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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의 재구성 : 이것은 '교통사고'가 아니다

  • 허완
  • 입력 2015.04.16 09:47
  • 수정 2015.04.16 10:48

“목포타워(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 여기는 123(정). 현재 본국이 좌현 선수를 접안해 승객을 태우고 있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 사람이 하강을 못하고 있다. 아마 잠시 후에 침몰할 것으로 보인다.”

9시47분 첫 지시 “힘을 내봐”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7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방 2.9km 세월호 침몰 현장. <한겨레21>이 입수 분석한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교신 녹취록을 보면, 사고 현장에 출동한 100t급 경비정 123정의 다급한 통신에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이 답한다. “힘을 내봐.”

그는 구조 상황 총지휘자로서 3천t급 경비정인 3009함에 탑승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상황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현장 상황을 잘 분석해 현장에서 놓치는 상황에 대해 지시해 효율적인 구조 활동을 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상황 지휘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힘내’라고 지시하는 게 합리적인가.” 감사원의 지적이다(5월27일 감사원 문답서).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 활동을 지휘한 해경 수뇌부는 무책임했다. 목포서와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본청 상황실에 수십 명씩 모여 있으면서도 누구도 구조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상황을 책임 있게 지휘하지도 않았다. 수백 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하는 상황인데도 해경이 골든타임 내에 보낼 수 있는 구조 세력은 100t급 소형 경비정과 헬기 3대뿐이었다. 구조 세력이 소수라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세월호 내부 정보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지만, 해경 수뇌부는 세월호와 교신하기는커녕 세월호와 교신하는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도 정보를 요청하지 않았다.

게다가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구조 세력의 첫 현장 보고를 듣고도 묵살했다. 선내에 진입해 탈출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지지 않자 구조 세력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건지고 태우는 데 급급했다. 배 안에 갇힌 수백 명은 그대로 남겨둔 채.

만약 해경 수뇌부가 구조 계획과 지휘를 잘했다면 어땠을까. 박형주 가천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세월호 재판 증인으로 나와 설명한 가상 탈출 시뮬레이션을 보면, 123정이 오전 9시45분께 조타실에서 선원들을 구조하지 않고 승객 구조를 시작했다면 6분45초 만에 승선원 전원이 4층과 5층 갑판을 이용해 탈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 세력이 도착하자마자 “어서 나오라”고 대공마이크와 확성기로 외쳤다면, 해경 대원들이 선내로 진입해 로프와 자일을 이용해 퇴선을 유도했다면 304명이나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 8시54분 목포 상황실. 전남119 상황실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신고가 왔다”며 3자 통화를 요청한다. 목포 상황실은 신고자가 어선이나 상선인 줄 알았다. “위치, 경도를 말해달라.” 하지만 신고자는 단원고 2학년 최덕하군이었다. “위치를 잘 모르겠어요. 여기 섬이 이렇게 보이긴 하는데….”

신고 접수 뒤 30분간 세월호와 교신 안 해

비슷한 시각, 세월호가 제주 VTS로 첫 구조 요청을 교신했다. “해경에다 연락 좀 해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가고 있습니다.” 관제사는 해경 긴급 신고 번호인 122에 상황을 전파한다. 목포해경은 물론 서해청, 본청이 수백 명을 태운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이들은 따로 상황실을 꾸렸지만 TRS와 ‘상황정보 문자 시스템’으로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구조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오전 9시3분 목포 상황실이 TRS로 첫 구조 명령을 내린다. “모든 국 모든 국, 여기는 목포타워(상황실). 현 시각 전남 진도군 관매산 남동 2.7마일에서 여객선 침물 중. 모든 선박은 그쪽으로 집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내전화로 출동 지시를 받은 123정이 가장 먼저 “수신 완료”라고 답한다. 9시10분 서해청 목포항공대 소속 헬기 511호기도 목포시 옥암동의 본부에서 항공구조사들을 태우고 이륙했다. 첫 구조함과 첫 구조 헬기가 출동한 것이다.

