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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는 상관없는 힐러리 클린턴 이야기 17

  • 남현지
  • 입력 2015.04.13 12:39
  • 수정 2015.04.14 06:23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온 힐러리 클린턴은 1992년 자신이 "집에서 과자나 굽는 가정주부로 남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4월 12일(현지시간) 힐러리는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과거 미국 저녁 뉴스에서 클린턴에 대해 “그녀는 커리어가 있다. 자신의 주관이 있다"는 말이 언급된 이후 힐러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클린턴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때로 너무 진보적이라고, 페미니스트적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고, 맥베스 아내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는 힐러리의 정치적인 면이 아니라 아내이자 엄마, 변호사, 지지자, 저자, 개 주인, 헤어 스타일 아이콘, 바지 정장 전문가, 유리천장 파괴자 등의 역할을 검토해보고자 한다(힐러리 트위터 프로필처럼 말이다).

2016년 대선 후보 힐러리에 대한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사실 17가지를 아래에서 공개한다.

1. 힐러리 클린턴은 1996년 이후 자동차를 한 번도 운전하지 않았다. 적어도 작년 말까지는 이 말이 사실이었는데 아마 아직까지도 유효할 거다. 미국 비밀정보부는 그녀가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한다. 사실 몇 년 후면 우리 모두 무인 자동차를 타고 다닐 테니까.

2. 미국 26대 대통령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같은 역사의 인물과 상상의 대화를 즐겼다. 자녀 양육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던 그녀는 1996년에 진 휴스턴이라는 뉴에이지 정신 상담가를 백악관에 초대했는데 진이 클린턴에게 역사 인물과의 대화를 격려했다고 한다. '명상 치료요법'이라는 걸 추천한 거다. 언제나 현명한 엘리너가 "참아라. 혹은 얼굴 낯짝이 코뿔소같이 두꺼워지든가"라고 클린턴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3. 로스쿨에 다니던 시절 여름 방학에 알래스카에서 생선 내장 처리 공장에서 일했다. 그녀의 임무는생선 내장을 빼내는 것이었는데, 공장장은 생선이 죽은 지 얼마나 됐냐고 계속 물어보는 힐러리가 귀찮아 그녀를 해고했다. 힐러리는 해고당한 후 바로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고 쿨하게 대답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4. 50, 60년대의 최고 아이돌이자 가수 겸 배우인 파비안 포르테에 푹 빠졌었다. 엘비스와 비슷한듯 다른 파비안에게 말이다. 일리노이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내 파비안 동호회 회장까지 맡았다. 힐러리가 필리핀 방문했을 때 어느 학생이 남편 말고 좋아한 남자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회원은 3명밖에 없었지만 열기는 매우 대단했다."

5. 자기 자신도 귀를 뚫지 않았던 1992년, 딸 첼시가 귀를 뚫겠다는 걸 반대했다.다양한 귀걸이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귀에 구멍을 뚫는 것은 위생상 걱정된다고 그녀는 당시 피플 잡지를 통해 밝혔다. 그럼 그때까지 정말로 클립 귀걸이만 착용한 걸까? 위 질문에 대한 클린턴 측의 답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다.

6. 한 번은 정치인 존 매케인보다 술을 더 마신 적이 있다. 매케인과 에스토니아를 함께 방문 중이었는데, 식당에 둘이 앉아서 보드카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네 잔으로 클린턴이 승리. 정확히 어떤 규칙으로 술 마시기 시합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클린턴이 술에 강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7.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모든 음식에 매운 소스를 뿌린다고 한다. 샐러드에도 말이다.

8. 그래미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다. 'It Takes A Village'라는 오디오북의 목소리 주인공으로 클린턴은 1996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엘리너 루스벨트의 영감이 크다고 힐러리는 말했다.

9. 27살 미국 아칸소주에 살 때 해병대에 들어가려 했었다. “나이가 너무 많고 시력도 안 좋고 여자라서 안 돼.”라며 해병대 관계자가 퇴짜를 놨다고 한다. 그 발언을 지금 매우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거다.

10. 약 1,000달러를 100,000달러로 불렸다. 1978년에 운 좋게 원자재 투자로 1,000달러를 10개월 사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크게 불렸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신비한 능력이랄까.

11. 신문 배달부를 설득하여 새벽 5시에 애틀랜타 공항까지 차를 얻어 탔다고 1993년 AP 통신은 보도했다. 당연히 비밀 검찰국이 그녀를 호위하기 전 일일 거다.

12. 80년대 초반 기분이 우울할 때에는 동네 YMCA에서 운동을 했다. 운동도 하고 또 남편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 재선에 실패하자 딸 첼시와 분장 놀이를 했다.

13. 휴식을 취할 때는 '저렴하게 스릴감'을 맛볼 수 있는 탐정소설을 읽었다. 물론 유명한 여성 작가 작품과 국제 협약 같은 매우 학구적인 책들도 많이 읽었지만 말이다.

14. 웰즐리 대학 재학 당시 무도회에 치마 대신 오렌지색 바지를 입고 참석했다. 옛 동창이 피플 매거진에 폭로했다. "말도 안 되는 오렌지색 복장을 하고 무도회에 나타났다. 바닥까지 닿는 팬츠치마를 입고 깃털과 팔찌 장식을 둘렀었다."

15.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일 때 남편 보다 돈을 잘 벌 때가 많았다. 1991년에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서 188,000달러를 벌었는데, 남편 빌은 훨씬 덜 벌었다. 또 1988년과 1991년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100 대 변호사로 '국가법률저널(National Law Journal)'에 뽑혔었다.

16. 남편이 다니던 교회와 다른 곳은 다닌다. 태어날 때부터 감리교회를 다닌 그녀는 남부 침례회인 빌 클린턴과 결혼한 후에도 자신의 교회를 고집했다. 늘 작은 성경을 들고 다니지만 자기의 "신앙은 언제나 개인적인 것으로 삼아왔다"고 그녀는 뉴욕타임스에 이야기했다.

17. 초콜릿칩쿠키 레시피를 공개했다. 아마 차 한잔과 잘 어울릴 듯.

*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US '17 Little-Known Facts About Hillary Clinton That Have Nothing To Do With Her Politic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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