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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16일 10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16일 10시 41분 KST

구조 실패한 해경, '윗선'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한겨레21>이 입수한 123경비정 정장 및 승조원 13명에 대한 검찰 수사 자료를 보면, 해경이 ‘여론 조작’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다. 해경 수뇌부는 구조 작업에 한창이어야 할 4월16일 이후 적어도 세 차례 ‘여론 전환’을 시도했다.

그 첫 번째는 지난해 4월23일. 세월호 침몰 8일째. 수색·구조 임무를 띤 해경 경비정 123정 선원 이아무개(36) 경사에게 해양경찰청 대변인실 성아무개 총경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본청 대변인실 총경이 소형 경비정 경사에게 직접 전화해 지시한 내용은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게 아닌 것 같은” 인터뷰였다. “진도 파출소에 들렀다가 우연히 기자를 만나서 인터뷰하게 된 것처럼 하세요.” 결국 이 경사는 이날 어느 방송사 기자와 만나 인터뷰했다.

그가 속해 있던 123경비정은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9시35분부터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된 10시17분까지 ‘구조’ 골든타임에 현장에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했고 유일한 함정이어서 현장지휘관(OSC) 함정으로 지정됐다. 김경일(57·경위) 123경비정장은 당시 구조헬기·민간어선 지휘 임무까지 모두 맡아야 했지만, 12명에 불과한 소속 선원 지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23경비정과 해경 수뇌부의 허점투성이 초기 대응으로 해경은 당시 비난 여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경사는 이런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해경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123정 선원이었던 이 경사는 인터뷰를 위해 상부에서 마련한 함정을 타고 구조 현장에서 진도로 나왔다. 181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였다. 더딘 수색·구조 작업으로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던 시점이었다. 하루 뒤부터는 소조기가 끝나 물살이 다시 빨라질 예정이었다. 주말에는 강풍과 비가 예고돼 있었다. 이 시점에 해경 수뇌부로부터 받은 임무는 ‘만전을 기한 수색·구조 작업’이 아니라 “(4월16일 사고 당일) 구명벌을 터뜨린 사실을 알려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던 해경에 대한 여론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었다고 이 경사는 검찰에서 진술했다.

지난해 4월28일 김경일 정장을 비롯한 123정 승조원들은 해경이 주선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김경일 정장은 실제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음에도 ‘퇴선 방송을 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한겨레

“‘구명벌 터뜨렸다’ 알려라”

그 두 번째는 닷새 뒤인 4월28일 언론 기자회견에서 이뤄졌다. 해경이 갑자기 준비한 기자회견이었다. 이 자리에는 김경일 정장이 직접 나섰다. 김 정장은 검찰 피의자 신문에서 이 기자회견에 대해 “갑자기 위에서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 진도 서망항으로 오라’고 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선원들도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

사고 당시 퇴선 명령이나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음에도 김 정장은 기자회견에서 “9시30~35분 사이 수차례 방송했다”고 거짓말했다. 부정장 김아무개 경위가 직접 시연도 했다. 이날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을 압수수색한 날이었다. 이날 해경은 그동안 공개하지 않던 사고 당일 구조 동영상도 갑자기 내놓았다. 해경으로서는 국면을 전환할 새로운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김 정장 등의 이날 회견 내용이 거짓이었음은 이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한 달 뒤인 5월25일에는 다른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날 김 정장은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서장님 김경일입니다. 조갑제 기자님과 통화했습니다. 구조 인원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쉬십시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앞서 조갑제 기자는 김 정장에게 ‘해경 홍보팀에서 소개받았다. 통화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이날 조갑제닷컴에는 ‘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 인터뷰,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선실 진입 시도도 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하루 뒤 123정의 박아무개 경장도 조갑제닷컴과 인터뷰했다. 김 서장 등 해경 지휘부가 특정 매체와의 인터뷰를 주선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김 정장은 4월28일 해경이 갑자기 준비한 기자회견에서, 실제로는 퇴선 명령이나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지만 “9시30~35분 사이 수차례 방송했다”고 거짓말했다.

목포해경 경비구난과 지시를 토대로?

김 정장의 거짓말이 혼자만의 결정이었을까. 윗선과 교감이 있었음을 방증하는 단서가 있다. 4월28일 기자회견 직전인 오전 8시25분부터 9시44분까지 6차례에 걸쳐 22분여 동안, 김 서장은 김 정장과 통화했다. 검사가 피의자 신문에서 통화 내용을 묻자 김 정장은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인터뷰 잘하라고 한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인터뷰의 핵심은 ‘퇴선을 명령했다’는 거짓말에 있었다.

여론 조작 시도 외에 해경이 사실관계를 왜곡해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것도 취재 결과 드러났다. 김 정장은 사고 당시 선내 진입을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선내 진입 지시를 했다는 내용을 기재한 문서를 제출하라고 목포해양경찰서로부터 요구받았다.

