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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홍성담과 에르메스 미술상 장민승 그리고 세월호 참사

<세월오월>은 단순히 정치인을 풍자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예술이 아니다. <세월오월>은 우리의 삶과 왜곡된 정치가 충돌하는 사이 공간에서 왜곡된 정치의 환부를 미적인 가치를 통해서 드러냈기 때문에 정치적인 예술인 것이다. 나는 종종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행동을 목격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조롱과 비난이 생산적인 비판의 지점까지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구심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식의 조롱과 비난은 어버이연합이 자주 하는 극단적인 수준의 퍼포먼스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작동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홍태림
  • 입력 2015.04.06 13:32
  • 수정 2015.06.07 14:12

▲ 2015년 4월 2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선체인양과 진상규명, 희생자 배·보상 절차 중단을 촉구하며 진행된 삭발식에서 한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적 예술은 무엇일까

나는 평소에 삶과 정치 그리고 예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정치적인 예술의 영역에 속하거나 그러할 여지가 있는 예술을 발견할 때마다 더듬이를 곤두세우게 된다. 때문에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은 나에게 자극적인 신호로 다가왔다. 내가 이러한 신호를 감지한 이유는 두 작품이 정치적인 예술의 영역에서 극단적으로 상이한 가치를 내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은 나무여>와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불거진 사회적 비극을 통해서 정치적 예술의 영역을 공유한다. 여기서 문제는 정치적 예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와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는가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문제는 본글에서 나의 입장 정리가 필요한 지점이다. 우선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문제와 관계를 맺는 지점에 대해서는 <검은 나무여>를 다루는 부분에서 언급하겠다. 그러나 정치적 예술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후술될 내용을 위해서라도 먼저 간명하게 밝히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물론, 내가 동시대의 정치적 예술의 의미를 유효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동시대의 정치적 예술에 대한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정치적 예술에 대한 다양한 정의의 총체적인 연결성이 이뤄질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정치적 예술에 대한 나의 간명한 입장 정리는 앞으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이렇게 나의 입장을 정리해 보는 것이 정치적 예술에 대한 고민을 진전시켜 나가기 위한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본글이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다루기도 하니 우선 홍성담 작가의 예술관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홍성담 작가와 김종길 평론가의 대담을 담은 「스스로 망루가 된 샤먼예술가」에서 홍성담 작가는 예술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다양한 것 중에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예술 자체에 창조적 힘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예술 자체에 창조적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예술을 종교화, 신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담 작가의 말대로 예술은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 하나지만, 그렇다고 삶과 예술이 수직적인 관계로 맺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 생각에 예술은 자신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나타나거나 소멸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내가 예술의 소멸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돈과 법으로 옥죄어진 사회 속에서 예술이 스스로 소멸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역설적인 가치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과 각종 기술과 시스템의 발달로 사람들이 예술에 기대하는 가치가 대부분 사라졌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오늘날의 예술이 자신의 안과 밖에서 유의미한 가능성을 남기며 스스로 소멸할 선택지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나의 이러한 시각은 예술의 제도화가 점점 심화되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의 예술은 우리의 삶을 재구성하는 국가, 정치, 돈, 법, 기술 같은 요소들에 상당히 의존하거나 그 테두리 아래서 할 수 있는 비판·저항을 힘겹게 수행하고 있다. 근대화 이후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돈과 법은 막강한 힘으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가치를 잠식했고, 예술도 이러한 상황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비판·저항적 예술조차도 자신이 목적으로 삼았던 대상 안에서 비판·저항적 의미를 스스로 회수하고 불투명한 태도를 취하기 일쑤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존립 근거와 자율성을 잃어가는 예술은 종종 제도화된 예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이 아무리 제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외적인 사례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예술이 제도화되었다고 일반화하기보다는 예술의 제도화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비판·저항적 예술은 더러 정치적인 예술로 불린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 중에서도 하필 정치라는 요소가 예술이 수행하는 비판·저항과 빈번히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회의 다양한 갈등들은 결과적으로 정치로 수렴되어 조정·관리된다. 그래서 정치는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조직하는 차원까지 폭넓게 포괄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활발해진 풀뿌리주민단체의 활동은 생활, 문화. 정치적인 삶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공적 개인의 탄생을 추동하는 데 기여했다. 풀뿌리주민단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자아의 윤리적 정체성과 타인과의 상호성을 강조하는 공적 개인의 탄생은 생활정치나 생활 자치, 삶의 정치 같은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분명 정치는 우리의 삶 속에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건이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은 정치적인 가치를 담아낼 의무가 없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영역에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가치를 다룰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물론, 오늘날처럼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돈과 법 아래에서 무자비하게 정렬된 상황에서 예술이 자신의 성역을 보존하고 앞으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사건을 발견해 나갈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예술의 가능성이 정치적 발명을 위해서만 사용될 이유가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 정치와 예술은 더불어 존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정치는 이전보다 더욱 많은 차원에서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문제들이 판단되고 현실화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1978년에 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고령 핵발전소인 고리 1호는 현재 설계수명인 30년을 넘겼다. 그런데 최근 원자력위원회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고리 1호의 가동수명을 10년 연장하는 심의를 새벽에 통과시켰다. 고리 1호의 가동연장은 배의 수명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했던 이명박 정권의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인해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와 같은 궤를 가진다는 점에서 예정된 인재를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고리 1호의 연장가동을 심사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2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삶이 정치의 향방에 얼마나 심각한 수준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지 증명한다. 정치가 우리의 삶이 존립할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면, 예술은 정치적 가치를 예술이기에 가능한 새로움을 통하여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이 정치적 가치에 많은 무게추를 실어버린 상태로 드러나는 것은 예술이기에 가능한 고유성을 결여한 것이므로 굳이 예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회 안에서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경우라면 예술이라는 이름표를 제거하고 사회운동으로 드러나면 될 일이다. 또한, 정치적 가치를 개념적으로만 차용하여 소재화하는 예술은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 유효성을 가지기 어렵다. 이로써 정치적 예술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입장이 나름대로 정리되었다. 이제부터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정치적 예술이라는 틀을 통해서 살펴보고 정치적 예술이 우리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세월호 참사와 에르메스 미술상

