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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훈 사건과 '파우스트의 거래'

박범훈 비리 의혹 사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파우스트의 거래'라는 말이다. 박 전 수석이 사적인 욕망 때문에 총장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마저 팔아버렸다는 의미 때문만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을 지낸 데릭 복은 미국 대학의 기업화 현상을 '파우스트의 거래'에 비유하는데, 대학이 수익 창출이라는 욕망을 좇다가 결국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신세가 되었다는 그의 지적은 바로 중앙대 사태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기업이 대학을 인수했을 때 벌어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학이 기업처럼 바뀌고, 그렇게 기업화된 대학은 영혼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에 있다.

  • 김누리
  • 입력 2015.04.06 13:46
  • 수정 2015.06.06 14:12
ⓒ연합뉴스

중앙대 총장을 지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비리 의혹이 연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박 전 수석이 교육부에 압력을 넣어 중앙대에 각종 특혜를 줬고,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그룹은 그 대가로 그에게 여러 가지 특혜를 돌려주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중앙대가 두산그룹 계열사에 대학 내 건물 공사를 몰아줘 두산이 학교에 출연한 기금보다 훨씬 많은 매출을 올렸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대의 부채는 10배가량 늘었고, 이 빚을 갚는 데 학생들이 낸 등록금 중 일부가 사용됐다는 보도도 들려온다. 기업이 대학에 들어오면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업은 학교 운영비는 지원하지 않고 건축에만 지원을 집중하기 때문에, 건축비가 상승하면 그 부담은 온전히 학생들이 짊어지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사립대학 총장들이 모인 서울총장포럼이란 곳에서 중앙대 총장이 기여입학제 허용, 등록금 상한제 폐지, 대학 적립금 사용 규제 철폐 등을 주장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박범훈 비리 의혹 사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파우스트의 거래'라는 말이다. 박 전 수석이 사적인 욕망 때문에 총장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마저 팔아버렸다는 의미 때문만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을 지낸 데릭 복은 미국 대학의 기업화 현상을 '파우스트의 거래'에 비유하는데, 대학이 수익 창출이라는 욕망을 좇다가 결국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신세가 되었다는 그의 지적은 바로 중앙대 사태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기업이 대학을 인수했을 때 벌어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학이 기업처럼 바뀌고, 그렇게 기업화된 대학은 영혼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에 있다. 대학의 기업화는 대학의 이념을 변질시키고, 학문의 가치를 퇴색시키며, 수천년 이어져온 학문공동체를 와해시킨다.

대학을 인수한 기업이 가장 먼저 벌이는 일은 대학의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다. 기업은 민주주의, 소통, 협력보다는 단기적 이익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기업식 문화가 대학을 지배하는 순간 학문의 자유(헌법 22조), 대학의 자치(헌법 31조)라는 학문공동체의 영혼은 숨을 거둔다. 기업 총수가 이사장이 되어 '대학의 주인'을 자처하며 총장을 임명하고, 법률이 정한 '대학 경영'의 범위를 넘어 '대학 운영'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제적 지배구조는 '교수와 학생으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라는 대학의 이념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기업화된 대학은 또한 예외 없이 인문사회과학을 축소하거나 고사시키려는 시도를 꾀한다.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정의를 탐구하는 인문사회과학은 이윤 추구와 수익 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상대일 뿐이다. 인문사회과학의 축소와 경영학의 확장은 대학 기업화의 진행 수준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지금 이 땅에서는 기업과 대학 사이에서 일종의 '문화전쟁'(데이비드 슐츠)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적 문화'를 앞세운 대기업이 대학을 취업학교로 만들려는 교육부와 손잡고 '민주적 문화'를 지키려는 대학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기업화된 대학이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압살하려는 것은 기업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인 세력을 대학에서 뿌리 뽑고, 시장 논리에 순종적인 노동자와 무개성적인 소비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깊다.

"시장문화, 시장윤리, 시장정서가 공동체를 뒤흔들고, 시민사회를 잠식하는 시대"(앙리 지루)에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정의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인 대학이 '파우스트의 거래'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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