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홍준표 지사의 계산착오

부유층은 홍 지사의 결정을 지지할 테지만, 그 지지는 미온적인 것에 그칠 것이 분명합니다. 빈곤층이 지지를 보내지 않고 중산층도 등을 돌린다면 홍 지사의 정치적 입지는 결코 강화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홍 지사가 계산착오를 했다고 보는 근거입니다. 그가 말하는 무차별적 복지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보수진영의 대표주자로 부상하고 싶은 꿈이 있었겠지만, 그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늘 주장하는 바지만,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 먹이는 걸 갖고 '꼬장' 좀 그만 부렸으면 좋겠습니다. 재벌 아이에게도 공짜 점심을 먹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재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면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닙니까?

  • 이준구
  • 입력 2015.04.04 10:03
  • 수정 2015.06.04 14:12
ⓒ한겨레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이 현지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입니다.

교사들이 항의단식을 하고 학부모들이 손수 점심을 만들어 먹이는 모습을 보고 문득 '평지풍파'라는 말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무상급식에 반대하다가 마치 보수이념의 순교자인 양 서울시장직에서 떠밀려나간 오세훈씨 생각도 났습니다.

홍준표 지사가 대권 꿈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나로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번 무상급식 중단 결정이 그 꿈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는 더더구나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한데, 그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을 보수이념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키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홍 지사의 그와 같은 계산은 크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가 마치 혜성처럼 보수진영의 대표주자로 떠오를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아 보이니 말입니다.

오세훈 시장의 전철을 밟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하여튼 그가 회심의 승부수라고 던진 돌이 패착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지만, 보수 정치인들은 낭비적인 복지정책을 공격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 듭니다.

세금 내기 싫어하는 일반 대중에게 너무나 잘 먹혀들어가는 프로파간다이기 때문이지요.

복지정책 때문에 내가 낸 세금이 줄줄 샌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있나요?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기 위해 보수 정치인은 과장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76년 레이건(Ronald Reagan)이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큰 파문을 일으킨 소위 "복지여왕"(welfare queen)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정도로 복지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레이건의 공격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레이건이 묘사한 복지여왕의 실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는 80개의 (가짜) 이름을 갖고 있으며, 30개의 (가짜) 주소, 그리고 12개의 (가짜) 사회보장 카드를 갖고 있다.

또한 그녀는 죽었다고 하는 4명의 가공의 남편과 관련해 보훈연금까지 받고 있다.

그녀는 메디케이드(Medicaid)와 푸드스탬프(Food Stamp) 혜택을 받고 있으며, 각기 다른 이름으로 중복해서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그녀는 연간 현금소득은 15만 달러에 이르지만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

레이건이 그 말을 했을 때 이 복지여왕은 시카고 부근에 사는 한 여성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조사 결과 그것은 순전히 가공의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레이건이 보수파의 결집을 위해 그런 엉터리 이야기를 꾸며냈던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레이건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 정치사에서 화려한 보수시대의 첫 막을 열었습니다.

홍 지사의 도박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어린이들이 먹는 점심이 레이건과 같은 프로파간다의 소재가 결코 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 소요예산 규모가 무상보육의 1/3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데다가, 그 예산이 막대한 규모로 낭비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보수진영이 무상급식을 까내리느라 혈안이 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예산이 대규모로 낭비된다는 주장은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홍 지사가 내건 '선별적 복지'는 레이건의 복지여왕 같은 폭발력을 가진 프로파간다가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상급식에 쓸 돈을 가난한 계층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데 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가난한 계층이 홍 지사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내가 전에 지적한 바 있지만 무상급식의 폐지는 어중간하게 가난한 중산층에게 큰 생계비 부담을 안기게 될 것입니다.

지금 현지에서 무상급식 폐지에 항의하는 대열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 바로 이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부유층은 홍 지사의 결정을 지지할 테지만, 그 지지는 미온적인 것에 그칠 것이 분명합니다

빈곤층이 지지를 보내지 않고 중산층도 등을 돌린다면 홍 지사의 정치적 입지는 결코 강화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홍 지사가 계산착오를 했다고 보는 근거입니다.

그가 말하는 무차별적 복지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보수진영의 대표주자로 부상하고 싶은 꿈이 있었겠지만, 그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늘 주장하는 바지만,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 먹이는 걸 갖고 '꼬장' 좀 그만 부렸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나게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낭비되는 돈도 아닌데 뭐 하려고 그런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벌 아이에게도 공짜 점심을 먹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재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면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닙니까?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무상급식 #홍준표 #정치 #사회 #이준구 #복지여왕 #레이건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