 쳐야 하죠.” 피를 안 봐도 된다니 다행이다.

드럼을 칠 차례다. “드럼을 치려면 양손과 양발이 따로 놀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게 떠올랐다. 왼손으로 가슴을 위아래로 쓸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건 자신 있다. 하지만 왼손으로 세모를 그리고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는 건 번번이 실패였다. “하하하~. 그런 거랑 드럼이랑은 상관없어요. 드럼 칠 때 손발이 따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데, 결국은 같이 가는 거라고 봐야 합니다.”

스틱 쥐는 법은 ‘매치트 그립’이 일반적이다.

‘트래디셔널 그립’은 마칭 밴드에서 많이 쓰인다.

가장 기본적인 4분의 4박자 팝 리듬을 치기로 했다. 우선 오른손으로는 오른쪽의 라이드 심벌 또는 왼쪽의 하이햇 심벌을 네 박자 모두 두드린다. “챙, 챙, 챙, 챙.” 첫번째 박자에선 오른발 페달을 밟아 베이스 드럼을 친다. “쿵.” 세번째 박자에선 왼손으로 스네어 드럼을 친다. “짝.” 연속으로 치면 이렇다. “쿵/챙, 챙, 짝/챙, 챙.”

심벌을 두드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치면 되니까. 문제는 베이스와 스네어 드럼이다. 홀수 박자에 손과 발을 번갈아 움직여야 하는데, 말처럼 쉽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스네어만 쳐야 할 때 베이스를 같이 친다든지, 베이스만 쳐야 할 때 스네어를 같이 치는 실수가 이어진다. 계속 치다 보니 실수가 줄면서 어느 순간 흐름에 올라탔다는 느낌이 든다. 파도타기를 할 때 파도 꼭대기에 올라타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앞으로 가는 느낌이랄까.(실제로 파도를 타보진 않았다;;;) 언제 베이스를 치고 언제 스네어를 쳐야 하는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손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유레카!’

한동안 자연스럽게 연주가 이어지다 어느 순간 꼬인다. 베이스를 치는 박자가 살짝 어긋난다든지 베이스와 스네어를 또 같이 친다든지 하는 식이다. 실수를 넘기고 다시 안정을 찾아야 할 텐데, 제 궤도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다.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도 한다. 심리적 문제다. “중심을 잡는 드럼이 흔들리면 밴드 전체가 흔들리게 돼요. 드러머는 지휘자처럼 냉철해야 합니다.”

실제로 음악 전문 고교 시절 재즈 드러머였던 <위플래쉬>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박자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다음날 다시 연습실을 찾았다. 디자인회사 대표인 김성인(55)씨가 드럼을 치고 있었다. 3년째 매주 레슨을 받아왔으며, 집에 드럼 부스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복잡한 펑크(funk) 리듬을 쳤다. 아직 합주를 해본 적은 없어도 녹음된 음악과 합을 맞출 땐 짜릿하다고 했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몸이 좀 불편했는데, 드럼을 연주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예순살까지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밴드 일원으로 남들 앞에서 연주해보는 게 꿈입니다.”

나도 10년 뒤 저렇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기적으로 레슨을 받아볼까? 아니, 당장 음악 들을 때 ‘에어기타’(허공에다 대고 기타 치는 시늉을 하는 것) 말고 ‘에어드럼’부터 시작해볼까? “쿵짝 쿵짝 두구두구두구 둥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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