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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보다 힘든 회식

한국 조직을 3년 동안 다니면서 사원으로서 맡은 업무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회식문화다. 내가 겪은 한국 직장의 회식은 늘 팀장님의 한 마디로 시작됐다. "저녁 먹으러 나갑시다" 회사 근처에 있는 고깃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다들 와 있는데 한참 동안 앉는 사람이 없다. 다들 서로 쳐다보면서 '어디 앉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했던 업무보다 더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조직을 3년 동안 다니면서 사원으로서 맡은 업무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회식문화다.

내가 겪은 한국 직장의 회식은 늘 팀장님의 한 마디로 시작됐다.

"저녁 먹으러 나갑시다"

회사 근처에 있는 고깃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일단 나는 사원으로서 어디서 앉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기다린다. 외국인이지만 그나마 한국문화 잘 알기 때문에 마음대로 앉을 수 없었다. 우리 팀원들은 이사님이나 다른 상사들보다 먼저 도착했는데 합리적으로 가운데 앉지 않고 테이블 끝에 앉았다. 이럴 때마다 뭔가 웃기다. 다들 와 있는데 한참 동안 앉는 사람이 없다. 다들 서로 쳐다보면서 '어디 앉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했던 업무보다 더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내가 운 좋게 회사 임원이 되면 이런 상황을 신경 쓸까? 제발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드디어 한 명이 자리를 잡고, 우리팀이 차례로 앉았다. 그리고 술부터 시켰다. 몇 명이 있는지 빨리 파악한 후 맥주 몇 병, 소주 몇 병 이렇게 이모한테 주문한다. "맥스 드릴까요? 카스 드릴까요? 참이슬 드릴까요? 처음처럼 드릴까요?" '다 똑같은 맛이니 아무거나 주세요'라고 하고 싶지만 상사들이 선호하는 소주랑 맥주를 주문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면 문제다. 이모가 술을 찾으러 가고 나면 맥주잔이랑 소주잔들이 자리 앞에 모이고, 나는 잔을 정리한다. 첫 잔이라 '소맥'을 만들어야 하고,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 소맥을 잘 만든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 다들 겁나 신경을 쓴다.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자랑거리다. 일하면서 좋은 아이디어, 보고, 발표 등으로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소주랑 맥주를 잘 섞어준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첫 잔을 나누면서 상사들의 '귀중한' 말씀을 기다린다. 매번 똑같고, 의미도 없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말들이다. 뭐, 뭐, 어쩌고, 어쩌고... "화이팅!" "위하여"... 한 번만 한다면 말씀에 집중하겠지만 회식을 하는 동안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고, 또 일주일에 회식을 몇 번이나 하기 때문에 상사들의 말을 무시하게 돼버렸다. 그 사람들도 이렇게 하는 거 싫어할까?

내가 열심히 만든 소맥도 그대로 들고 마시면 안되고 두 손으로 다른 직원들 하고 '짠' 해야 한다. 그것도 상사의 술잔보다 밑으로 부딪치며 '짠'해야 한다. 그 후에도 그대로 마시면 안 된다. 앞, 양 옆, 어디를 봐도 나보다 더 높은 직급의 동료들이라 나는 어렵게 몸을 돌려서 고깃집의 안 예쁜 벽지를 보면서 잔들 들이켰다. 몇 잔을 원샷하고 난 후 고기가 나왔다.

에휴, 또 다른 할 일이 생겼다. 이미 소맥 잘 만든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이제 나는 고기 맛있게 굽는다고 칭찬을 받아야 된다. 고기 잘 굽는다는 소리도 참 웃긴다. 고기 굽는 게 무슨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인가? 주변 사람들이랑 대화를 피하고 싶어서 고기만 신경 쓰는 척했다. 이렇게 하면서 또 다시 소맥을 만들고 있었다. 10분이 지나 또 다른 상사들이 의미 없는 말을 할 시간이 되었다. "위하여!" 하고 나선 고기를 자를 때가 됐다. 크게 자를까? 작게 자를까? 제대로 안 하면 내 옆에 있는 대리 선배가 가위를 가져가니 잘 해야 한다.

소맥을 몇 잔이나 했으니 이대로 가면 한 시간 안에 말도 못하도록 취하게 될 것이다. 그 후 집에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사원이라 그것도 안 된다. 그럼 이제 전략적인 술마시기 시작이다. 소주만 마신다고 내가 말하자마자 주변 동료들이 매번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우~~ 역시 마이클은 한국사람이야" 이게 좋은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아는 술 마시는 방법인데, 소주를 마신 척하고 삼키지 않고 있다가, 물잔에다 몰래 뱉는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나는 사원이라 회식자리에 끝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술자리가 지겨워지는 분위기다. 선배한테 조용히 법인카드를 달라고 하고, 계산하러 일어난다. 내일 비용처리를 위해 영수증을 잘 챙기고 2차로 가길 기다린다.

1차 고깃집 업무가 끝난 후 또 다른 술집에 가서 똑같은 업무가 반복이 된다. 배경이랑 술만 바뀔 뿐이다. 술집에 도착할 때도 앞서 했던 웃긴 '자리 눈치 게임'을 한다. 2차가 끝난 후 노래방에 가서도 업무를 해야 한다. 편의점에 가서 술을 사고, 노래방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정하고, 매번 열심히 불렀던 '18번곡'을 부르는 것까지가 임무다. 드디어 회식이 끝나면 상사들의 택시이나 대리운전을 챙기는 업무까지 해야 한다.

취하고 피곤하고 정신이 없는데 집에 가서 몇 시간 자다가 회사에 나와서, 9시부터 책상에 시체처럼 앉아 있어야 한다. 피곤하다고 내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침 9시부터 퇴근할 때까지 월급을 받는 업무보다 그 후에 하는 '업무'가 더 신경 쓰이고, 더 스트레스 받는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말이나 한국 문화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눈치 없는 외국인인 척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코켄의 블로그 "더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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