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잊지 말아야 할 것

꼬박 일 년이 흘러가는 동안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에 더해 변한 것도 없다. 여전히 아기를 갓 벗어난 아이들이 제대로 돌봄을 못받아 유치원 버스에 치여 죽고, 버스는 안전벨트는커녕 자리에도 앉지 않은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고속으로 씽씽 달린다. 조금 더 돈을 내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조금 더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원칙 대로 가는 것이 옳고, 그러하니 우선 나라도 그리 하겠다, 뭐 이런 사고의 전환은 없었다는 거다.

  • 김세정
  • 입력 2015.04.17 11:08
  • 수정 2015.06.17 14:12
ⓒ연합뉴스

페이스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릴레이 캠페인을 이어 가라고 두 분에게 진작에 지명을 받았다. 이런 지명 받는 것을 그닥 즐기지는 않으나, 어쨌거나 후딱 써버리거나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이건 도무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뭔가 써지지도 않고, 모른 척 무시를 할 수도 없고. 당최 페이스북에 아예 글을 쓰지를 못할 지경이었다.

물론 잊지 않았다. 그러므로 잊었으므로 마음이 불편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앞으로도 쉽게 잊을 것 같지 않다.

작년의 어제, 나는 그 다음 날 시실리로 짧은 휴가를 떠나기 위해 이것저것 마무리를 하는 참이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을 한가득 태운 배가 가라앉았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서 보았다. 처음엔 전원구조라 들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북한도 아니고 저기 어디 제3세계의 후진국도 아니잖아. OECD 가입국가이자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IT 강국 대한민국인 거다.

그러니, 다 구했다니 참말 다행인데 심하게 다친 사람은 몇 명이나 되려나, 그것만 걱정이었다. 평시처럼 장난스러운 댓글을 달고 하는 와중에 친구가, 가만히 있어봐, 이거 지금 이럴 일이 아닌 거 같아, 심각한 거 같아, 라고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단 한 명도, 정말이지 단 한 명도 그 배에서 더는 살아나오지 못했다. 그 뻔히 눈앞에서 보이는 배 안에 아이들을 포함한 삼백여명의 사람들이 갇혀서 그냥 죽었다. 그걸 그냥 무력하게 보고만 있었다. 나는 즐거웠어야 할 며칠의 여행 동안, 단 하나뿐인 내 아이가 무사한 것이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미안했고, 어디가 고장난 듯이 계속 눈물이 났다. 저 바다가 결국은 아이들을 삼킨 그 바다와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에 바다만 봐도 미칠 것 같았는데, 시실리 바닷가 아주 작은 요새의 문간을 지키고 있던 고은의 시를 사랑한다던 몸집 작은 대머리의 이태리 사내가 너희 나라 배가 가라앉아 사람이 많이 죽어 슬프겠다며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하는 통에 다시 엉뚱한 바닷가에서 눈물 바람을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꼬박 일 년이 흘러가는 동안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에 더해 변한 것도 없다. 여전히 아기를 갓 벗어난 아이들이 제대로 돌봄을 못받아 유치원 버스에 치여 죽고, 버스는 안전벨트는커녕 자리에도 앉지 않은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고속으로 씽씽 달린다. 조금 더 돈을 내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조금 더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원칙 대로 가는 것이 옳고, 그러하니 우선 나라도 그리 하겠다, 뭐 이런 사고의 전환은 없었다는 거다.

잊지 못했고, 아마도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 큰 배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울어져 있던 모습을 보며 느꼈던 황망함을, 허둥지둥하기만 할 뿐 아무도 살려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모습을 보며 느꼈던 분노를, 무엇보다도, 아 무서워 우리 죽는 거 아냐 엄마아 아빠아 어쩌고 저쩌고 재재거리며 태평하게도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모습을, 그 무력함과 슬픔을,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깡그리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모든 감정들을 그저 그대로 잊지 말자고 하면, 그건 도무지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견뎌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산 사람의 경우, 어떤 것들은 잊어야만 살기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늘 눈물이 나고 바다만 보아도 슬프고 그 나이 아이들만 보아도 견딜 수 없고, 이렇게는 살 수가 없다. 정말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어떤 것들은, 어쩌면 잊을 수도 있는 것이고 어쩌면 잊어야만 하는 것이고 잊지 말자고 잊지 말라고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잊지 말라고 말할 수 있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발생했고, 그래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저 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하여 오랜 세월 안전수칙도 절차도 직업윤리도 무시하고 팽개쳐 온 관행이, 자기만 살고 보겠다는 비도덕성이, 본연의 업무보다는 조직 내 의사결정 체계만을 우선하는 경직성이, 무능함이, 안전불감증이, 이 사고를 발생하게 했고 대형참사로 키웠다는 그 사실이다. 이와 같은 끔찍한 참사가 발생하는데 사실은 우리 모두가 기여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달라지고 사회 전체가 달라지도록 촉구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이런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월의 꽃과도 같이 너무나 화사한 아이들을 포함하여 알려진 숫자만 삼백 명 이상이 죽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그 죽음들을, 그 슬픔을 잊지 않는 것으로 멈춰서는 안된다. 슬픔을 넘어서 더 나은, 더 안전한,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어야만 한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김세정 #1년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