나는 장민승 작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장민승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된 계기는 2015년 2월 14일에 세월호 인양촉구 팽목항 범국민대회에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다가 장민승 작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작품으로 에르메스 미술상과 상금을 받았다는 기사를 우연히 읽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날 에르메스 미술상 기사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원래 에르메스 전시를 관람할 생각이 없었으나 세월호와 관련된 작품이 에르메스로부터 상과 상금을 받았다는 소식에 해당 작품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내가 에르메스 미술상 기사를 확인한 다음 날이 전시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에르메스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장민승 작가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들에 대해서 막연한 우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장에 도착하여 장민승 작가의 작품들을 직접 살펴보니 내가 우려했던 지점들이 대부분 해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영상작품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전시장에서 몰입해서 봤던 영상작품은 오인환 작가의 <진짜 사나이>뿐이었다. 그런데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는 오인환 작가의 <진짜 사나이>만큼이나 나에게 강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물론,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는 여러 측면에서 고찰해봐야 할 지점이 있겠지만, 적어도 형식적으로 섬세한 완결성을 이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검은 나무여>의 한 구석에 구멍이 뚫려있다고 느꼈다. 그 구멍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내가 <검은 나무여>를 보면서 느꼈던 만족감은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그 구멍을 통해서 조금씩 유출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본 글을 통해서 <검은 나무여>에서 내가 감지했던 구멍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고민해 볼 것이다. 참고로 나는 장민승 작가의 Voiceless 연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검은 나무여>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글은 Voiceless 연작 전체를 다루지 않고 <검은 나무여>만을 다룰 것이다.