구조 세력에 출동 명령을 내린 해경 상황실이 세월호와 교신해야 할 차례였다.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을 보면 “가용 수단을 최대한 동원해 사고 선박과의 교신 설정해 현재 상태 확인”이라고 돼 있다. 감사원 문답서에 나오는 교신 방법에는 ①초단파무선통신(VHF) 교신 ②세월호-진도 VTS 교신 지휘 ③123정과 3009함 등 해상 함정을 통한 교신 지시 ④승무원과 휴대전화 통화 등 네 가지가 있다.

그러나 목포와 서해청 상황실 모두 이 가운데 어떤 방법으로도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았다. ①VHF 교신은 “경황이 없어서” 못했고 ②진도 VTS 교신 지휘는 “선장이 비상탈출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 않았다. ③해경 상황실은 해상 함정이 “당연히 사고 선박과 교신을 했으리라 생각”하고 지시하지 않았다. ④선장 연락처를 구해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연락처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이준석 선장이 아니라 휴가 중인 다른 선장의 것이었다.

“당연히 교신했으리라 생각”했던 123정은 오전 9시2분 세월호를 3차례 호출했다. 당시 상황실과 구조 세력 가운데 유일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응답이 없었고 교신을 곧 포기했다. 123정은 “상황실이나 진도 VTS에서 세월호의 정보를 추가적으로 파악하면 우리에게 알려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감사원 문답서). 해경 수뇌부가 배의 상황도 모르고, 어떤 방식으로 구조할지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 세력은 사고 현장으로 무작정 달려가고 있었다.

탈출 문의에 “선장이 판단”

“해양경찰, 여기 세월호, 감도 있습니까?” 9시26~28분 세월호는 VHF 16번 채널로 해경을 호출했다. 행경 상황실은 이 교신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을 보면 VHF 통신 장비를 지속적으로 청취하도록 돼 있다.

세월호와 교신을 지속한 유일한 곳은 진도 VTS였다. 오전 9시16분 세월호는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다. 사람들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배의 심각성을 알린다. 그러나 해경 상황실이 진도 VTS를 문자 시스템에서 빠뜨렸고 진도 VTS는 TRS를 청취하지 않아 주요 정보가 그냥 묻혀버렸다.

9시24분 세월호가 VTS에 묻는다.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옆에서 구조를 할 수 있겠는가?” 진도 VTS 대신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답했다. “라이프링(구명복)이라도 착용을 시켜서 탈출시키시오, 빨리.” 둘라에이스호는 충남 서산에서 정유를 싣고 울산으로 가던 중 세월호 사고를 목격했다. 진도 VTS에서 답변이 오지 않자 세월호가 재차 물었다. “지금 탈출을 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는가.”

진도 VTS는 구내전화를 걸어 서해청 상황실에 문의했다. “세월호에서 승객 비상탈출 여부를 물어오는데 어떻게 하나.” 유아무개 상황담당관(총경)은 “비상탈출 여부는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선장이 판단할 사항”이라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세월호와 진도 VTS 교신 내용

진도 VTS: 지금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세월호 선장님께서 최종적으로 판단해 승객 탈출을 시킬지 빨리 결정해주십시오.

세월호: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진도 VTS: 지금 경비정이 10분 이내에 도착할 겁니다.

세월호가 기우는 추세를 보아 더 시간이 가면 승객 전원 탈출이 힘들 것이 명확했다. 둘라에이스호가 “탈출시키라”고 소리친 이유 다. 그러나 진도 VTS는 “직접 판단하라, 빨리 판단하라”고 결정을 세월호에 미뤘다. “선장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해경 상황실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해양경찰, 여기 세월호, 감도 있습니까?” 9시26분에서 9시28분 사이 세월호는 VHF 16번 채널로 해경을 호출했다. 진도 VTS에 비상탈출을 문의한 직후였다. 그러나 123정은 이 교신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목포 상황실도, 3009함정에 탄 목포서장도 세월호 의 호출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을 보면 상황실과 구조 세력은 VHF 통신장비를 지속적으로 청취하도록 돼 있다.

