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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물건에 디자인을 선물하자!

출장과 낯선 잠자리가 반복되어도 특별히 극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샤워용품이다. 샴푸인지? 린스인지? 요즘은 바디 관련 제품까지 한 자리에 몇 통씩 놓여있는 바람에 함께 간 동료의 설명을 듣고 나서도 혼자 열심히 씻다보면 뭐가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 일정에서도 어김없이 린스로 머리를 감고 치약으로 세수를 하면서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처럼 완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안경을 벗거나 수증기가 가득 찬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사물을 정확히 분별하기가 힘들 텐데 눈을 뜨지 않고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촉감이나 모양을 다르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 안승준
  • 입력 2015.04.10 07:53
  • 수정 2015.06.10 14:12
ⓒGetty Images/iStockphoto

지난 주말엔 세미나와 관련된 1박 2일 지방출장을 가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숙박하게 될 시각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오리앤테이션을 해 주려고 애를 쓰지만 수백평 정도 되는 최고급 스위트룸이 아니라면 혼자서도 단순한 구조는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입구 근처에 있을 샤워실과 화장실, 한쪽 구석에 놓여있을 침대 그리고 그 맞은편쯤 있는 TV와 콘센트는 완벽히 다른 모양과 냄새를 풍기고 있어서 착각을 잃으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만 출장과 낯선 잠자리가 반복되어도 특별히 극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샤워용품이다.

샴푸인지? 린스인지? 요즘은 바디 관련 제품까지 한 자리에 몇 통씩 놓여있는 바람에 함께 간 동료의 설명을 듣고 나서도 혼자 열심히 씻다보면 뭐가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은 회사 브랜드를 가진 녀석들은 어찌나 모양도 감촉도 똑같은지 아무리 특징을 잡고 기억하려고 해도 대책이 잘 서지 않는다.

최근엔 치약모양을 하고 있는 비누들까지 나와서 치약으로 세수를 하기도 하고 나의 혀에게 경험하지 못한 맛을 선물하기도 한다.

세상엔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콜라캔과 사이다캔이 그렇고 새로 나온 음료수캔들도 특별히 다른 모양을 도전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소금통과 설탕통도 같고 간장통과 기름통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허니버터칲'이 전국을 평정해도 수많은 과자봉지들 틈에서 눈을 감고 그것을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점자가 붙어있는 식혜와 맥주캔에는 특정상표가 아닌 '음료', '맥주' 같이 어떤 종류인지만 적혀있어서 어디에다 배려를 감사해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다.

모양이 같은 소주병들은 모두 재활용을 하는지 처음처럼에 '진로', 참이슬엔 '선양'이라는 점자가 붙어있어서 오히려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일정에서도 어김없이 린스로 머리를 감고 치약으로 세수를 하면서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처럼 완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안경을 벗거나 수증기가 가득찬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사물을 정확히 분별하기가 힘들 텐데 눈을 뜨지 않고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촉감이나 모양을 다르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요즘은 물건을 살 때 적지 않은 디자인비를 낸다고까지 하는데 각 브랜드를 상징하는 특별한 모양의 과자나 음료수가 나오면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설탕과 소금도, 스킨과 린스도 맛보거나 흔들거나 냄새 맡아보지 않고서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으면 두 눈 멀쩡한 내 친구가 술을 담그면서 소금을 잔뜩 넣는 일과 우리 어머니가 헤어스프레이 대신 모기퇴치제를 머리에 뿌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동전들은 각기 특이한 특징들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다.

크기가 다르거나 테두리에 무늬가 있거나 소재가 다르거나 그도 아니면 떨어뜨렸을 때 나는 소리가 다르다.

지폐들도 단위가 높아질수록 길이가 길어져서 웬만하면 큰 착각은 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에 있는 물건들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

천원짜리 소주이지만 유명양주처럼 회사고유의 디자인을 입히고 샴푸에게도 린스에게도 각자의 옷을 입혀주고 싶다.

특별한 디자인이 아니어도 좋다 감촉이나 뚜껑의 재질만 달라도 시각장애인들이 보는 세상은 많이도 밝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바란다면 공공화장실의 신사용 화장실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고유의 위치가 정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들에게 고유의 위치를 주기가 어렵다면 문고리 모양만이라도 정해줘서 의도치 않게 변태취급을 받은 시각장애인들의 억울함을 씻어주고 싶다.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라고들 한다. 고유의 디자인과 특징을 가진다는 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수많은 특징 없는 물건들에게 특색 있는 디자인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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