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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피규어 대통령' 조웅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C-3PO와 R2-D2 또한 실제 크기로 제작된 희귀 아이템인데 가격이 무려 5,000~6,000만 원이고 그나마 이제는 억만금을 주고라도 구할 수가 없다. 처음 조웅 씨가 이 피규어를 접했을 당시에도 이 제품은 2,0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하지만 조웅 씨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 제품을 구경조차 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고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모아왔던 돈으로 피규어를 사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이야 경제적으로 성공한 투자였지만 그 당시에는 보통사람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단한 결심이었다.

  • 박균호
  • 입력 2015.04.20 07:26
  • 수정 2015.06.20 14:12

누구나 키덜트나 오타쿠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그리고 일반인들은 생각지 못한 기상천외한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유독 장난감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어조로 '키덜트' 또는 '오타쿠'라고 부른다. 전자는 어른이지만 하는 행동이 아이와 같다는 의미로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이며, 후자는 이상한 물건에 몰두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어다. 이를 우리식으로 오덕후라고도 부른다. 둘 다 호의적인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평소 점잖은 사람도 누구나 오타쿠가 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나만 해도 야구와 뮤지션 피규어에 관심도 많았고 몇몇 피규어도 모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의 피규어를 수집하는 사람을 보면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야하고 다소 망측한 애니메이션 피규어를 잔뜩 수집한 사람이 장모님이라도 들이닥치면 부리나케 애장품을 숨긴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왜 저런 물건을 수집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던 중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란 일본 소설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고서와 희귀본에 얽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내용의 소설이었는데 이 책이 너무 재미나서 만화 버전이 나오자마자 구매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 책을 원작으로 제작한 일본 드라마까지 구해서 볼 정도였다. 급기야 이 소설의 아름다운 여주인공 '시노카와 시오리코'의 피규어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키덜트나 오타쿠는 일반인들이 상상치 못하는 외계인이나,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피규어는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분야에까지 뻗어 있다. 조금 과장하면 피규어는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 존재한다. 연예인부터 건축물, 뮤지션, 소설 캐릭터, 만화 주인공, 역사적인 인물, 사건, 자동차, 군인, 무기, 종교 지도자, 스포츠 스타 등 그 종류와 형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어떤 종류의 피규어든 일정 수준 이상의 세밀한 피규어를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피규어에 관심을 갖고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막상 돈을 주고 사라면 지갑을 열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피규어의 상업화가 활발하지 못해 구하기 힘든 피규어가 많고, 이를 구하기 위해 해외 직구나 해외에 사는 지인을 통해 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피규어를 국내에서 구하는 수집가는 초보 단계이며 해외로까지 손길을 뻗는 수집가는 중급 단계라고 본다. 해외 사이트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는 희귀한 모델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맥팔레인 같은 스포츠 피규어의 경우 크기가 대략 12센티미터 정도인데, 수십 개만 사도 아내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피규어 수집가는 피규어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람과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나뉜다.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수집가는 피규어를 손에 넣으면 무조건 개봉을 한다. 그리고 좀 더 부지런하다면 진열장을 마련하거나 심지어 직접 진열장을 만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피규어는 전시를 해야 한다는 주의다. 반면에 피규어와 플라토닉한 사랑을 즐기는 수집가는 피규어의 순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비닐 포장을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좀 더 단단한 보호 포장을 할 정도다. 그들은 피규어를 절대 개봉하지 않는다. 박스 채로 나란히 차곡차곡 쌓아둘 뿐이다.

그러나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수집가든,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는 수집가든 피규어 수집가는 금방 집안 식구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책처럼 고상하지도 않고, 오디오처럼 뭔가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부피는 만만찮게 차지하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덕후 취급이나 받으니 식구들의 탄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포즈나 형상이 선정적인 일본 미소녀 애니메이션 피규어를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

펜웨이파크, 그 5분의 기쁨

나는 피규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야구가 좋아 피규어를 수집한 경우다. 물론 주로 야구 피규어를 수집했는데 처음에는 인터넷 카페에서 주로 구입했다. 그러나 차츰 국내에서 구하지 못하는 희귀한 모델이나 클레이 소재의 덴버리민트 사의 피규어 등은 이베이를 통해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간적인 제약과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 그리고 수집을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진정한 수집가의 반열에는 미치지 못했다.