여기를 클릭하면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 3분 티저영상를 볼 수 있습니다. ⓒ 장민승

동아닷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장민승 작가는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속보가 TV에서 흘러나올 때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장민승 작가가 세월호가 참사를 통해서 느꼈던 괴로움과 부끄러움은 세월호 참사를 우리 모두의 비극으로 인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공통된 감정이다. 이승욱(정신분석가, <대한민국 부모>의 저자)은 시사IN에 기고한 글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만난 고향 친구들이 "우리가 공범이다", "우리라고 선장이랑 달랐겠냐", "우리라고 배에 과적하는 것 막고 불법 증축하는 걸 막을 수 있었겠냐"라고 한탄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승욱은 친구들의 이러한 자조 섞인 한탄을 보고 특히 한 가정의 아버지의 경우 부정과 비리에 눈감은 게 자기 한 몸 때문이 아니라 다 자식들을 위해 참은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텐데 그 자식이 죽어버렸으니 가장 핵심적인 알리바이가 처참하게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자식을 키우는 부모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이 후유증은 한국사회가 공공의 가치를 제물 삼아 경제 성장이라는 맹목적인 가치를 쌓아올린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공의 가치를 제물 삼아 쌓아올린 한국 사회라는 금자탑은 무의미한 자기계발에 함몰되어 고립된 개인과 타자와의 유대감이 소멸된 공동체를 양산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에 '세월호 침몰사고 구조현황 동영상'을 미끼로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개인 정보를 유출시키는 범죄가 성행했었다. 또한, 엄마부대봉사단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앞에서 "듣기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지겨운데... 우리가 배 타고 놀러가라고 했어요. 죽으라고 그랬어요. 세월호 참사 문제를 너무 오래 끌었으니까 이제 민생을 살려 달라 이겁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러한 충격적인 예는 한국사회 안에서 개인과 타자간의 유대감이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소멸하였다는 증거 중에 하나다. 한국사회에서 경제성장이라는 맹목적인 가치는 대부분의 경우에 국가차원에서든 개인차원에서든 암묵적으로 동의된 가치다. 이 때문에 공공의 가치가 곳곳에서 구멍 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비극이 갑자기 솟구칠 때, 이 비극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우리 모두의 비극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유가족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최종적인 요구는 정부가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여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세월호 참사로 인한 참담한 감정과 갈등은 정치적인 문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작된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도 정치적 예술의 영역과 관련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장민승 작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경험한 감정은 개인의 영역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를 정치적 예술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나무여>에 정치적인 함의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검은 나무여>가 정치적 예술의 영역과 맞물리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민승 작가의 괴로움과 부끄러움은 개인의 가치관과 정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개인의 가치관과 정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하게 불의의 사고라는 차원으로 봉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불의의 사고라는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인 차원의 문제를 상당히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이기 이전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맥락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내포하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근원적인 이유에는 정부와 각종 이익집단이 공공의 가치를 무분별하게 사익화한 문제들이 누적되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는 해운법을 개정하여 선령제한 20년을 25년에서 30년으로 점차 완화했다. 덕분에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 동안 운항했던 노후선박을 인수하여 세월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투자 막는 나쁜 규제철폐'라는 기치 아래서 선장에게 주어진 안전 관련 부적합 사항 보고 의무와 매년 실시하는 내부 심사를 폐지했다. 선박의 구조와 설비가 기준에 맞는지 점검하는 한국선급은 세월호 증축과 관련된 안전검사를 엉터리로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위원 자격이 안 되는 해양수산부 전직 장차관을 채용하는가 하면, 회장 임금 인상에 임원들이 단체로 나서다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2000여개 여객선사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선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은 여객선의 안전운항관리와 화물 과적, 고박을 점검한다. 그런데 검찰 수사 결과 해운조합 인천항 운항관리실은 세월호가 출항하기 전 안전점검 보고서를 허위로 적은 것을 묵인·조작했다. 해경-한국해양구조협회-언딘의 유착 의혹도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세월호 구난 업체로 선정된 민간구조업체 언딘의 대표 김윤상은 해양 구조협회 부총재다. 2012년에 수난구호법은 정부가 수난구호 민간단체와 협조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명목으로 개정되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해양 구조협회가 설립됐다. 해양 구조협회는 해경의 전 현직 고위직 해경 인사들이 임원으로 있다. 그런데 해경 측이 청해진해운에 공문을 보내 언딘과 계약하라고 한 정황이 나오면서 해경과 언딘 간에 유착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4년 10월 검찰은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특혜를 줌으로써 한시가 급한 구조작업을 지연시킨 최상환 해경 차장 등 본청 간부 세 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기소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을 지휘한 해경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검찰이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가 이번 참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정황만으로도 세월호 참사는 불의의 사고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인 문제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검은 나무여>는 장민승 작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경험한 내적 고통을 일본의 짧은 정형시인 여섯 개의 하이쿠와 수화를 통해서 구성한 흑백영상이다. 나는 <검은 나무여>를 보면서 <검은 나무여>가 하이쿠와 수화를 통하여 감정과 내용을 최대한 절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음에도 그 절제가 언어화할 수 없는 비극과 고통을 역설하는 여백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사자의 고통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온전히 재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민승 작가가 <검은 나무여>에서 선택한 절제된 구성은 제3자일 수밖에 없는 예술가가 세월호 참사와 마주할 때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하여 고심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이 창조하는 어떠한 언어도 세월호 유가족의 비극과 고통을 충분히 담아내거나 넘어선 무엇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검은 나무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백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을 예술가가 자의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수용자 각자가 자신의 의지로 공통의 감정을 발견하는 장을 제시한다. <검은 나무여>의 이러한 방향성은 뒤에 이야기할 <세월오월>의 방향성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그런데 <검은 나무여>의 역설적인 여백은 세월호 참사라는 시의성이 없다면 작동하기 어려운 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검은 나무여>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시의성을 걷어내고 나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던 유효성은 상당 부분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검은 나무여>에 세월호라는 시의성이 빠진다면, <검은 나무여>는 단지 심미성을 추구한 움직임과 영상, 음악이 맞물린 작품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검은 나무여>의 미적 가치는 세월호 참사라는 시의성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점에서도 <검은 나무여>가 최종적으로 정치적인 맥락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장민승 작가는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작품 모티브가 뚜렷이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다. 1000명의 관객이라면 1000개의 이해가, 번역이 있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장민승 작가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검은 나무여>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한다. 때문에 장민승 작가는 <검은 나무여>가 정치적 예술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실제로 <검은 나무여>를 정치적 예술로 국한할 경우 작품의 해석 가능성은 너무나도 협소해진다. 따라서 장민승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열린 해석이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장민승 작가의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을 보도하는 대중 언론들은 <검은 나무여>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작품이라는 단서를 대부분 빼놓지 않고 있으며, 에르메스 미술상 심사위원단도 "사회의 무겁고 비극적인 주제를 섬세하고 감성적인 예술 언어로 표현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훌륭했다"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다. 결국, <검은 나무여>는 장민승 작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월호 참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읽힌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겨레의 보도를 살펴보면 장민승 작가의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과 관련하여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2014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과 상금 2000만 원을 받았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에르메스 미술상이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도록 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검은 나무여>의 미적가치가 미술계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일부 미술계와 대중 언론의 평가에 따르자면 장민승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경험한 내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것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장민승의 <검은 나무여>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비극을 개념적으로만 차용하여 소재화한 예술이라는 혐의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의 미적가치가 예술장 안에서만 작동한다면, 세월호 참사가 내재하고 있는 온갖 정치적인 갈등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서 간단히 봉합되기 때문이다.