구조 상황에서 “승객 안정시키라”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511호기가 세월호 상공을 선회하며 구조할 승객을 찾아본 뒤 9시27분에 통신한다.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해상에는 지금 인원이 없고 현재… 중간에 전부 다 있음.”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첫 보고를 듣고도 상황실은 침묵했다. 승객 탈출을 계획하거나 지휘하지 않는다. 뒤늦게 도착한 123정이 다시 보고한다.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 못 나오고 있다.”(9시43분) 역시 상황실은 묵묵부답이다. 배 안에 갇힌 승객은 놔둔 채 123정은 “밖에 지금 나온 승객 한 명씩 구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목포 상황실은 “옮기면서 안전하게 차분하게 일하라”고 답했다(9시44분). 상황실의 안이한 상황 판단은 끝없이 계속된다.

9시47분 “힘을 내봐”라는 목포서장의 첫 지시를 받은 123정이 다급하게 통신한다. “배가 60도 가까이 기울어 좌현이 완전히 다 침수됐다. 승객이 절반 이상 갇혀 못 나온단다. 122구조대가 와서 빨리 구조해야 될 것 같다.” 서해청 상황실은 “여객선에 올라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퇴선을 하라는 지시가 아니었다. “승객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바”란다고 했다. 본청 상황실도 9시50~53분에야 문자메시지로 명령한다. “라이프재킷(구명복) 입고 갑판상으로 집결 조치” “무조건 선내에 나오도록 조치”.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세월호가 진도 VTS에 비상탈출을 물었을 때(9시24분), 아니면 511호기가 첫 현장 보고를 했을 때(9시27분) 내렸어야 할 구조 지시였다.

해경 수뇌부는 감사원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9시27분경 511헬기의 TRS 보고를 듣고 승객이 선박 내부에 많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계속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가 9시56분 ‘현재 여기저기 사람들이 다 있는데 못 나오고 있다’라는 123정의 보고를 듣고서야 많은 승객들이 배가 기울어서 탈출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5월27일~6월6일 감사원 문답서) 해경 수뇌부가 놓친 골든타임이 수백 명의 삶과 죽음을 갈랐다.

목포서장이 뒤늦게 폭풍 지시한다. “근처에 어선들도 많고 하니까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고함치거나 마이크로 뛰어내리라고 하면 안 되나.”(9시56분) “웅성웅성하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한 사람만 밖으로 빠져나오면 다 줄줄이 밖으로 따라나오니까 방송 내용이 안까지 전파될 수 있도록.”(10시4분) “밖으로 빼 나와서 바다로 뛰어들게 하면 구조가 가능하다. 최선을 다해 인명 구조에 노력하겠다.”(10시7분)

어업지도선이 생존자 건져내는 때에...

그러나 사고 현장에서 해경은 퇴선 방송도, 선내 진입도 하지 않았다. 헬기 대원들은 우현 외벽으로 기어나온 승객을 바구니에 태워 올려보냈고, 123정 대원은 바다로 뛰어든 사람을 구명단정에 건져올렸을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벽이 돼가는 배 안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오롯이 승객 자신의 몫이었다. 123정장은 ‘직원들의 안전상’ 진입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세월호가 물기둥을 뿜으며 침몰하던 오전 10시14분, 문자 시스템에 본청 상황실의 메시지가 뜬다. “여객선 자체 부력이 있으므로 바로 뛰어내리기보다는 함정에서 차분하게 구조할 것.” 현장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해경 수뇌부의 뒷북 명령은 그칠 줄 몰랐다. 10시18분 우현 3층 난간에 모여 구명정에 오르길 기다리던 마지막 40명이 황급히 물에 뛰어들었다. 본청 상황실은 “승객들 해상 탈출 적극 유도할 것” “경찰관 편승(배에 오름) 조치 못했는지?”라고 묻는다(10시21분). 그 시각에는 구명조끼를 입고 떠다니는 마지막 생존자를 어업지도선이 건져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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