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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 안에서 미쳐가는 동물들 | '동물원법'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사육사, 관광객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현상은 사자, 호랑이 외에 동물에게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자신의 분변을 먹거나, 음식물을 계속해서 게워내고 다시 먹는 행동(regurgitation), 혹은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상동증(stereotypy)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실제로 동물원에 가보면 아무리 규모가 큰 동물원이라 하더라도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곰이 얼굴 털이 닳아 빠지도록 쇠창살에 얼굴을 비비며 고개를 끊임없이 흔드는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곰이 테크노 춤을 춘다'며 손뼉을 친다.

지난 2월 12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사육사가 사자에게 물려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내실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방사장에 남아있던 사자 두 마리가 사육사를 공격한 것이다. 2014년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사가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에게 물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지 일 년 만의 일이었다.

로스토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사자의 거취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안락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행히 로스토프는 안락사는 면했지만, 일 년째 방사장에서 격리되어 독방 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외국 사례를 참고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평생을 독방에 수감되어 보내거나 다른 시설로 옮겨지는 '징계'를 면치 못할 것 같다.

평생을 마음을 다해 돌보던 동물에게 목숨을 잃은 고인과 고인의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도록 안타깝다. 그러나 과연 이 사고의 책임을 사자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좁은 우리 안의 삶, 당신은 살 수 있나

사자는 고양잇과 동물로서는 특이하게 무리생활을 하는 종이다. 혈연관계가 있는 암컷 십여 마리와 새끼들, 수컷 사자 몇 마리로 된 무리 안에서 산다. 야행성 동물로 낮에는 주로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에는 사냥을 한다. 사냥은 주로 암컷이 하고 수컷은 영역을 지키는 일을 하는데, 무리 중 일부는 사냥감을 추적하고 몇 마리는 잠복 대기했다가 공격하는 공동작전을 구사하는 영민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물원의 사자의 삶은 전혀 다르다. 먹이를 사냥하거나 영역을 지키는 일, 같은 무리의 사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하루 몇 시간씩 이동하는 일 등 생태적 습성에 따라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철저하게 제약되어 있다. 시속 60km로 달릴 수 있는 사자에게 허용된 공간은 고작 아파트 한 채 정도 크기의 사육장이다.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안을 왔다 갔다 하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일뿐이다. 식사 시간에는 사냥 대신 던져 주는 생닭을 뜯는다. 야행성 동물이지만 낮 시간 동안 몰려드는 관람객의 눈길과 소음을 그대로 견뎌야 한다.

김해에 있는 동물원의 호랑이. 야외 방사장 없이 햇빛이 들지 않는 실내에 전시되고 있다.

일산에 있는 한 수족관에서 전시되는 재규어. 실내에서 전시되고 있는데다 사방이 투명한 사육장은 관람객의 눈을 피해 쉴 수조차 없다.

호랑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호랑이의 행동 반경은 암컷의 경우 20㎢, 수컷은 최대 100㎢에 달한다. 물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호수나 강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수영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물 안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능력도 갖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현재 명시하고 있는 사자와 호랑이 사육 면적의 최소 기준은 14㎡, 야생에서 생활하는 공간의 7백만분의 1도 안 되는 크기다. 물 웅덩이를 제공해야 한다는 기준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호랑이, 사자, 재규어를 흙 한 점 없는 유리관 같은 실내 시설에 전시하는 동물원들도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동물원 동물들,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만

동물원에서 사자, 호랑이가 사육사나 관람객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것은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빅캣레스큐(Big Cat Rescue)'라는 미국의 큰고양이종 동물 구조단체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서만 전시시설에서 사자나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한 사건은 748건에 달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 미국 외의 나라에서는 261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동물원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모습. 우리 안을 왔다갔다 하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반복적으로 토하고 토사물을 먹는 행동을 보인다.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사육사, 관광객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현상은 사자, 호랑이 외에 동물에게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자신의 분변을 먹거나, 음식물을 계속해서 게워내고 다시 먹는 행동(regurgitation), 혹은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상동증(stereotypy)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실제로 동물원에 가보면 아무리 규모가 큰 동물원이라 하더라도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곰이 얼굴 털이 닳아 빠지도록 쇠창살에 얼굴을 비비며 고개를 끊임없이 흔드는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곰이 테크노 춤을 춘다'며 손뼉을 친다.

이렇게 동물원이라는 곳이 본질적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관련법이 없다. 동물원 동물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원을 설립하려면 지자체의 경우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나 '자연공원법'에, 개인이나 민간기업의 경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과 '관광진흥법'에 의해 설립하게 되는데, 이 중 어디에도 동물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기준은 찾아볼 수 없다. 유럽연합, 영국, 호주,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육 시설, 수의사 등 필요한 인력, 안전 장치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정부에서 면허를 받아야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현실이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이 '상해'를 입었거나, 고의로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경우만 학대로 규정하고 있어, 공연을 위해 훈련하는 과정 중에 일어날 수 있는 학대 행위나 생태적 습성에 맞지 않는 환경에서 동물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처럼 동물원이라는 구조 내에서 본질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는 터무니없이 미흡하다.

2013년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동물원법'을 발의했지만 1년 7개월이 넘도록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는 상황이다. 발의안에는 동물 본연의 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육 환경을 조성하고, 수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동물에게는 처치를 의무화하는 등 동물원 동물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물쇼처럼 관람을 목적으로 한 훈련을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제주도에서 운영되는 동물쇼. 생태적 습성에 맞지 않는 행동을 강요하는 훈련 과정 중에 학대가 빈번히 발생한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동물원의 원숭이. 분변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 바닥이 철사로 된 '뜬장'에서 사육하고 있다. 뜬장은 동물 발바닥과 관절에 무리를 준다.

국민 95.1%, '동물원 운영하려면 정부 허가 받아야'

동물자유연대가 성균관대에 의뢰해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실시한 '동물보호 및 동물원법 제정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법이 시민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설문에 대답한 1095명 중 95.1퍼센트가 '동물원 설립 시 정부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고, 58.9퍼센트에 달하는 시민들이 공연을 위한 인위적 훈련을 금지하는 데 찬성했다. 동물자유연대는 국회에 동물원법의 시급성을 알리고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4월 2일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동물원법은 이달 말 국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은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야생동물의 참 모습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아마 어렸을 적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보고 '코로 과자를 받아 먹는 동물' 이상의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동물이 최대한 고유의 모습과 습성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교육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법지대에서 운영되는 동물원들이 아이들에게 '약자에 대한 착취'를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또 더 이상 맹수에게 사육사가 변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동물원법의 입법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

글 | 동물자유연대 정책국장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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