▲ 위의 사진은 2015년 3월 14일에 필자가 '세월호 광장 토요 촛불문화제' 관람 도중에 한 무용가의 공연을 촬영한 것이다. 당시 '세월호 광장 토요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예술단체는 한국민족춤협회와 한국민예총이었다.

만약,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가 예술장만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의 곁에서 더불어 있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했거나, 에르메스에서 받은 상금 일부를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를 위한 비용으로 후원했더라면, 사회적 비극을 소재화했다는 오해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실제로 장민승 작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자신의 작품이 맞닿을 수 있도록 노력을 했을 수도 있고 에르메스에서 받은 상금 일부를 세월호 진상규명를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 중에 홍성담 작가의 경우처럼 장민승 작가의 지인이 있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장민승 작가와 관련된 이러한 서사가 <검은 나무여>의 전후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중매체가 에르메스 미술상을 다루는 보도에서 그러한 서사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중매체는 그러한 이야기보다 에르메스가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는 정보나 장민승 작가가 영화감독 장선우 씨의 외아들이라는 정보를 부각했다. 미술 전문잡지 월간미술이나 아트인컬쳐를 살펴봐도 에르메스 미술상과 관련하여 대중 언론이 보여준 방향성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월간미술 3월호의 경우 장민승 작가의 수상과 관련하여 '예술언어로 아픔을 치유하다'라는 제목이 명시되어 있지만, 기사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심사위원단의 평문인 '사회의 무겁고 비극적인 주제'로 대신했다. 아트인컬쳐 3월호는 '에르메스 메세나, 올봄 미술계를 꽃피우다'라는 제목으로 장민승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전했으나 작품 비평보다는 에르메스의 메세나 활동을 홍보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만약 장민승 작가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자신의 작품이 맞닿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 이러한 이야기가 에르메스 미술상 측에서든 대중매체에서든 공식화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예술장 바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장과 예술가가 세월호와 관련된 담론을 소재화한다고 오해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 예술장 내부에서도 이러한 맥락이 공식적으로 논의될 수 있어야 예술이 사회와 더불어 공존할 가능성을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단지 대중매체에 보도되고 기업이 주는 미술상을 받았다고 예술이 사회와 더불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문화행사가 종종 열린다. 이러한 문화행사는 일반적으로 민예총류의 정형화된 공연과 낭독회가 주를 이룬다. 나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세월호와 관련된 문화행사를 볼 때마다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 같은 작품이 전시장을 벗어나 세월호와 관련된 문화행사장에서 장대하게 상영되는 것을 상상해본다.