보스턴 레스삭스의 홈구장 , 펜웨이 파크 피규어.

내가 가장 아끼던 컬렉션은 덴버리민트사에서 나온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의 모형이다. 1912년 건설되어 전체 메이저리그 홈구장에서 가장 오래된 펜웨이파크는 '그린 몬스터'라는 애칭을 가진 11.2미터의 좌측 녹색 펜스가 가장 큰 특징인데 아직도 스코어보드를 사람 손으로 갈아야 하며 관중석은 물론 더그아웃은 좁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펜웨이파크는 외야의 펜스를 뒤덮는 담쟁이가 특징인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필드와 함께 가장 사랑받는 구장이다.

현재까지 제작된 펜웨이파크의 모형 중에서 가장 실물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은 덴버리민트의 펜웨이파크 모형은 하단은 나무, 상단은 클레이 소재로 마감된 고급스러움과 실물과 같은 정교함을 자랑한다. 길이가 25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이 모형은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다른 모형에 비해서 크기나 정교함이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이 모형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구장의 조명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배송료 포함 35만 원 정도) 12센티미터 정도의 피규어도 파손의 위험이 커서 해외 배송을 잘 해주지 않는 판매자가 많은데 이 무지막지한 모형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배송해주는 판매자를 만난 것은 순전히 나의 큰 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전혀 파손이 없는 상태로 배송을 받았는데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펜웨이파크의 아름다운 조명을 빨리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허둥지둥 전원 코드를 연결하고 말았다. 그런데 코드를 연결하는 순간 뿌지직 하는 소음과 함께 불쾌한 냄새가 났다. 220볼트인 국내 전압과 110볼트인 미국의 전압 차를 간과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코드를 뽑았지만 모형의 내부가 성할 리 없었다. 결국 역사상 최고의 펜웨이파크 모형을 손에 넣었다는 기쁨은 채 5분이 가지 못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고친 흔적이 없이 수리해줄 가게나 기술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았다. 분해를 하려고 해도 하단부가 나무 소재인 데다 연결 부위가 없어서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하단부를 칼로 뜯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수리를 해줄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인터넷상에서 "그런 것쯤은 만들기도 하는데 고치는 것은 쉽다"는 용자가 나타났다. 의인을 만난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그 용자의 가게가 있는 서울로 피규어를 올려보냈고 무사히 수리가 되어서 돌아오기를 초초하게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열흘 만에 펜웨이파크 모형이 돌아왔다. 그러나 모형을 받아드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흔적 없는 수리를 약속했던 그 기술자는 다른 기술자의 말처럼 바닥을 칼로 도려내고 수리를 했으며, 도려낸 자국에는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는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분노와 실망감이 극에 달했지만 어쩌겠는가? 다행이 도려낸 자국은 바닥이니 전시를 하고 감상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아시아 최대 영화 피규어 갤러리 CW

오디오 마니아와 음반 수집가의 궁극적인 지름신이 '큰 집'인 것처럼 피규어 수집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피규어를 구하는 대로 전시한다면 금세 집안 곳곳이 피규어 천지인데다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눈이 휘둥그레지기 십상이다. 결국 수집도 문제지만 수집된 피규어를 제대로 전시할 공간이 더 시급한 문제가 된다. 간혹 진열장을 마련해 전시하는 애호가도 있지만 그 역시 금방 한계를 만난다. 사실 15센티미터 정도의 피규어를 100개 정도만 개봉해서 전시해보면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집가들은 개봉을 하지 않고 창고나 다용도실에 쌓아두고 다른 가족의 눈총을 받는 운명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CW라는 거대한 피규어 전시 공간을 마련한 조웅 씨는 모든 피규어 수집가들에게는 신화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조웅 씨와 CW가 모든 피규어 수집가들의 롤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넓은 전시 공간과 많은 관람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시네마월드(Cinema World)의 약자이기도 하고 또 본인 이름의 약자이기도 한 CW는 장엄하고 화려한 영화 피규어와 소품을 감상하면서 외식을 즐길 수 있는 '복합 외식 문화 공간'이다. 한때 조웅 씨의 인터넷상의 닉네임인 WC로 갤러리 이름을 정하려 했지만 WC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화장실을 연상케 해 엄밀히 말하면 '식당'인 공간의 이름으로는 무리수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 이름을 포기했다고 한다.

