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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그 부모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었습니다. 유가족과 희생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뉴스꼭지가 MBC 로고를 달고 방송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지난 2012년 MBC 파업 이후, MBC 뉴스가 망가지고 보도의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뉴스가 세월호를 침몰시킨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론 형성의 책임이 있는 언론이라면,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는 보듬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관련 보도는 국민들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고립시켰을 뿐, 그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 김민식
  • 입력 2015.04.13 09:50
  • 수정 2015.06.13 14:12
ⓒ한겨레

작년 5월의 일입니다. 어느 날 주말에 쉬는데 회사에서 문자 알림이 왔어요. 보통 주말에 뜨는 문자는 문상 안내가 많지요. 그날도 그랬어요. 다만 그 문자가 눈길을 잡은 건, 부친상이나 빙모상이 아니라, 자녀상이라는 거지요. 상을 입은 분은 제가 드라마 연출할 때, 음향효과를 담당하는 분이었어요. 나보다 후배여서 아이가 아직 어릴 텐데... 하면서 문자를 확인하니 장례식장이 안산 고대병원에 있었어요. 순간, 어? 했어요. 혹시?

연락을 해준 조연출에게 물어보니 제 우려가 맞더군요. 그 음향 엔지니어의 자녀가 세월호에 탄 단원고 학생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나... 문상을 하려고 운전해서 안산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어요. 라디오에서 '슬픈 인연'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더군요.

아, 다시 올 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거야.

이별 노래가 그렇게 슬픈지 처음 알았어요.

그 부모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아이를 기다리느라 팽목항에서 한 달을 보냈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미칠 것 같았어요. 자식을 잃은 부모를 무슨 낯으로 대해야 하나.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러다 결심했어요. 의연하게 문상하자. 한 달간 아이를 기다리면서 그 부모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적어도 내가 그들을 더 힘들게 하지는 말자. 최대한 의연한 모습으로 조문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고 빈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기 위해 영정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만 사진 속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한 후, 학생증 증명사진으로 찍었을 한 남학생의 사진이 영정이 되어 내 앞에 있었습니다. 해맑게 웃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다리에 맥이 풀려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주저앉은 김에 절을 했습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내 속에서 울음소리가 꺼억꺼억 흘러나왔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그 부모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었습니다.

유가족과 희생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뉴스꼭지가 MBC 로고를 달고 방송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지난 2012년 MBC 파업 이후,

MBC 뉴스가 망가지고 보도의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뉴스가 세월호를 침몰시킨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론 형성의 책임이 있는 언론이라면,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는 보듬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관련 보도는 국민들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고립시켰을 뿐, 그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모든 일이, 다, 2012년에 170일간 파업을 하고도 뉴스의 공정성을 지켜내지 못한 제 탓이라 느꼈습니다. 그 아이의 영정 앞에서 무조건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빌어야 했습니다. 나의 통곡이 이미 한 달 이상 눈물이 마르지 않았을 부모들을 다시 눈물짓게 한 점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죄송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는 통곡을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살면서 겪은 일이나, 읽은 책에 대해 항상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저이지만, 작년 5월 저는 그 일을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참담함은 개인적인 참회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블로그에는 그 일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서 '세월호 잊지마세요' 릴레이 캠페인에 지명받았습니다.

저는 다시 1년 전 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글로 옮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한스럽기만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회사 동료의 아들 장례식장에서 제가 눈물을 흘리고도, 그 비통함을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 MBC 직원으로 사는 비통함에 대해 예능국의 한 후배 PD가 글을 올립니다.

'엠병신 PD입니다.'

그 후배는 이 글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에게, 그리고 시청자분들에게 나름의 사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성민 PD의 사죄는, 정직 6개월 징계에, 다시 해고로 이어졌습니다. 입사 3년차 새내기가 글 한 편 올렸다고, 풍자 웹툰을 그렸다고 해고를 당했습니다.

세월호가 과거의 참사일까요?

저는 세월호는 현재 진행형의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의 침몰은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해상 재난 사고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배를 몬 선장이 아니니까, 내가 구조하러 간 해경이 아니니까, 내 책임이 아닐까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지난 일 년간 우리가 어떻게 했나요?

어떻게 했기에,자식을 잃은 아빠가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고, 엄마가 삭발을 하고, 광장에서 쫓기어 경찰에 떼매여 끌려나가야 했을까요?

선장만이 괴물인가요? 유병언 일가만 괴물인가요? 언론은, 정치권은, 그리고 우리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요?

'인간답게 살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는 말아야지요.

희생자 유가족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사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에 대해 갖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

그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세월호는 끝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공동체로서 다시 굳건해지는, 더 따뜻한 세상으로 바뀔 수 있는

그 시작이어야 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4월 27일 오후,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실종자 가족이 빗속에 흐느끼고 있다. 진도=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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