2014 광주비엔날레와 세월오월

홍성담 작가와 시각매체 연구회가 주필과 보필을 맡고 광주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팽목항에서 씻김굿까지 치른 후에야 탄생한 <세월오월>은 안타깝게도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작품이다. <세월오월>은 2014년 광주비엔날레의 광주정신 특별전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의 사전검열로 전시되지 못했기 때문에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세월오월>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세월오월>이 현직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대중매체에 많이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언론이 <세월오월>의 전체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 허수아비로 풍자된 부분만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때문에 <세월오월>의 전체 모습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다. 당시 <세월오월>의 전체 모습을 실었던 대중 언론은 시사IN과 한국일보 외에 없었던 것 같다. <세월오월>이 2014 광주비엔날레에서 파문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모두 알다시피 <세월오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울고 있는 허수아비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세월오월>은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정신 특별전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다. 여기서 광주정신 특별전과 광주비엔날레의 관계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 카페에 출연한 홍성담 작가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홍성담의 진술에 따르면, 광주정신 특별전은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기념하고 광주 민주화 항쟁의 정신을 문화적 가치를 통해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출범한 광주비엔날레가 본래의 지향점을 잃어버리고 광주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왔다는 여론을 반영하기 위해서 본 전시와는 별도로 기획된 것이다. 광주정신 특별전 참여제의에 소극적이었던 홍성담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서야 광주정신 특별전에 참여를 결심했고 진도로 내려가 며칠간 모든 상황을 직접 지켜봤다고 한다. 특히나 홍성담 작가의 경우에는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서 세월호를 탑승했다가 주검이 되어 돌아온 학생 중의 한 명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세월오월>의 전체 모습. 위의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홍성담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했다는 이유로 큰 파문을 일으킨 <세월오월>의 전시를 막아선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은 윤장현 광주 시장이다. 홍성담과 함께 광주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던 윤장현 시장은 <세월오월> 사건이 터지자 창작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시 예산이 들어간 비엔날레 특별전에 정치적 성격의 그림이 걸리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광주시도 국비를 받아 기획한 행사일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인 시립미술관에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을 걸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세월오월> 같은 풍자예술은 그 함의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공적인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공권력이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2014년 10월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광주시가 광주비엔날레 재단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김재연 전 의원이 공개한 공문은 <세월오월>의 일부 내용이 기존의 사업계획과 취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세월오월> 전시 철회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시 교부금을 회수하겠다는 협박성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리하면, 국가기관이 현직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을 사전검열을 하여 전시불가 판정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광주비엔날레 교부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측이 이에 순응한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 아닐 수 없다. 헌법 제22조 1항의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광주비엔날레에서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이처럼 사태가 심화되자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와 윤범모 광주정신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했다. 광주정신 특별전 '달콤한 이슬 : 1980년 그 후'에 참여한 한국 작가 17명 중 11명은 <세월오월>을 걸지 않으면 작품을 철수하겠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발표했다. 당시 탄원서 발표에는 오키나와 작가 2명, 케테 콜비츠의 판화 41점을 특별전에 빌려준 오키나와의 사키마미술관 관장도 동참했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의 작품이 사실상 국가기관으로부터 사전검열을 당했음에도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중에 광주정신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들처럼 공식적인 문제를 제기했다는 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 정말로 본전시에 관련된 작가들이 광주시 측에 공식적으로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본전시에 참여한 큐레이터와 작가들은 국가기관이 작품을 사전검열 하는 것에 대해서 순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일까? 나는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한국작가들이 탄원서에 동참한 일본 예술기관과 작가들보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예술가가 권위주의와 폐습에 순종하며 최소한의 자율성과 자존심을 포기한다면, 우리의 삶에는 무의미한 권위와 자본에 예속된 예술만이 남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광주정신특별전을 보이콧한 예술인 박대성, 주재환, 윤광조, 오원배, 강요배, 최병수, 정영창, 홍성민, 이윤엽, 이세현, 임흥순, 사키마미치오(사키마미술관장), 히가토요미츠, 킨조미노루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홍성담 작가 입장에서 <세월오월>에 관한 해석 가능성이 정치적인 문제만으로 휩쓸려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홍성담 작가는 <세월오월>이 현대사의 아픔을, 상처투성이인 사람이 또 다른 상처 입은 이를 치유하는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담은 그림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천왕의 형상으로 전두환과 3S정책을 밟아버린 시민군의 발 왼쪽에는 세월호 참사의 논란이 초점이 되었던 진도 관제탑이 보이고 육지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면 해남지역의 두륜산 밑에 위치한 대흥사가 그려져 있다.