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인터뷰] 하버드 한국 청년들의 우간다 식수난 해결 도전기 - 구슬, 계요한 스파우츠 공동대표 ②

"한편으론 내게 주어진 기회가 이렇게나 많은데 그냥 보내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 하는 마음도 있다. 나뿐 아니라 남한테도 이런 기회가 좀 더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 일을 시작한 측면도 있다. 결국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좋은 일 사이의 교점을 찾아서 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같이 시작한 학생들도 우간다에 직접 와보고선 도저히 여기서 못 살겠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돌아간 경우가 많은데 난 여자지만 그런 데엔 무덤덤한 편이다. 물이 안 나와 머리를 감고 그러는 게 좀 불편해서 얼마 전엔 그냥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 버렸다."

  • 홍형진
  • 입력 2015.04.15 13:37
  • 수정 2015.06.15 14:12

스타트업 스토리 <5> | 하버드 한국 청년들의 우간다 식수난 해결 도전기 - 구슬, 계요한 스파우츠 공동대표 ②

※이 인터뷰는 2회로 나뉘어 제공됩니다. 주인공들이 오기와 열정으로 공장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그렇게 만들어낸 사업의 현황, 전략, 방향성 등은 아래 1회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1회분 링크 (클릭)

3) 불가능에 도전하는 두 청년이 오늘을 사는 법

- 우간다와 미국을 근거지로 활동하지만 한국에도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 중이다. 2013년엔 세상콘테스트에 출전해 3위로 입상했고 작년엔 함께일하는재단에 의해 '스마일투게더 파트너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어떤 취지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또 이런 활동을 통해 무얼 얻을 수 있나?

계요한(이하 계) : 첫째는 역시 자금 문제다. 우린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는 다 활용하자는 입장이었다. 지금 한국도 청년창업, 창조경제, 사회적 기업, 친환경 기업 등에 관심이 많고 정부와 기업에서 돈을 풀고 있지 않은가.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 우린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한국인이고 얼마든지 한국인과도 함께 일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에 모두 기반을 둘 수 있다는 점은 우리만의 장점(advantage)이니 잘 활용할 생각이다. 세상콘테스트, 스마일투게더 파트너십 등의 이력은 비단 지원금뿐 아니라 우리가 한국 안에서 홍보할 수 있는 근거를 준다는 점에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

구슬(이하 구) : 또 우간다에 있다 보니 생각보다 한국인들과 많이 일하게 되었다. 첫 공장도 (한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쿠미 대학에 지었고 또 관계자들의 집에서 몇 개월씩 생활하기도 했다. 한국 대사관 역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금 남수단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또 거기에도 사업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여기서 계속 한국인들을 만나며 도움을 받아왔다. 차를 살 때도 정보를 얻고 기계가 고장이 나도 도움을 받고...

- 이 시점에서 약간 민감한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해외 기부나 자선봉사에 대해 상당히 까칠한 반응을 보이는 한국인들이 은근히 많다. 우리나라에도 힘든 사람이 있는데 왜 외국인을 돕느냐는 것이다. 그런 시선을 극복해야 한국에서도 기반을 다질 수 있을 텐데 여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계 : 난 한국도 이제 그런 위치에 왔다고 생각한다. 우간다에서 선교하는 이들과 이야기해보면 지금 우리의 일이 50~60년 전에 해외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했던 일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한국이 전쟁 끝나고 도움 받은 것만 해도 엄청난데 왜 이중잣대처럼 우리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젠 우리도 개발도상국을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왔으니 베풀 수도 있지 않나? 물론 한국에도 도울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우간다처럼 수인성 질병으로 수만 명씩 죽는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린 단순한 자원봉사나 직접 후원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며 수익도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구 :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란 얼마든지 많다. 꼭 한국만 도와야지라고 한쪽으로 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 오는 학생들 중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며 깨닫는 경우도 나온다. 최근에도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자원봉사로 왔다가 마음이 맞아 한 달 반 동안 함께한 학생이 있다. 한국에서 KOICA(한국국제협력단) 등의 봉사단은 많이 오지만 사회적 기업 활동은 그다지 본 적이 없다. 반면 이런 일을 하는 미국 학생들은 많이 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영리 영역에서 판로를 넓혀가는 단계인데 이후에 대한 청사진 등이 있는지 궁금하다. 각자가 그리는 미래 같은 것 말이다.

