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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하는 작가들

세월호 '사건'(박민규가 말한 대로 '사건'이 더 정확하다)에 대해 감상이든, 생각이든 뭐라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 박세회
  • 입력 2015.04.16 06:04
  • 수정 2021.04.15 17:03

세월호 ‘사건‘(박민규가 말한 대로 ‘사건‘이 더 정확하다)에 대해 감상이든, 생각이든 뭐라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2014년 10월 ‘문학동네‘의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세월호에 대한 글을 모아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엔 당신이 하고 싶었지만 잘하지 못했던 말이 가지런한 산문으로 정리되어있다. 인세를 포함한 매출액 전액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기부된다. 김훈의 특별기고를 제외한 다른 글은 모두 그 책에서 발췌했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中

우리가 본 것과 같은 걸 아이들이 봤다. 배 안에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걸. 다투어 생명을 지켜야 할 시간에 권리를 외치고 이익을 도모한 모습을. 그 ‘도모’를 가능하게 한 이 세계의 끔찍한 논리를. 아이들‘도’ 봤다.

지난 달 16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안에서 한 여고생은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傾斜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中

과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

누군가 역사는 저절로 진보한다는 우리의 거대한 착각 때문에 세월호는 21년 전의 서해 페리호를 더 나쁘게 반복하며 서해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러니 먼저 우리는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나아지는 길이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中

공공의 적이 공공일 때

공공의 적인 공공에게 어떤 혐의가 있을 때

그 공공을 심판할 수 있는 건

누구냐고 묻고 싶다.

지금 누군가가

세월호가 으리으리한 사고로 정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만약 이 나라가 침몰한다면

그 원인은 의리일 거라 나는 믿는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中

작년 가을에 그 배를 타고 제주에 갔다. 굴뚝이 뿜어내는 매연을 피해 갑판을 이리저리 걸어다닌 기억이 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내 경우 4월 16일 이후로 말이 부러지고 있습니다. 말을 하든 문장을 쓰든 마침에 당도하기가 어렵고 특히 술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장을 맺어본 것이 오래되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백 일이 되는 날, 안산에서 서울광장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온 유가족을 대표해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녀는 말했다. 엄마아빠는 이제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싸울 거야.

나는 그것을 듣고 비로소 내 절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배명훈, ‘누가 답해야 할까?’ 中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은 단순한 변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진짜로 권한이 없다. 그들은 진짜로 모른다. 그게 우리 사회의 정역학이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들 중 많은 수가 전혀 하중을 견뎌내지 못하는 가까 기둥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 매뉴얼대로 돌아가는 평상시 상황만 처리할 수 있는 부품들로, 비상 상황이나 특수 상황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품을 대체시켜버리는 것. 그리고 그 정품들의 성능을 폄하하고 모욕하고 배제해 버리는 일.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누가 질문에 답해야 할까?”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이런 희망을 품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당신을 구하러 갈 수 있기를. 늦지 않은 때에 우리가 우리를 구출해내기를.

김훈, 중앙일보, 이투데이 특별기고문 발췌

연초에는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위원회가 결성되어 진상조사, 재난 예방과 대처, 희생자 위로 등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세월호 사태는 제3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셈이다. 위원회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한시적인 기구가 되었지만, 이 같은 일에는 시한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중앙일보 특별 기고(1월 1일)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선박 불법증축, 과적, 고박(固縛) 불이행, 평형수 부족, 급변침 등이었다는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결국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배가 빠졌다는 것이다.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고, 심장이 멎으면 사망에 이른다는 말이다. 이 사태가 선박의 복원력을 검증하는 물리실험이라면, 정부의 발표는 나무랄 데 없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는 물리실험이 아니다. 이 사태는 한 시대 전체의 도덕적 침몰과 국가기능의 파탄이다.

이 ‘특별법’의 입법과정은 사태의 진상을 규명해서 ‘안전사회 건설’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리더십이 작동된 것이 아니고, 이 비극이 몰고 올 무서운 파괴력의 폭심(爆心)으로부터 도망치고 벗어나려는 정치세력들이 국민과 유족들의 아우성에 몰려서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자 강고한 보호벽으로 자신들을 방호하면서 탈출구를 뚫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투데이 특별기고(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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