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산포와 월출산, 무등산이 그려졌다. 오른쪽 공간에 따로 그린 무등산에는 조선대학과 광주도청이 그려져 있다. 4천왕의 형상을 한 시민군과 주먹밥이 든 바구니를 든 여인은 세월호를 들어올려 아이들과 승객들을 가족 품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세월오월>은 일본의 제국주의, 물고문 당하는 청년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듯한 삼성 이건희 회장, 댓글조작을 일삼는 국정원과 군인, 김정은을 불태우는 보수단체 할아버지들, 허수아비 박근혜를 조종하는 박정희와 김기춘, 4대강을 헤엄치는 이명박 로봇물고기, 노란색 우비를 입고 촛불집회를 하는 시민처럼 한국 현대사의 갖은 굴곡을 한 화면에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세월오월>에 관련하여 논란이 된 부분은 <세월오월> 전체를 두고 벌어진 일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했다는 지점만 확대 재생산되어 벌어진 일이다. 이는 <세월오월>을 통해서 현대사의 아픔과 아이러니를 이야기 하려고 했던 홍성담 작가의 본래의 뜻에서 꽤 벗어나 버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홍성담 작가는 대중언론을 통해 <세월오월>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5·18 광주정신으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 홍성담 작가가 말하는 광주정신이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정신이다. 홍성담 작가가 세월호 참사와 5·18 광주 학살을 직결시킨 것은 두 사건이 국가폭력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오월>은 한국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담아내는 거시적인 해석으로 우선 읽히기 어렵다. 그보다는 세월호 참사와 5·18 광주 학살의 동일시가 먼저 읽힐 수밖에 없다. 또한, <세월오월>에서 부러진 소총을 목발삼아 허수아비 노릇에 눈물을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구하고자 하는 시민군도 그 강렬함 때문에 거시적인 해석보다 5·18 광주 학살과 세월호 참사의 연결성을 먼저 읽게 하는 요소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5·18 광주 학살이 국가폭력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직결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 세월호 참사는 민관 유착으로 인한 비리와 참사에 대한 정부의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사고대응으로 점철된 국가폭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5·18 광주 학살이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5·18 광주 학살이 국가폭력이라는 지점에서 결합하여 파급력을 가질 경우에 오히려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동력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역사를 폄하하고 훼손하기 위해서 기회를 노리는 많은 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은 한국사회에서 심리적으로 아직 정당하게 역사화되지 못 했다. 세월호 참사도 선주와 선장만큼 책임을 물어야 할 대표자들이 발뺌과 방해를 일삼고 있다. 세월호 인양은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를 위한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세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세월호 인양을 하지 않는 방향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정무특보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세월호 조사특위를 구상하는 분이 공직자가 아니라 세금 도둑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재원 의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15년 3월호 신동아에서 "불행한 사건에 개입해 나라 예산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거 아닌가"라며 "호의호식하려고 모인 탐욕의 결정체로 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의 구성원들 중에서 이러한 발언과 동일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상당히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 만큼이나 가치판단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장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광주 민주화 항쟁을 국가폭력이라는 범주로 직결시키는 것은 예술, 학술차원에서 분명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한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오히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동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와 광주 민주화 항쟁과의 직결을 그들의 비윤리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기 위한 핑계로 이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홍성담 작가가 예술가로서 <세월오월>이 한국 사회에 심리적, 정치적 부분에 미친 파급력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다. 왜냐하면, <세월오월>은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공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월오월>에는 허수아비 박근혜나 소장 계급의 군복을 입은 박정희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터뜨릴 뇌관이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세월오월>에 심어진 뇌관이 터지며 한국 사회의 곪아 있던 환부를 터뜨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홍성담 작가가 <세월오월>이 한국사회의 은폐된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도를 품고 창작에 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오월>은 미적인 차원을 넘어서 한국 사회와 정치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쳤다. 그렇다면, 홍성담 작가는 이 파급력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동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하여 사전에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물론, <세월오월>의 미적인 파급력은 한국사회에서 장기간 지속성을 유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와 5·18 광주 학살의 직결로 말미암은 부정적인 사회적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간베스트 같은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세월호 유족과 광주지역을 묶어서 비윤리적인 발언을 일삼는 게시물들이 종종 올라오지만, 이러한 현상은 홍성담의 <세월오월> 때문에 생긴 현상은 아니다.