구 : 일단 내가 없어도 공장이 운영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것들로 인해 NGO 세계가 바뀌어나가는 걸 보고 싶다. 우간다에서 좀 놀랐던 건 티셔츠 같은 데 죄다 유니세프, WHO(국제보건기구) 등의 문구가 붙어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 주 : 돈 주고 구입한 게 아니라 구호물품인 게 아쉬웠다는 뜻이다.) 일전에 텍사스 쪽의 NGO가 우리에게 와서 어느 마을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니 필터를 사서 그들에게 주겠다고 했을 때 우린 팔지 않았다. 그 NGO 단체가 다시 와서 뭐가 문제기에 안 파느냐고 따졌고 결국 농부인 그 마을 사람들이 농사에서 얻은 작물로 대금을 치르기로 한 후에야 필터를 팔았다.

계 : 국제개발이라는 큰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도 그런 움직임의 일부분이 되어 나름의 기여를 하고 싶다. 돈이나 물품 같은 단순한 직접후원보다는 (수익을 창출하며 지역경제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이편이 더 지속가능하고 부작용도 적은 국제개발이라고 본다.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다.

구 : KOICA 같은 단체에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펀딩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순수한 작은 NGO들도 교육 등에만 집중하고 있고 우리 같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은 없다시피 하다. 우리도 충분히 좋은 일을 하며 기여할 수 있는데. 한국에도 사회적 기업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계 :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큰 그림은 대충 이렇다. 지금 당장의 이야기를 하자면 우간다 내에서 전국적으로 유통하는 회사로 성장을 하고 인근 국가로 진출하고 싶다. 특히 남수단처럼 전혀 인프라가 없는 곳에 우리가 들어감으로써 난민들을 지원하는 입지까지 갈 수 있다면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정말 만족할 것 같다.

- 이제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해보자. 알다시피 이 인터뷰는 한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하버드의 한국 학생이라는 점에 흥미를 갖는 이들이 좀 있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먼저 계요한 대표부터. 고등학교 때에야 뒤늦게 미국으로 간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계기였고 가서 뭘 느꼈나? 거기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설계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계 : 미국에서 느낀 점이라면 마음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난 집안이 빵빵해서 미국에 간 게 아니다. 유학 준비도 전혀 없었다. 중하층 수준의 가정에서 공립학교에 다니며 수업료 20만 원 정도의 속셈학원 다닌 게 전부다.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에 살던 평범한 학생으로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께서 선교활동을 하러 1주일 후 미국에 갈 테니 짐을 싸라고 하셨다. 아무런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준비한 것도 없고 가기도 싫어서 집을 나오는 등의 반항을 했었다.

처음엔 영어 한마디를 못하니 밖에 나가기도 무서웠다. 던킨도너츠에 가서 커피도 못 시켰다. F 발음이 안 통해서. 현지 공립학교에서도 영어를 못하니까 아이들이 심하게 놀렸다. 영화에 나올 법한 경험도 많이 겪었다.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데 흑인 친구들이 둘러싸서 나를 막 밀치며 "You're f**king Chink. Go back to f**king China."라는 식으로 욕설을 해대기도 있다. 그때 오기가 많이 생겼다. 아, 내가 미국에선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콧대를 납작하게 해줘야지. 그런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아는 대학이 하버드뿐이니까 거기를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와 다른 여러 활동들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니 되더라.