CW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 피규어 갤러리라는 명성과 함께 주말 이면 평균 400명의 방문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방문객의 70퍼센트 이상이 성인이라는 점이다. 일단 방문을 하면 쉽게 그 궁금증은 풀리는데 그는 피규어를 단순한 배치로 전시하지 않고 철저한 계획과 영화미술팀을 비롯한 영화의 전문가들을 디스플레이 기획에 참여시켰다. 캐릭터의 성격, 영화의 장르, 피규어의 포즈와 색깔을 고려해 배치했고, 영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영화 속의 명장면을 피규어를 이용해서 그대로 구현하는 독특하고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CW를 단순히 외식 공간이 아닌 관광 명소의 반열에 이르도록 한 원동력이다.

한눈에 봐도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 같은 갤러리의 외관과 70평의 공간에 무려 3,000여 개에 달하는 피규어가 일사분란하게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실내, 박물관처럼 수려한 디스플레이에 영화 속의 캐릭터를 꼭 닮은 피규어를 구경하면서 식사를 하는 즐거움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 말하자면 놀이공원과 뷔페의 즐거움을 동시에 즐기는 공간인 것이다.

CW가 가장 자랑하는 희귀 아이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시된 영화 <터미네이터 2>의 오프닝 장면을 실제 크기로 고스란히 재현한 디오라마다. 베이스 제작을 위해 직접 돌멩이 하나하나를 채집하는 심혈을 기울였다. 전신상 네 개가 하나의 디오라마로 꾸며지고 일반인에게 공개된 세계에서 유일한 장소가 CW다. 로보캅 흉상 피규어도 이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데 역시 실제 크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영화 속의 장면과 똑같이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 조웅 씨는 인터넷 경매에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피규어 컬렉터 50명과 치열한 전투를 밤새 치렀다.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C-3PO와 R2-D2 또한 실제 크기로 제작된 희귀 아이템인데 가격이 무려 5,000~6,000만 원이고 그나마 이제는 억만금을 주고라도 구할 수가 없다. 처음 조웅 씨가 이 피규어를 접했을 당시에도 이 제품은 2,0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하지만 조웅 씨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 제품을 구경조차 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고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모아왔던 돈으로 피규어를 사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이야 경제적으로 성공한 투자였지만 그 당시에는 보통사람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단한 결심이었다.

CW의 컬렉션 중에서 조웅 씨가 가장 힘들게 구한 품목은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토토가 감독이 되어, 마지막 장면에서 사용한 영사기인데 실제로 영화 속에 출연한 영사기는 아니지만 영화 속 영사기와 같은 모델을 찾기 위해서 근 2년간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더구나 정확한 모델명조차도 알지 못해서 영화의 장면을 캡처한 다음 해외 빈티지 영사기의 사진들과 일일이 대조한 끝에 1950년대에 단종된 독일산 영사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모델명을 어렵게 알아냈지만 제품 자체를 구하지 못한 그는 인터넷과 오프라인을 찾아 뒤진 끝에 마침내 독일의 시골 할아버지가 자신의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을 단돈 1달러에 구매하는 행운을 얻었다.

'스타워즈' 시리즈 피규어 앞에 선 조웅씨.

피규어 대통령 조웅

수십 개가 넘는 다양한 언론 매체가 주목한 '가장 성공한 피규어 덕후' 조웅. 그는 전 세계 피규어 팬과 수많은 관광객이 참석한 미국 올랜도 <스타워즈> 30주년 행사에 아시아 대표로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했다. 그곳에서 아랍계 거부로부터 <스타워즈> 관련 피규어 컬렉션을 13억 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피규어 대통령으로 칭한다. 하지만 사실 그의 이력은 남다를 게 없다.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고 전공을 용케 살려 국내 모 자동차 광고팀의 그래픽디자이너로 근무한 게 그의 주요 경력이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피규어 덕후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미국 애리조나를 여행할 때 우연히 들른 피규어 매장 덕분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피규어라는 용어도 낯설었고 피규어를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만 여겼다. 그 역시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의 앞에 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무생명체의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서 있었다. 영화 속의 캐릭터보다 더 정교하고, 생동감 넘치는 피규어를 본 그는 피규어가 장난감이 아닌 소장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피규어에 투입했다. 마치 음악평론가 김갑수가 오디오 수집에 올인한 나머지 휴지가 없어서 생리현상을 치르고 나면 강제적으로 샤워를 했다는 일화처럼 조웅 씨도 아들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응원하던 아버지마저 반대를 할 정도로 피규어 수집에 몰입했다. 부친의 반대에 그는 "10년 안에 피규어 수집을 하나의 취미생활로 정착시키겠다"는 포부로 맞섰고 십여 년간의 덕후질 끝에 누구도 넘보지 못할 1만여 점의 피규어 컬렉션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피규어의 백만 대군을 이끌고 경북 경산에 내려온 그는 '피규어 갤러리 겸 레스토랑'이라는 동화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환상적인 아지트를 만들어냈다.