▲ 활동가 둥글이 님의 '그네바보' 낙서

▲ 2014 세월호 연장전 <박근혜 시 진달래 낭독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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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급된 내용만을 종합해도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은 정치적인 예술이라고 해석될 만한 지점들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세월오월>의 정치적인 예술성은 한국 사회 안에서 충분한 유효성을 발휘했다. 이러한 유효성이 가능한 이유는 <세월오월> 창작이 삶과 예술, 정치가 서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세월오월>은 단순히 정치인을 풍자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예술이 아니다. <세월오월>은 우리의 삶과 왜곡된 정치가 충돌하는 사이 공간에서 왜곡된 정치의 환부를 미적인 가치를 통해서 드러냈기 때문에 정치적인 예술인 것이다. 나는 종종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행동을 목격한다. 예를 들어, 둥글이라는 이름의 활동가가 콘크리트로 된 다리 벽에 '그네바보'라고 커다랗게 쓴 사진과 2014년 세월호 연장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진달래꽃> 퍼포먼스를 떠올려보자. <진달래꽃> 퍼포먼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인쇄된 커다란 가면을 착용하고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을 패러디하여 낭독하는 퍼포먼스였다. 활동가 둥글이의 대형낙서와 <진달래꽃> 퍼포먼스처럼 원색적인 조롱과 비난을 통해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여전히 권위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대표자들에 대한 비판으로서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조롱과 비난이 생산적인 비판의 지점까지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구심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식의 조롱과 비난은 어버이연합이 자주 하는 극단적인 수준의 퍼포먼스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작동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사회의 중장년층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러한 시간성만으로도 한국사회의 중장년층은 박근혜 대통령의 삶과 자신의 삶을 종종 동일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2년 대선후보 3자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려 나왔다" 같은 다소 거친 발언을 내뱉었다. 박근혜 후보를 거친 발언으로 압박하는 이정희 후보의 태도는 중장년층에게 강한 거부감을 일으켰고 보수층과 중도층이 결집하여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조롱과 비난을 통해서 소년만화처럼 피아를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는 헛된 욕망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관이 전략적으로 공존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마치며

