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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잔치비를 장학금으로 기부한 할머니

  • 강병진
  • 입력 2015.04.17 12:15
  • 수정 2015.04.17 12:19

세상에 아낌없이 주고 떠난 기부천사 황금자 할머니(☞관련기사: 강서구 첫 구민장 치룬, 황금자 할머니를 아시나요?)에 이어 강서구에는 아름다운 기부 릴레이가 펼쳐지고 있다. 화곡동 다가구 주택에 사는 김진순 할머니는 올해 칠순을 맞았다. 자녀들은 평생 고생한 어머니를 위해 올해 칠순잔치를 해드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칠순 잔치를 접고 대신 비용 500만원을 고스란히 황금자 장학금으로 강서구에 기탁했다.

김진순 할머니는 올해 칠순을 맞았지만, 잔치비용을 모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할머니가 사는 화곡동 다가구 주택, 거실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는 온기 없는 차가운 방에서 옷 손질 중이었다. “추운데 어쩌나? 발이 시릴 텐데…” 차가운 방바닥이 맘에 걸렸던지 할머닌 기자에게 슬리퍼를 내주었다. 할머니가 뚝딱 재봉질을 마친 옷은 한 눈에 봐도 낡아 보였다. 색 바랜 옷은 꿰맨 자국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4월 초순이라 아침저녁으로 아직 쌀쌀한 때인데 난방을 켜지 않은 채 헤진 옷을 손질 해 입는 할머니의 검약정신은 집안 곳곳에 밴 듯 했다.

옷과 양말에는 꿰맨 흔적들이 가득하다

“길에서 힘들게 폐지 모아다 장학금 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뭘” 기자의 방문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할머니는 겸손해 하셨다. 무릎관절이 안 좋아 평생 해왔던 장사는 접었지만, “슬하의 삼형제 는 모두 장가보내고 작은 평수지만 바람 막아줄 집도 있으니 이곳저곳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수중에 남아 있는 것 모두 내어주고 다 비우는 것이 남은 생의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김할머니의 이웃돕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서구에서 매년 연말 벌이는 불우이웃돕기에 할머니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동참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1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김할머니의 따뜻한 나눔은 강서구 관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노숙인을 위한 의료시설인 영등포의 한 병원에도, 북한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연평도 주민들에게도, 한센인을 위해 소록도까지도 달려가 후원했다. 2010년 지진 피해가 컸던 아이티와 오랜 가뭄으로 시름을 앓고 있는 아프리카 우물만들기 사업에도, 인도 펌프물 후원에도 할머니의 손길은 지구촌 먼 곳까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빼곡하게 모아둔 후원 영수증 파일을 들고 있는 김진순 할머니

앨범 크기의 한 파일에는 그동안 후원했던 영수증과 무통장 입금표 들이 빼곡했다. 할머니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이 기록물 중에는 집안의 물건을 팔아 성금을 냈던 흔적도 보인다. 골동품이 된 반닫이와 소지하고 있던 오래된 복권도 경매로 처분해 이웃돕기에 후원을 했다.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후원금 영수증을 필히 받고 있다고 했다. 영수증을 발급 받기가 어려운 곳은 하다못해 자필 서명된 종이를 받아오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왜 영수증을 모으는 걸까? 할머니는 서로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원금을 받은 쪽에선 책임감에 더욱 신중하게 집행할 테고 후원을 한 할머니 또한 날로 늘어나는 후원금을 보면서 열과 성을 다해 더 열심히 후원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김진순 할머니는 신문 기사에 나온 사연 하나도 지나치지 않는다

거실 탁자 유리판 아래로 스크랩한 여러 장의 신문 기사가 눈에 띈다. 남편과 사별 후 아이 셋을 돌보다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젊은 엄마의 사연, 조계종의 난치병 어린이 지원 3000배 정진기도 기사 등 행여 놓칠세라 연락처에 밑줄을 그어 챙겨 두었다. 이렇듯 꼼꼼히 알아보고 당장 절박한 곳부터 찾아 알뜰하게 후원해 왔다. 10년 이상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있지만 할머니의 생활이 결코 여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달걀 장수, 생선장수, 나물새 좌판 등 손에 닥치는 대로 장사란 장사는 거의 다 해봤을 정도로 할머니의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후원, 입금계좌에 밑줄이 그어있다

20여 년 전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삼형제를 키워낸 할머니 형편이 어땠는지는 주방에만 가보아도 조금 짐작이 간다. 복(福)자가 새겨진 오래된 사발과 접시가 주방에 그대로 놓여있다. 양은 찬합과 놋숟가락 등 여느 가정집 주방에선 좀체 볼 수 없는 오래된 식기류를 할머니는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진작 버려졌을 오래된 그릇들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할머니의 검소한 생활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거실의 전화기도 옛날 6~70년대식 쩌렁쩌렁한 신호음이 울리는 구식 전화기를 여태 사용하고 있었다. 할머니라고 세련된 디자인의 전화기와 산뜻한 그릇들을 왜 사고 싶지 않았겠는가!

오래된 사발과 접시 그리고 전화기가 할머니의 검약정신을 보여준다.

할머니네 세금 고지서 중 가장 요금이 높은 항목은 통신비다. 고지한 요금이 7만원을 넘는다. 기본료와 실제 통화료는 사실 일 만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인데 왜 그런걸까? 살펴보니 사용내역에는 후원금과 기부금 명목으로 지출한 통화료가 잡혀있다. 어딘가에 할머니는 또 후원을 한 것이다. 3만원에서 10만원 내외로 매달 지출되는 할머니의 후원금은 난방비와 전기세 등 생활비를 절약해 아껴 모은 것이라 더욱 빛나 보였다. 칠순잔치보다 장학금 기부를 선택한 김할머니의 이웃돕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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