처음 영어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영어 두 마디도 제대로 못하던 녀석이 정말 많이 컸다"며 내가 졸업하던 때 말해줬다. 열정과 오기를 갖고 뭐든지 다 씹어 먹을 듯이 노력하면 된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다.

스파우츠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워낙 모르니까, 바닥이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니까 맨땅에 헤딩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어린 나이의 객기일 수도 있고. 지금 돌이켜보면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전문지식 없이, 사업 경험 없이, 돈 없이, 그냥 하고프고 또 해야 할 일 같은 데다 마침 구슬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까 했다. 딱 열정 그것인 것 같다. 열악한 환경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보람도 많이 느낀다. 해보자. 못할 건 뭐야? 너랑 나랑 둘 다 똑똑한 사람들이고 열정이 있는데 뭐가 무섭지?

보통의 남자 청소년들이 하는 상스러운 표현을 자주 쓴다. 조져버리자, 발라버리자 같은 것들. 그런 마인드로 해보니 공장이 생겼고 판매도 하고 있고 직원도 고용했다. 어느새 우간다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러주고 있고. 이렇게 변화가 생기는 게 재미있다. 그냥 청춘을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자체를 즐기는 느낌이다.

계 : 그렇다. 스스로도 '변태'스러운 것 같다. 그런 도전을 즐긴다.

- 그럼 구슬 대표는 어떤가? 계요한 대표와 달리 세 살에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갔다. 살아온 환경이나 성향, 생각 등이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구 : 아니, 나도 요한이랑 비슷하다. 나 역시 맨땅에 헤딩하는 걸 굉장히 잘하고 또 즐긴다.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이 "너처럼 이런 지옥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악을 썼던 애는 30년 선생하면서 처음 봤다"고 말했을 정도다. (웃음)

- 무슨 일이 있었나? 조르고 보채고 그랬나?

구 :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썩 좋은 학교가 아니었다. 과학을 좋아해서 실험실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데 환경이 허락하지 않았다. 딱히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선생님 오피스를 찾아가 매일매일 졸랐다. 실험실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결국 방학 때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알바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너 같은 애는 처음이라며 그 집요함에 웃었다. 이건 뭐 안 해줄 수도 없고... (웃음)

하는 일에서도 그런 집요함을 보이는 편이다. 또 한편으론 내게 주어진 기회가 이렇게나 많은데 그냥 보내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 하는 마음도 있다. 나뿐 아니라 남한테도 이런 기회가 좀 더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 일을 시작한 측면도 있다. 결국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좋은 일 사이의 교점을 찾아서 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같이 시작한 학생들도 우간다에 직접 와보고선 도저히 여기서 못 살겠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돌아간 경우가 많은데 난 여자지만 그런 데엔 무덤덤한 편이다. 물이 안 나와 머리를 감고 그러는 게 좀 불편해서 얼마 전엔 그냥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 버렸다. (필자 주 : 그의 페이스북 사진을 보면 거의 스포츠머리에 가까울 만큼 짧다.)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데 난 전혀 상관없다. 일이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요한과도 가끔 싸우긴 하지만 괜찮다.

- 싸운다고? 의견대립 같은 건가? 그럴 땐 어떻게 해결하나?

구 : 장난으로 서로를 '결혼 3년차'라고 부른다. 이젠 싸우는 패턴이든 뭐든 다 보이고 그렇다.

계 : 일하는 데 있어 방향을 보는 덴 거의 싱크(sync)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물론 아직도 조율해야 할 부분은 남아 있다. 구슬이는 비영리단체의 정체성인 좋은 일을 하자는 데 집중하는 편이고 나는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걸 중시한다. 좋은 일과 돈 버는 일 사이의 갈림길에선 후자로 가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다. 궁극적으로는 그편이 좋은 일을 더 지속적으로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이런 대목으로 의견대립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적당한 수준에서 밸런스를 찾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싸우는 건 외려 사소한 것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정 상하는 일들. 난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은근 마초' 성향이 있다. 맘 상하는 일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그걸 말하는 게 힘들고 불편하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세 번만 운다고 배워왔고 아버지 역시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래서 약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힘들다.

