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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조, 엽기 코믹 가창력 뛰어나도 주목받으려면 웃겨야 하는 정말 웃기는 세상

  • 남현지
  • 입력 2015.04.12 13:33
  • 수정 2015.04.12 13:35

노라조의 조빈(왼쪽)과 이혁은 진지한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진지하지 않아야 하는 역설적 상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하고 있다.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당혹스러웠다. 보통 첫번째 솔로 앨범을 이런 식으로 내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지난 8일 발매된 남성듀오 ‘노라조’ 멤버 조빈의 첫 솔로 앨범 장르는 ‘뉴에이지’다. 상세 분류를 보면 더 기가 찬다. ‘명상’이란다. 샤워캡을 머리에 다소곳이 뒤집어쓴 채 청초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 조빈의 얼굴이 재킷 이미지를 한가득 채우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앨범 제목은 <명상 판타지>다. 곡 리스트는 더 기괴하다. 1번 트랙 ‘듣기만 해도 부자 되는 음악’부터 시작해 ‘듣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음악’을 거쳐 7번 트랙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으로 끝나는 이 일관된 구성이라니. 지난 2월 발표한 노라조의 ‘니 팔자야’ 뮤직비디오 앞에 삽입한 ‘듣기만 해도 부자 되는 음악’이 음으로 양으로 ‘니 팔자야’의 히트를 견인한 건 알고 있었지만, 3월 한국방송(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자신의 솔로 1집은 명상 음악으로 내겠다고 말한 건 알고 있었지만, 농담인 줄 알았지 누가 진담인 줄 알았나.

그런 와중에 또 앨범에 정성을 안 들인 건 아니어서, 타이틀곡이자 마지막 트랙인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의 반주는 후반부에 힘있게 터져 나오는 기타 솔로가 일품이다. 이 ‘쓸데없는 고퀄리티’를 보고 킥킥거리며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친구가 웃으며 던진 말이 덜컥 내 발목을 잡았다. “이 사람들 노래는 진짜 잘하는데, 제대로 된 노래 한번만 내줬으면 좋겠네.” 갸우뚱한 기분이 된 내가 대꾸했다. “제대로 된 노래, 낸 적 있는데?” 나는 대화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노라조의 정규 5집 <전국제패>(2011)에 수록된 11분짜리 대곡 ‘가이아’를 찾아 들려줬다. 웃음기를 싹 지우고 가사도 음악도 모두 멜로딕 메탈로 채운 이 트랙을 듣자 친구는 말문을 잃고 내게 물었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해?” 글쎄,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있었다. 발표된 지 4년이 된 곡을 왜 이제야 발견한 거냐고 묻자니, 그런 상황에 처한 게 꼭 내 친구 하나만은 아니지 싶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고퀄리티’라는 칭송을 듣던 이들이, 정작 쓸데 있는 곳에 힘을 주어 곡을 발표하면 아는 사람이 드문 이 아이러니라니.

어쩌면 이게 노라조가 서 있는 지형인 건지도 모른다. 각각 댄스그룹 ‘티지에스’(TGS) 활동과 록 밴드 ‘줄라이’ 활동을 하던 조빈과 이혁이 소속사로부터 들었던 제안은 이런 거였다. “요즘 가요계에 ‘녹색지대’ 같은 진한 남성듀오가 없다. 그런 걸 해보자.” 록을 기반으로 한 가요로 사랑받았던 녹색지대를 생각하며 팀을 결성했지만, 정작 소속사가 준 곡은 트로트와 록이 섞인 디스코 트랙이었다. 훗날 문화방송(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혁은 그 당시를 “낚인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친구들은 “네가 드디어 돈맛에 투항했구나” 비아냥거렸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 개그 콘셉트로는 크게 성공하지도 못했다. 소속사가 했다는 말에 이미 그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큰맘 먹고 내게 한번 안기지 그래”(1집 <첫 출연>, ‘날 찍어’, 2005) 같은 가사로 작정하고 사람들을 웃기려고 해도 주목받기 어려운 시절에, 아이돌도 아니면서 녹색지대처럼 진지하게 노래하는 진한 남성듀오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결국 이들이 대중에게 제대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조빈이 삼각김밥 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등장했던 2집부터였다. “립싱크 할 거면 때려치”라는 누리꾼의 댓글에 “저희끼리도 입을 못 맞춰 립싱크를 못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응하는 특유의 악플 대처 능력도 이목을 끌었다. 뭐야, 웃기는 사람들이잖아. 조빈의 두툼한 저음이나 이혁의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 같은 게 제값에 평가받은 건 3집 <스리 고>(2008)의 타이틀곡 ‘슈퍼맨’까지 밀어붙인 엽기 콘셉트가 먹히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과거에는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을 가지고 있으면, 단단한 중저음으로 곡을 이끌어가는 가창력이 있으면 그 재능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음반시장이 무너진 이후엔 그런 재능으로도 주목을 받기 어려워졌다. 재능을 보여주려면 삼각김밥 머리를 하고서라도 주목 먼저 받아야 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쓸데없는 고퀄’ 평가받는 노라조

