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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는 없는 면의 '곱빼기 윤리학'

ⓒ한겨레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곱빼기는 ‘곱빼기’다. 그 경음에 두 그릇의 든든한 국수 느낌이 난다. 밥은 곱빼기로 먹는 경우가 드물다. 공깃밥 추가겠지. 면은 곱빼기가 있다. 곱빼기 없는 집은 야박하다는 인상을 준다.

짜장면집은 곱빼기의 성지다. 우리 시절에는 짜장면 곱빼기를 먹어야 비로소 장정(?)이 된다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초등 4학년 때 달성했다. 2, 3학년에도 가능했을 것 같긴 하다. 없어서 못 먹었으니까. 1등급도 아니고, 싸구려 등급의 갈색 밀가루로 만든 짜장면을 곱절로 먹어치우고도 배가 고팠으니까. 시장통에 곱빼기만 파는 집이 있었다. 정식 중국집도 아니고, 그냥 ‘짜장면집’이었다. 소독저 값도 부담스러웠던지 금속 젓가락을 썼다. (그때는 일회용품 단속이 없던 때다.) 그것도 값싼 알루미늄이었다. 그릇도 은색의 알루미늄이었다. 아쉬운 최후의 젓가락질의 흔적이 그릇 바닥에 무수한 빗금으로 남아 있었다. 빗살무늬 짜장면 그릇이었다.

짜장면 곱빼기를 돌파하면 다른 재미를 찾았다. 우동과 짬뽕, 볶음밥도 곱빼기를 시키는 것이었다.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는데, 면은 어떤 집이든 최소한의 금액을 더 받았다. 보통이 백원이면 백십원이었다. 그러나 볶음밥은 이삼십원을 더 받았다. 오직 면에서만 최소한이었다. 그것은 짜장면의 미덕이고, 덕성이었다. 억지로 갖다 붙이면, 최초의 짜장면 파는 식당의 이름이 ‘공화(共和)춘’ 아니었던가. 물론 따지고 보면 쌀값과 미국산 밀가루 가격의 차이에서 오는 일이었다. 그래도 면은 푸짐하게 담아야 한다는 생각은 존중해주자. 우리 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먹고 험난한 시절을 보냈으니까.

그래서 냉면집에 곱빼기가 없으면 쓸쓸해진다. 메밀값 비싼 걸 누가 모르나. 그래도 밥도 아니고 ‘면’의 긍휼은 어디 간 걸까. 그런 심사가 들어 슬프다. “곱빼기 없으니 사리 추가 시키슈”라는 말은, 마치 문전박대의 심정에 빠지게 한다. 남대문의 한 서민 냉면집은 세가지 곱빼기가 있다. 면만 추가하면 조금 더 받는다. 고기만 추가하면 거기에 추가가 약간 더! 면과 고기 모두 추가하면 특곱빼기다. 이 세세한 가르기를 생각하면서 주인의 세심한 고려가 더해졌던 것 같다. 특곱빼기를 시켜봐야 싸다, 싸. 남대문시장에 비싼 건 없으니까.

이탈리아에도 곱빼기가 있다. 피자는 없어도 국수인 파스타는 있다. 100g이 스파게티의 정량이다. 간혹 150g을 곱빼기로 시키는 손님이 있다. 소스도 더 들어가지만, 1.5배를 받지는 않는다. 주인은 기뻐하기도 한다. 음, 우리 스파게티를 진짜 좋아하는군. 곱빼기 스파게티를 만들 때 주방장도 신이 난다.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면이 프라이팬 바닥에 떨어지면서 소리를 내게 마련인데 보통은 찰파닥, 하고 곱빼기는 철퍼덕, 한다. 주인이 뭐라 하든 주방장은 소스를 듬뿍 얹는다. 많이 드슈. 한국의 동네 짜장면집 아저씨가, 곱빼기 면에 아낌없이 소스를 퍼주던 것처럼 말이다. 60년대, 70년대를 풍미했던 서울 홍은동 홍운반점이었던가, 그 화교 주방장 아저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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