구 : 내려놔, 내려놔. (웃음)

계 : 좀 더 얘기를 해야 하는데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어 혼자 꽁해 있는 그런 때가 종종 있다. 반면 구슬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논리적인 사람이다. 별명이 로봇이다. 감정적으로 휩싸일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오직 논리 하나로만 접근하고 이야기한다.

구 : 좋게 얘기하면 옳은 말만 한다는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싸가지가 없다는 거다. (웃음)

계 : 워낙 이성적인 사람이라 감정 어필 같은 것도 안 먹혀서 '얘는 진짜 로봇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그냥 A부터 Z까지 착착 이야기한 후 그걸로 끝이다. 그럼 난 상처를 받는데 뭐라 말은 못한다. 표현 좀 예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웃음) 하지만 그런 정도의 대립이 전부다. 하는 일에 있어서는 싱크가 잘 이루어진 종합적인 뷰(view)를 가지고 있다.

- 우간다 현지에서의 외로움 같은 건 어떻게 해결하나? 아무래도 그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계 : 처음엔 나도 그런 걱정을 많이 했다. 작년 6월에 아예 근거를 우간다로 옮기며 6개월에 한 번 정도 짧게 미국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냥 1년 내내 우간다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막상 우간다에 와보니 좋은 친구가 의외로 많았다. 여기엔 재미있는 친구가 정말 많다. 가족과 사업하러 와서 선인장 꽃을 키우는 형도 있고,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고, KOICA 봉사단이나 대사관 인턴 등등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또 구슬이 역시 사업 파트너이긴 하지만 내겐 정말 좋은 친구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구슬이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구 : 난 로봇이라서 그런 거 필요 없다. (웃음) 농담이고 요한과 매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 또 아무래도 책을 아주 많이 읽게 된다. 이제 조금 바꿔볼까 한다. 잠을 좀 덜 자고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계 : 쿠미에 있을 때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일 끝나고 밥 먹으면 7시인데 그때부터 잠 잘 때까지 그냥 책만 읽었다. 거긴 어떻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없다. 그냥 책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맥주 한잔 하는 게 일 외의 전부였다. 각자의 이야기, 개똥철학, 인생, 행복 등에 대한 대화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았다. 우간다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보내왔다.

- 지구 반대편에서 두 시간 넘도록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픈 말들이 있다면?

계 : "우리 재미있게 가자, 재미있게."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늘 이런 말을 한다. 그러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난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은 사람이다. 미국, 좋은 학교, 많은 기회 등등. 그래서 이게 궁상떠는 소리로 들릴 수 있어 조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열정을 가지고 청춘을 바라보며 가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을 워낙 많이 봐왔기에 한국에서도 또래의 친구들이 두근두근한 일을 하며 불타오르면 좋겠다. 만약 글에 '조지자', '바르자' 같은 표현이 포함된다면 난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다.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산다.

구 : 그동안 이런저런 알바도 많이 뛰어봤고 회사에서도 일해 봤지만 스파우츠에서 일한 것만큼 많이 배운 경험은 없다. 그 교육비와 배운 것만큼 스파우츠를 통해서 좋은 일과 돈 버는 일 모두를 해내려고 노력하겠다.

- 그거 왠지 알고리즘에 근거한 모범답안 같다. 로봇 맞네.

구 : (절규)

계 : (폭소)

필자 홍형진 페이스북 주소 : https://www.facebook.com/hyungjin.hong.9

필자 홍형진 블로그 주소 : http://blog.naver.com/h5150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홍형진 #블로그 #스타트업 #인터뷰 #스파우츠 #구슬 #계요한 #하버드 #청년 #사회적 기업 #우간다 #물부족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