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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마스카라를 바르지 않는 날을 위해 |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 통과를 기대하며

간혹 '불필요한 동물실험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사람과 동물 중에 동물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시대적 상황을 모르고 하는, 오히려 더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물론 한 순간에 모든 동물실험을 중단하고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화장품 동물실험처럼 이미 대안이 존재하는데도 관습적으로 혹은 경제적 이유로 계속되는 동물실험은 줄여나가야 한다. 여자에게 갓 태어난 아기 같은 피부를 갖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이 있다면, 토끼나 쥐에게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피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이번 4월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안의 통과로 더 이상 토끼는 눈에 마스카라를 바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목이 고정틀에 고정된 토끼들이 들어간 작은 상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 토끼들의 눈에는 화학물질이 몇 시간 간격으로 주입된다. 사람의 눈과는 달리 토끼의 눈에서는 주입된 이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눈물이 분비되지 않는다. 틀에 목이 낀 채로 눈이 타 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목뼈가 부러져 죽기도 한다. 이런 고통을 며칠 동안 이겨내고 생존한 토끼들이라 해도 결국 안락사 되고 안구는 적출되어 약물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샴푸, 마스카라가 생산되기 전 거쳐야만 했던 과정이다.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라고 불리는 이 실험은 화장품이 눈에 들어갔을 때 안점막을 자극하는 정도를 보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살아있는 토끼 대신 부화가 덜 된 유정란이 든 시험관에 약물을 떨어뜨리고 혈관의 반응을 관찰하는 HET-CAM 테스트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토끼의 눈에 화장품을 주입하는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 이제는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실험으로 대체가 가능하다.(사진제공 Cruelty Free International)

동물이 대신 흘려야 했던 '아름다움'을 위한 눈물

사람의 몸에 직접 바르는 화장품이 인체에 무해한지를 검증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동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정확히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대체시험법'이 많이 개발되어 쓰이고 있다. 화장품 원료가 피부를 자극하는 정도를 보기 위해 과거에는 털을 민 토끼나 기니피그의 피부에 화학약품을 바르는 방법이 쓰였지만, 이제는 시험관에 배양된 인간의 피부 세포를 사용한다. 약품에 대한 동물 피부의 반응이 아닌 '사람 피부'의 반응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대체시험법은 수십 년 전부터 쓰이던 동물을 이용한 시험보다 더 예측치가 높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비용도 적게 드는 경우가 많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화장품의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대체실험법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또한, 이미 예전에 동물실험 혹은 비(非)동물실험을 거쳐 안전성이 검증된 원료만 해도 수만 가지에 이른다. OECD에 등록된 화장품 원료만도 2만 종에 달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만 가지가 넘는 화장품 원료가 식약처에 등록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미 검증을 거친 원료를 다양하게 배합해도 충분히 성능이 좋은 제품의 생산이 가능하다.

동물자유연대가 촬영한 실험실의 토끼. 해마다 전세계에서 약 1억 마리의 동물이 동물실험에 사용된다.

유럽연합에 이어 세계 곳곳에서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움직임

2013년 3월 11일 유럽연합에서는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의 수입, 판매까지 금지하는 '화장품 동물실험 전면 금지'가 발효되었다. 사실, 영국은 1998년에 화장품 완제품과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했고,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자국 내에서 화장품의 동물실험이 이루어지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해 왔다. 2003년 유럽연합은 회원국 간 각기 다른 화장품 법을 통일하기 위해 화장품 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을 통해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해 대체실험법 존재의 여부에 따라 순차적인 일정표를 수립하고, 단계를 나눠 법으로 금지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의지였다. 2004년에는 화장품 완제품에 대한 동물실험이 금지되었고, 2009년에는 완제품과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이 금지되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대안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된 반복독성실험 (repeated-dose toxicity), 물질이 생식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평가하는 생식독성실험(reproductive toxicity), 독성 발생에 대한 연구인 독성동태실험 (toxicokinetic) 등 세 분야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마지막 단계가 완료되는 2013년 3월까지 유예 기간을 두었으나, 2013년 전면 금지는 대체법의 유무와 상관없이 강행되었다.

다른 국가들도 하나둘씩 화장품 동물실험을 법적으로 규제해 나가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2006년 크로아티아가 화장품의 생산과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을 금지했고, 이스라엘에서는 2013년 1월 1일부터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수입, 광고, 판매까지 전면 금지되었다. 2014년에는 인도가, 가장 최근인 지난 3월에는 뉴질랜드가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3월 11일, 보건복지위 소속 문정림 의원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안' 발의

그런데 이제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일이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유럽연합에서 화장품 동물실험이 전면 금지된 지 2주년이 되는 날인 지난 3월 11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내용의 '화장품법일부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법안은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이나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의 제조· 유통· 판매까지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동물대체실험법이 존재하지 않는 부문의 실험이나 중국처럼 법적으로 동물실험을 의무화하는 국가에 수출하는 경우, 다른 법률의 요구에 의해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를 화장품에 이용하는 경우 등 예외조항을 두었다. 문정림 의원은 3월 23일 동물자유연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미를 위해서 사용되는 화장품을 위한 동물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발의 취지를 밝히며, '화장품 분야의 동물실험 금지를 통해 다른 분야의 동물실험에 대해서도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이 확산되어, 전반적인 동물 복지 향상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3월 11일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을 발의한 문정림 의원이 토끼 목의 고정틀을 풀어주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는 동물자유연대와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주최하는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 발의 기념행사가 열렸다. 사회는 평소 동물 보호에 목소리를 내 온 가수 배다해가 맡았다. 행사를 위해 방한한 영국 전 노동당 하원의원이자 크루얼티프리인터내셔널 정책이사인 닉 팔머(Nick Palmer) 박사는 '한국에서 화장품 동물실험이 금지되면 중국, 일본 등 주변 아시아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퍼포먼스 순서에서 문정림 의원이 토끼 인형의 목에 걸려있던 고정틀을 풀어주자 토끼는 기쁨에 팔짝팔짝 뛰었고, 회의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환호했다. 법안은 4월 말 법안소위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2년의 유예기간 후 국내에서는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크루얼티-프리(Cruelty-free)' 제품밖에 판매할 수 없게 된다니, 토끼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을 찾느라 애먹었던 소비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이다.

인간만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다.

간혹 '불필요한 동물실험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사람과 동물 중에 동물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시대적 상황을 모르고 하는, 오히려 더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물론 한 순간에 모든 동물실험을 중단하고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화장품 동물실험처럼 이미 대안이 존재하는데도 관습적으로 혹은 경제적 이유로 계속되는 동물실험은 줄여나가야 한다. 여자에게 갓 태어난 아기 같은 피부를 갖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이 있다면, 토끼나 쥐에게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피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이번 4월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안의 통과로 더 이상 토끼는 눈에 마스카라를 바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 동물자유연대 정책국장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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