정작 힘준 곡 발표하면

아는 사람이 드문 아이러니

그들의 열정을 알려면

음원 모든 곡 들어봐야 하는데…

멤버 조빈의 첫 솔로앨범

이번엔 샤워캡을 뒤집어 썼다

제목은 ‘명상 판타지’

사뭇 진지하게 중얼대는 그

‘나는 나를 영원히 응원한다’♬

처음엔 엽기 코믹 콘셉트에 시선을 줬던 사람들은 이윽고 엄청난 공과 재능을 사소한 것에 쏟아낸다는 사실 자체에 웃기 시작했다. 생긴 것도 멀쩡하고 노래는 넘치게 잘하는 청년들이, 엽기적인 옷을 입고 하잘것없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는 부조리함이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저 정도 재능이 있는데 대체 왜 저런 노래를 부르는 거야. 하지만 조빈과 이혁이 각각 멀쩡한 모양새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엔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곱씹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곱씹더라도 그저 쓰게 웃으며 ‘먹고산다는 게 참…’이라 중얼거릴 뿐. ‘슈퍼맨’이 뜨자 자신들의 곡을 스스로 표절해 ‘고등어’(2009)를 발표하고는 뻔뻔스레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상인들을 배경으로 라이브 무대를 펼치는 노라조를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물론 그들의 앨범을 음원이든 시디(CD)든 전체를 구해 들어본 팬들이라면 알고 있었다. 먹고산다고 엽기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사람들이 진지한 노래를 할 역량도 충분하거니와 이미 그런 노래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슈퍼맨’이 히트를 쳤던 <스리 고>의 수록곡 ‘연극’은 웃음기 하나 없는 정통 록발라드였고, 2009년 싱글 <야심작>에 실린 록 발라드 ‘형’은 조빈과 이혁의 가창력이 유감없이 터져 나오는 곡이었다. 그러나 다들 타이틀곡 위주로 스트리밍을 듣고, 음원을 내려받더라도 전곡을 내려받아 진득하게 들어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에 이런 곡들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욕심을 부려 앨범에 진지한 곡을 삽입한다 해도, 앨범 전체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도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였을 거다. ‘니 팔자야’의 뮤직비디오가 방송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딱히 수정 후 재심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은. 웹진 <아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조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앞부분이 최면술 같은 콘셉트이지 않나. 유통사인 엠넷(Mnet) 쪽에서 ‘최면은 과학적으로 그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뮤직비디오 화면 하단에 ‘이 말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같은 문구를 계속 넣어달라”고 하더라. 어쨌든 우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이 노래를 유료구매하고 싶어진다”는 식으로 설득을 하고 있는데 그런 문구가 같이 들어가버리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럴 수는 없겠다고 말했다.”(2015년 3월13일, 황효진 기자) 아무도 음원을 제 돈 주고 구매하지 않는 세상에서, 음원을 돈 주고 사달라는 부탁은 농담조일지언정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조빈의 <명상 판타지>의 수록곡 일곱 곡 중 네 곡에는 ‘유료구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음악에 대한 노라조의 진지한 열정을 알려면 사람들이 음원을 유료구매해서 다 들어봐야 하는데, 유료구매를 유도하려면 또다시 “쓸데없는 고퀄리티”의 개그 콘셉트의 곡을 앞세워야 하는 시대. 노라조는 자신들의 방법으로 리스너들을 설득 중이다.

시종일관 개그로 일관하던 조빈은, 마지막 트랙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에서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 진정 원하는 음악으로 시작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처음엔 악플을 다는 이들도 많았지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걸어온 끝에 노라조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나를 사랑한다. 이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의 나도 사랑한다.” 노라조는 진지한 음악을 하고 싶은 자신들뿐 아니라 지금의 자신들도 긍정한다. 본격 록 음악을 하기 위해 결성한 7인조 록 밴드 유닛 ‘노라조 에볼루션 넘버 7’이나, 금칠을 한 갓을 쓰고 기복신앙의 가사를 읊조리는 노라조나 결국엔 모두 자기 자신이니까. 이상과 현실을 모두 긍정한 조빈은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중얼거린다. “나는 최고를 향해 걸어가는 도전자이다. 나는 나를 영원히 응원한다. 나는 최고가 된다.” 그렇게, 그들은 최고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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