검찰이 김경일 정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분석한 ‘123정장 휴대전화 모바일 분석 수사보고’(이하 모바일 분석) 문건을 보면, 김 정장은 5월13일 목포경찰서 경비구난과 이아무개 경장에게 ‘세월호 동영상 근거 시차별 조치사항’ 문건을 문자메시지로 사진을 찍어 보낸다. “계장님 부탁한 내용이야”라는 문자와 함께였다. 목포해양경찰서 경비구난과 계장이 해당 문건을 요구했다는 뜻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인 4월 중순에 만들어진 이 문건의 원래 이름은 ‘침몰선박 세월호 관련 시차별 조치사항’이었다. 그러다 5월13일 목포경찰서의 요청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두 문건의 핵심적 차이는 ‘선내 진입 불가 판단’이라 적혀 있었던 123정의 주요 조치사항(9시37~40분)을 ‘선내 진입 실패’로 바꾼 점이다.

김 정장은 책임 모면을 위해 4월16일 당일 상황을 표로 작성한 ‘세월호 시차별 구조 사항’이라는 문서에 거짓말을 추가한다. 당초 4월16일 9시37~40분에 ‘선내 진입 불가 판단’이라고 썼던 문구를 ‘선내 진입 실패’로 바꿨다.

비극의 원인 ‘개인의 업무 자세와 역량’

검찰은 이에 대해 “김 정장이 5월12일 목포경찰서 경비구난과 계장으로부터 ‘해경이 선내에 진입했으면 승객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문자로 제공받은 뒤 상부에서 지시를 받고 신문기사 내용에 맞추어 선내 진입을 지시하였고 선내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것으로 조직적으로 모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해당 기사를 반박하기 위해, 해경이 구조 당시 선내 진입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내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내용으로 사실을 조작하도록 도모한 것이다.

해경이 ‘조직적 모의’를 한 정황은 또 있다. 검찰은 김경일 정장의 노트북을 압수수색해 발견한 ‘1.hwp’라는 제목의 문건에 대해서도 “누군가로(부터) 검찰 조사에 대비하여 질문 사항 파일을 제공받아 이를 검찰 조사를 받은 대원들로 하여금 작성하도록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봤다(‘수사보고 [123정장 등 컴퓨터 압수수색을 통한 확보된 파일 분석]’). 검찰은 이처럼 수사 과정에서 몇 차례 ‘허위 진술’ 등에 조직적 모의가 있다고 봤지만 조직적 모의를 지시한 명령자를 찾아내는 추가 수사를 벌이지는 않았다.

검찰은 구조 실패 책임의 ‘윗선’을 찾는 데도 소홀했다. 세월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지난해 10월7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극’의 원인을 “123정장 개인의 업무 자세나 역량에 기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경일 정장을 지휘해야 할 김문홍 서장의 구조 업무 태만과 관련한 단서는 <한겨레21>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이미 드러나 있다. 지난해 7월4일 광주지검에서 이뤄진 참고인 진술에서 김 서장은 4월16일 오전 9시14분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장에게 ‘퇴선유도 방송 명령 및 선내 진입 지시’ 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목포서 상황실장은 “지시를 받은 기억이 없고 이에 따라 123정장에게 지시를 전달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말한 사람은 있고 들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양자의 주장이 엇갈리는데도 누구의 말이 맞는지 검찰은 더 수사하지 않았다. 김경일 정장과 선원이 당초 검찰 조사 전 서로 모여 말 맞추기를 한 점을 밝혀내고, 이를 끝까지 추궁해 김 정장으로부터 “내가 거짓말했다”고 자백하게 한 것과는 다르다. 더 따져묻지 않았고 진실을 캐지 않았다. ‘윗선’은 또 다른 ‘윗선’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사실상 수사를 종료한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이 단계에서 길목을 차단했다. 새로운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123경비정 ‘여론 전환’ 시도

① 4월23일 우연히 기자를 만나 인터뷰한 것처럼 해서 “구명벌을 터뜨렸다” 발언

② 4월28일 갑자기 위에서 기자회견을 주최했다고 해서 “퇴선명령 방송했다” 거짓말

③ 5월25일 조갑제닷컴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선실 진입 시도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 정장 “나 몰라라 한 지휘부도 문제”

참사 초기, 여론 전환을 위해 해경 지휘부가 기획한 인터뷰에 동원되며 ‘퇴선 명령을 했다’는 거짓말을 공공에 내뱉게 돼버린 김경일 정장은 7월28일 첫 번째 피의자 신문에서 ‘윗선’의 잘못을 묻는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100t 함정에서는 OSC 임무를 못합니다. 100t은 연안 경비정 아닙니까. 구조정이 아닙니다. 위에서는 저를 OSC로 지정해놓고, 너희가 총책임이라고 하면서 나 몰라라 하는데 그런 지휘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제가 지휘부한테 너무 서운해서 그럽니다.”

유가족들이 지금도 가슴을 치는 대목은 해경이 현장에 도착한 9시35분부터 배가 완전히 뒤집힌 10시17분 사이에 해경이든 누구든 “기다리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방송이라도 했다면 승객 대부분이 갑판으로 나오거나 바다로 뛰어들어 구조될 수 있었을 거라는 합리적인 가정이다.

‘퇴선 방송’. 세월호 선장이 하지 않았고, 김경일 정장도 할 생각을 못했다고 주장한다. 처음 겪는 일이어서 훈련받은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김경일 정장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건 해양경찰청 상황실은 무슨 이야기를 한 걸까. 목포해양경찰서장, 해양경찰청장이 김경일 정장에게 어떻게든 퇴선 방송을 하게 할 수는 없었는가. 이 모든 의문을 뒤로하고, 형사처벌은 일개 현장 지휘관 혼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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