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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왜 이상한 데 그림 그려?" 샌드위치 백 아트

  • 강병진
  • 입력 2015.04.06 05:58
  • 수정 2015.04.06 06:02

아빠들이 난리다. 어떤 아빠는 아이랑 여행을 가고, 또 어떤 아빠는 애기 똥 기저귀를 갈며 분투한다. 그들의 미션이 험담할수록 시청자들의 웃음 데시벨은 올라가니, 이거 뭐 본격 아빠 사도마조히즘 시대에 진입한 걸까? 떡밥이 슬슬 식어갈 때쯤, 색다른 ‘아들바보’가 나타났다. 매일 두 아들을 위해 샌드위치 백에 그림을 그리는 데이비드 라페리에가 바로 그다.

진행. 서종원 기자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데이비드 라페리에(David Laferriere, http://drlaferriere.com/)는 특별한 ‘아들바보’다. 물론, <인터스텔라>의 쿠퍼처럼 딸을 위해 4차원 공간에서 울부짖진 않지만, 2008년부터 지금까지 두 아들의 학교 점심을 위한 샌드위치 포장지에 크리첼(The Kritzels)이라 불리는 캐릭터와 각종 이미지를 그려 넣고 있다. 샌드위치 또한 직접 만들어주는 아빠의 섬세함에 입소문이 세계로 뻗고 있다. 이에 태평양이란 책장을 두고 0과 1로 소통한 쿠퍼와 그의 딸처럼 그를 만났다. 직접 만났다면, 크리첼이 그려진 샌드위치 백과 샌드위치를 받아봤을 텐데.

'월간 웹' 인터뷰가 한국 매체와의 첫 인터뷰가 아니라고 들었다. 이거 실망스러운데?

몇 년 전 SBS, MBS에서 나의 작품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처음은 SBS <모닝와이드>였고. 그때 느낀 건,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이 나의 ‘샌드위치 백 아트(The Sandwich Bag Art)’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 쇼>인 <모닝와이드>를? 라페리에 씨의 작품들을 보면 아날로그 방식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어렸을 적부터 종이에 낙서하듯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아날로그 작업은 아이디어를 단숨에 시각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작업 시간도 짧고. 샌드위치 백을 제작할 땐 주로 ‘샤피(Sharpie, 미국의 문구 회사)’의 마커를 사용한다. 샌드위치 백의 키치스러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것도 마커 덕분이다.

그럼 디지털 작업은 아예 안 하는 건가?

내 직업이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걸 까먹은 건 아니겠지? 디지털, 아날로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디지털 작업할 땐 어도비 CC(Adobe Creative Cloud) 툴을 사용하고 있다.

라페리에 씨의 평소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두 아들이 학교 점심시간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러고선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오늘 샌드위치 백에 그릴 이미지를 생각한다. 아이디어 구상이 끝나면 검은색 샤피 펜을 들고 캐릭터를 그린 뒤 어울리는 색을 채운다. 가끔 색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땐 냅킨이나 손가락으로 여러 색을 섞기도 하고 색을 문대 그라데이션 효과를 주기도 한다. 나는 샌드위치 백에 그려진 몬스터들을 크리첼(The Kritzels)이라 부르는데, 이들을 생명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자도 그려준다. 그림자가 없으면 유령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5분이 채 안 걸리겠네?’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편집자 주: 데이비드 라페리에는 샌드위치 백에 크게 몬스터 형태의 캐릭터 크리첼(The Kritzels)과 그 외 동물 등의 각종 이미지를 그려 넣고 있다.

크리첼에 대해 얘기해 볼까. 언제부터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 건가.

크리첼은 어떻게 두 아들놈을 기쁘게 해줄까라는 고민에서 탄생했다. 이를 샌드위치 백에 그려 주면 즐거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엔 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닭, 다람쥐, 오리, 새 같은 동물들을 그려 넣었다. 그러다 식상하기도 해서 사내 녀석들이 좋아하는 로봇과 몬스터를 그리게 됐고, 2010년 1월 12일 마침내 크리첼이라고 부를 만한 몬스터가 태어났다. 크리첼을 본격적으로 샌드위치 백에 그려넣기 시작한 건 2011년 2월 11일부터다.

크리첼엔 특별한 의미가 있나?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크리첼 가족들이 생긴 건가?

별다른 의미는 없다. 아이들이 하루에 한 번이라도 더 미소 짓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크리첼은 현재까지 1,719개의 샌드위치 백에 그려졌다(2015년 3월 6일 기준). 매번 다른 캐릭터를 그렸으니, 1,719개의 캐릭터가 완성된 셈이다. 앞으로도 계속 추가할 예정이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크리첼을 소개한다면.

내가 만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모든 크리첼이 각별하다. 각각 나름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내가 낳은 자식이 모두 사랑스러운 것처럼 모든 크리첼이 특별하다.

샌드위치 백에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 일화를 소개해 줄 수 있나?

처음엔 다른 학부형들에게 소문이 나 자신의 아이들 샌드위치 백에도 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직접 요청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자신의 아이들 샌드위치 백에 그림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내 아들에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자 몇몇 사람들은 샌드위치 백의 환경 오염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백이 버려진 뒤 땅에 묻히게 되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 후 생분해성 플라스틱(박테리아에 의해 무해 물질로 분해돼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 백을 사용했다. 나중엔 다양한 국가에서 취재 요청이 오기도 했다. 2014년 4월엔 야후 스페인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환경도 생각한다니 멋지다. 샌드위치 백에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

아이들이 첫 반응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교 후 가방 내려놓기가 무섭게 “아빠, 이거 엄청난데요(It’s pretty cool!)”라고 말하더라. 지금도 종종 다시 묻곤 하는데,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선 당신과 같은 아빠들을 ‘딸바보’ 혹은 ‘아들바보’라 칭한다. 아이에 꼼짝 못 하는 바보 아빠들이 일종의 트렌드라고나 할까? 모든 TV 채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하고. 미국은 어떤가? 한국과 같은가?

하하. 그럼 나는 ‘아들바보’인가(편집자 주: 라페리에 씨는 개인 사이트에 스스로를 ‘A Doting Dad(아들바보, 딸바보)’라 칭한다). 아빠들이 아이들을 위해 작더라도 뭔가 특별한 걸 해주는 건 멋진 일이다. 항상 ‘패밀리맨’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왔고.

2008년 처음 샌드위치 백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7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도 훌쩍 자랐을 것 같은데 여전히 아들들을 위해 샌드위치 백에 크리첼을 그리고 있나?

쑥스럽긴 한데, 여전히 그러고 있다. 첫째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올가을에 대학에 들어가니 도시락을 싸줄 수 없게 돼 아쉽다. 그래도 둘째 아들은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기 때문에 졸업 때까지 열심히 그려줄 생각이다. 설마 아들 녀석이 부끄러워하진 않겠지?

만약 부끄러웠다면 지금까지 견딜 수 없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라페리에 씨의 향후 계획을 말해달라.

지금은 크로마뎁스 3D(Chromadepth 3D, chroma.drawrs.com) 방식을 이용해 2차원 이미지를 3차원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애너모픽 아트(하나의 그림을 원통형 반사체에 띄워 또 다른 그림이 보이게 하는 기법)도 연구 중이다. 동시에 크리첼 식구를 더욱 늘릴 생각이다. 이를 통해 만화를 제작하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고.

* 월간 웹(w.e.b) 2015년 4월호와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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