그의 본거지인 CW는 그중에서 엄선한 일부만이 전시되고 나머지는 별도의 물류 창고에 보관 중이라는 설명에 기겁을 한다. 수천 권이 꽂힌 서재를 두고 여기 있는 것은 아직 안 읽은 책만 모아둔 것이고 읽은 책은 다른 곳에 있다는 '움베르트 에코'의 패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가 가장 성공한 피규어 덕후로서 세상으로 나온 계기가 된 것은 스타워즈 피규어 덕분이다. 2007년 그가 그동안 힘들게 수집한 <스타워즈> 시리즈로 장식된 자신의 집안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사실 덕후라면 누구나 하는 '놀이'인데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감각적인 디스플레이와 다른 자잘한 피규어를 압도하는 위엄을 가진 <스타워즈> 피규어의 앙상블을 담은 그의 사진은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마침내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등극하는 감격을 누렸다. 이전까지 연간 방문객 수가 300여 명에 불과했던 그의 은둔의 블로그는 하루에만 무려 23만여 명의 방문객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국내외에 피규어 대통령으로서의 위엄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찬반 여론의 도마 위에도 올랐다. 물론 돈 낭비로 대표되는 쓸데없는 짓이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정작 조웅 씨의 행보에 영향을 준 것은 주부들의 격려 메일이었다. 평소 남편의 피규어 수집을 탐탁찮게 생각했던 많은 주부들이 조웅 씨의 감각적인 수집과 전시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피규어 수집이라는 취미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조웅 씨가 이런 주부들의 격려에 피규어 컬렉터로서의 자부심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수집을 향한 열정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피규어를 수집하는 사람의 최고 경지는 커스텀 피규어 제작자다. 일반적인 수집가가 단지 다른 사람이 디자인하고 만든 피규어를 구매할 뿐이라면 커스텀 피규어 제작자는 타인의 작품을 토대로 도색과 채색을 덧붙여 전혀 다른 자신만의 피규어를 만들어낸다. 피규어 자체가 굉장히 정교하고 미세한 물건인데 여기에 자신만의 도색과 채색을 더해서 자신이 원하는 독특한 피규어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야말로 피규어계의 최고봉이라 불린다.

조웅 씨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그 전공이 그의 피규어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수집한 피규어를 진열하는 방식이라든지 영화의 장면을 재현하는 데 그의 디자인 능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 실제로 그는 디자인을 전공했으면서도 1년 가까이 학원을 다니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막시무스의 실제 사이즈를 제작해내기도 했다.

우리 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보면서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제일 먼저 던지는 말은 "이거 다 읽으셨어요?"다. 그렇다면 피규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자주 듣는 말은 뭘까?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이게 다 얼마치예요?"다. 1만 개가 넘는 피규어를 수집했으니 대중들이 값어치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구나 조웅 씨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13억 원에 사겠다는 중동 갑부의 제의를 거절한 엄청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니 그가 대체 피규어 수집에 얼마만한 돈을 투자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호기심에 조웅 씨의 대답은 한결같다. "피규어는 1만 원부터 수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격이 있지만 나의 피규어 수집을 향한 열정은 가격을 매길 수 없어요"이다. 마치 멋진 사진을 보고 작가에게 "이 사진 무슨 카메라로 촬영하셨어요"라는 질문이 큰 실례이듯이 그에게 피규어의 가격을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심이라는 것은 꼭 아이들의 마음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조웅 씨는 믿는다.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동심을 만나고 키워주는 동화 같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의 피규어가 도움이 된다면 그는 언제까지라도 피규어를 모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갤러리의 공간을 넓혀나가기를 원한다.

* 이 글은 필자의 책 <수집의 즐거움 -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수집 이야기>(두리반, 2015)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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