예술은 예술 외부와 맞닿는 지점에서 우리의 삶이 직면한 문제를 예술이기에 가능한 방식으로 증언할 수 있다. 특히, 정치적인 예술은 위급하고 고통스러운 삶 곁에서 더불어 존재할 수 있을 때 좀 더 진한 유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정치적인 예술이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정당하게 존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정치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술에 특정한 잣대를 부여하는 것은 전체주의 가치관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시스템과 완벽하게 차단된 예술이 아닌 이상 예술의 순수한 비정치성은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돈과 법의 막강한 힘을 통해서 삶의 모든 가치가 잠식된 상황에서 정치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태도들이 오히려 정치적인 태도로 읽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용익 작가는 그의 저서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에서 "작가로 활동하려 하는데 아무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기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그것은 그 자체가 그대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예술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방식으로든지 정치적인 것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예술은 종종 정부의 보조금이나 대기업의 후원을 통해서 추진된다. 물론, 예술장을 구성하는 전반적인 환경을 고려하면, 모든 예술가가 정부 보조금과 기업의 후원을 통해서 창작활동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그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가는 소수일 뿐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정부 보조금과 기업의 후원에 관하여 얼마나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그 수치는 꽤 높게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2012년 문광부의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무엇보다 '예술가(예술단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34.7%)과, '예술가(예술단체) 지원을 위한 법률과 제도 정비'(24.8%)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안에서 예술이 무조건적으로 순수한 비정치성을 주장한다면 그러한 주장은 현실을 은폐하는 태도일 뿐이다.

나는 장민승 작가의 <검은 나무여>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이 정치적인 예술이라는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은 나무여>와 <세월오월>의 방향성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매우 다르다. 나는 그중에서도 이 두 작품의 방향성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가 두 작품이 위급하고 고통스러운 삶 곁에서 얼마만큼 더불어 있었는가라고 생각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은 창작 동기와 제작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위급하고 고통스러운 삶과 밀착되어 있음을 <세월오월>이나 홍성담 작가의 진술을 통해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검은 나무여>는 장민승 작가가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속보를 보면서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정도의 단서만 확인 가능하다. 또한, 홍성담 작가는 <세월오월>의 창작의도를 창작자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명시했지만, 장민승 작가는 작품의 의도가 뚜렷이 알려지길 바라지 않으며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존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물론, 작가가 작품의 창작의도를 액면 그대로 명시하는 것은 작품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방해한다. 나도 작가가 작품의 의도를 구구절절하게 명시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비극을 다룸에 있어서 창작의도를 명확히 하고 그 비극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정치적인 예술이 우리의 삶과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적인 예술이 우리의 삶 속에서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을 때 예술도 이와 더불어 스스로 존립할 내적 근거를 확장하고 유지할 수 있다. 정지우는 『분노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 속에 '사회 전체'와 동시에 '내 삶의 전체'가 담겨있다. (...) 삶은 늘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그 삶이 곧 이 사회가 된다.

정지우의 글에서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예술로도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예술도 '내가 살아가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늘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그런 점에서 예술이 곧 이 사회가 될 수 있다. 예술은 우리의 삶에서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특히나 정치적인 예술은 우리의 삶과 더욱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예술은 천박하게 퇴락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가 총체적인 삶을 재구성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을 정치적 예술을 통해서 보존해야 한다. 예술이 정치적 예술을 유효하게 품어내지 못한다면, 예술은 제어장치가 고장 난 자본주의가 흘리는 부산물을 하나라도 그러모으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에 홀린 초라한 속물이 될 것이다.

* 본글은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문화예술인 세월호 연장전>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토론마당 '[청년예술] 사회변화를 위한 예술운동의 새로운 방향 설정'을 위한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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