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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검사론'에 대하여

'막내검사론'은 5.18 사건 때의 "일개 검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라는 논리를 연상시킨다. 설사 고문에 관여한 경찰관이 더 있다거나 혹은 경찰 지휘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있었더라도 수사팀에서 가장 후배인 검사가 어떻게 그걸 파헤칠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검사를 단순히 시키는 대로만 하는 법 기술자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막내검사든 '맏이검사'든 검사라면 수사기관에서 고문을 해서 사람을 죽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의혹을 가지지 않았다면 무능력한 것이고 의혹을 갖고도 아무런 말을 안 했다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무능력했던 경우라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 금태섭
  • 입력 2015.04.12 06:35
  • 수정 2015.06.12 14:12
ⓒ연합뉴스

대한민국 검찰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망신을 당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느냐만, 해방 이후 60년 동안 가장 치욕스러운 일을 꼽는다면 12.12와 5.18을 불기소 처분한 것을 들지 않을 수 없다.

1995년 7월 18일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저 유명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전두환, 노태우 등 피의자 58명 전원을 불기소했다.

그로부터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995년 12월 3일 검찰은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고 전두환을 구속했고, 결국 사형을 구형했다. 형법상 내란수괴죄와 군형법상 반란수괴죄 등이 적용되었고 1심 선고 결과는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22년 6월이었다.

말하자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대한민국 검찰은 같은 사람에 대하여 처벌할 수 없다는 결정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반대의 결정을 한 것이다.

"(전두환 등을 처벌하는 경우) 헌정질서나 법질서의 단절을 초래해 정치적 사회적 법률적으로 중대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국민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사후에 사법적으로 번복하는 부당한 결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불기소 처분을 했던 검찰은 전두환에게 사형 구형을 하면서는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군 통수체계 및 민주헌정질서를 뿌리째 와해시키고 건전한 경제구조를 왜곡시킨 반국가적 반역사적 범죄"라면서 "결국은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것을, 진실보다 더 큰 힘은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 달라. 이 재판이 이 땅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이정표로 승화될 수 있도록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려달라."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기모순의 극치를 보여준 결정이었다.

전두환 등을 구속기소한 후 검찰 내부에서는 애초에 불기소 처분을 했던 검사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형구형을 해야 하는 피의자에 대해서 궤변에 가까운 논리로 불기소처분을 했으니 최소한 사표는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런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것이 "일개 검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는 논리였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불기소하거나 기소하는 결정은 실질적으로 청와대에서 했을 텐데 단순히 형식상 사건을 처리한 검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억울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불기소 처분에 관련된 검사들이 소위 '잘 나가는' 검사들이었기 때문에 승진을 두고 경쟁하는 동기들이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결국 전두환, 노태우 등을 불기소 처분했던 장윤석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후 검사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검찰을 떠난 후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고 현재 3선인 현역의원이다.

당시 막 발령을 받은 초임검사이던 나는 감히 서울지검 공안부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따지는 논란에 끼어들 수도 없는 처지였지만,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전두환, 노태우를 불기소 처분하는 결정을 '일개 부장검사'가 독자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 대통령이 판단했을 것이고, 나중에 구속하는 결정도 청와대에서 내렸을 것이다. 검사는 청와대의 결정에 이유를 붙이는 정도의 일(말하자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드는 일) 정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한 검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번에 같은 처지에 놓이는 검사가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주문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 검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게 되면 청와대 등 권력 기관은 부담 없이 검찰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건을 맡은 검사가 반대하더라도 "책임은 우리가 질테니 그대로 실행하라."고 지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 그렇게 할 수 없다. 만일 5.18을 불기소했던 검사에게 사표를 받았다면, 다음 번에 그런 부당한 지시나 압력이 내려왔을 때 검사가 버틸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책임을 짐으로써 다른 검사들이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못 했기 때문에 5.18 불기소 결정은 검찰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 것이다.

대법관으로 제청된 박상옥 후보자에 대해 인준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의 그의 역할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 측에서는 '막내검사론'을 내세워서 방어를 하고 있다.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에서 가장 후배였던 박상옥 후보자에게 사건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우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구조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국회에서의 논란은 과연 박상옥 후보자가 사건의 은폐, 축소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두고 진행되고 있다. 야당 측은 당시 1차 수사팀에서 경찰관들을 직접 조사했던 박 후보자가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를 하는 데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여당 측은 박 후보자는 몰랐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과연 몰랐다면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경찰이 아무런 죄도 없고 심지어 피의자도 아니었던 대학생을 잡아 와서 물고문을 하다가 죽인 사건(당시 박종철은 어떤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아니었다. 선배인 박종운의 행방을 대라는 추궁을 받으며 고문을 받은 것이다)을 맡은 검사라면 당연히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해서 사건의 전모를 밝힐 책임이 있다. 더욱이 박종철 사망 직후 당시 경찰의 총수인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라는 그야말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팀은 사실상 직접 고문에 관여했다고 자백을 하는 경찰관 2명에 대해서만 그 자백을 확인하는 수준의 수사를 했고 그들만을 기소했다(검찰은 피의자를 구속했을 경우 최대 20일 동안 수사를 할 수 있는데 당시 1차 수사팀은 4일 만에 자백하는 경찰관 2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끝냈다). 나중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없었다면 과연 2차 수사가 이루어졌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설사 적극적으로 은폐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그런 중대한 사건에서 그토록 부실한 결과를 내놓았다면 당연히 책임이 따라야 한다.

'막내검사론'은 5.18 사건 때의 "일개 검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라는 논리를 연상시킨다. 설사 고문에 관여한 경찰관이 더 있다거나 혹은 경찰 지휘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있었더라도 수사팀에서 가장 후배인 검사가 어떻게 그걸 파헤칠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검사를 단순히 시키는 대로만 하는 법 기술자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막내검사든 '맏이검사'든 검사라면 수사기관에서 고문을 해서 사람을 죽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의혹을 가지지 않았다면 무능력한 것이고 의혹을 갖고도 아무런 말을 안 했다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무능력했던 경우라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박상옥 후보자는 검찰에 재직하면서 큰 흠이 없이 검사장까지 승진했고 인품도 원만한 분이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청문절차는 박 후보자 개인에게 법적인 책임이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과연 그가 대법관이 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는 것이다. 대법관은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가장 권위가 있어야 하는 자리이고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을 임명하는지는 우리 사법이 지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무고한 대학생이 고문을 당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결과를 내놓은 사람이 어떻게 대법관으로 고려될 수 있는지 탄식이 나올 뿐이다. 더욱이 터무니없는 '막내검사론'은 검사로 일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한다. 검사면 검사지 막내검사가 어디 있는가. 고문을 당한 끝에 억울하게 죽은 대학생 앞에서 어떻게 '이번에 대법관 후보자가 된 사람은 막내검사였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박상옥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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