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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사칙연산 31 | 뒤집기 한판

작년 연말 노홍철은 음주운전으로 인해 <무한도전>에서 하차했다. 분명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멤버를 구하는 것 자체를 특집으로 만들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영화 <킹스맨>을 패러디한 <식스맨> 특집은 새 멤버 후보들의 섭외부터 면접, 그리고 최종 선정까지를 쇼로 만들어 웃음을 준다. 멤버가 불미스런 일로 하차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인데도 무슨 큰 잔치 같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들 한다. 그 말을 주워섬기기보단 이처럼 위기를 기회로 뒤집어 보인 멋진 실제 사례들을 발견하는 편이 더 와닿는다. 악재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왕 악재가 생겼다면 그것을 어떻게 뒤집어 놓을지를 연구해 보자.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 이옥선
  • 입력 2015.04.04 08:52
  • 수정 2015.06.04 14:12
ⓒOSEN/MBC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된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래퍼 제시는 첫 미션에서 가장 낮은 투표를 받고 촬영장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돌아온 2회. 빙 둘러앉아 다음 미션을 기다리던 래퍼들 사이에서 갑자기 제시가 손을 들고 말한다. "저 잠깐 할 얘기 있어요." 그러더니 일어나 화를 내기 시작한다. 1회에서 최저점을 받은 게 10년 동안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분 나쁜 일이었다고. ("니네들이 뭔데 나를 판단해?") 이 바람에 촬영장 분위기는 완전히 얼어붙었는데, 제시는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속도를 붙이며 화를 더 격하게 쏟아낸다. 그러다가 놀랍게도 점점 그것은 랩이 되기 시작한다. ("내 안의 화를 태워서 분위기를 태워!") 누구도 예상 못한 무반주 돌발 랩이 한바탕 끝나자 래퍼들과 시청자는 무언가 대단한 걸 보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메타텍스트, 아니 메타-랩이라고 해야 하나? (래퍼 육지담: "우린 지금 미션 준비하면서 랩 시키니까 하는 건데 제시 언니는 자기가 랩을 했어요.") 어디까지가 프로그램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짜 상황인가? 이후 이 사건은 육지담의 랩에서 따온 "제시가 문제를 제시"로 명명되고 <언프리티 랩스타> 최고의 장면 중 하나가 되었으며 "윌나러틤, 디스이저캄픠틔션 We're not a team, this is a competition."라는 말은 유행어가 되기까지 했다. 1회에서 최하위 래퍼로 뽑혔던 제시가 단박에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육지담은 작년에 방송된 <쇼미더머니3>의 희생양이었다. "나는 비트와 밀당을 하는 힙합 밀당녀!"라는 랩으로 숱한 놀림을 받았고 "내 이름이 뭐라구?"라고 외치며 마이크를 청중에게 넘겼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너도 나도 민망해진 장면은 수도 없이 리플레이 되었다. 육지담은 '랩을 잘 쓰지도, 하지도 못하는 일진설 나도는 여고생'으로 낙인 찍힌 채 프로그램은 끝나버렸다. 힙합계 공인 웃음거리였던 육지담이 <언프리티 랩스타>에 다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힙합 밀당녀가 또 어떤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일까, 놀릴 준비를 하고서. 그런데 말이다, 육지담은 당당히 1번 트랙의 래퍼로 선발되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대단한 파워와 완성도 있는 랩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5회에서는 자신의 굴욕 스토리를 스스로 갖고 놀면서 ("I say 지담 You say 밀당!"이 나왔을 때 나는 방송 보다가 박수를 쳤다.) "내 이름이 뭐라구?"를 다시 외치기까지 했다. (청중의 반응은? "육지다아암!!"이었다!) 미운 오리새끼가 조금씩 날개를 펴는 모습을 지켜보는 흐뭇함이랄까. 육지담은 <쇼미더머니3>를 오히려 지렛대 삼아 멀리 날아올랐다.

지난 3월 2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음란정보를 유통했다며 웹툰 플랫폼 사이트인 레진코믹스를 일방적으로 차단했다. 그랬다가 몇 시간 후 음란성 없는 웹툰도 레진코믹스에서 많이 유통되므로 사이트 전체 차단은 문제라고 판단한다며 방심위 스스로 차단을 풀었다. 이 괴이한 해프닝으로 인해 유해 사이트라는 오명이 생기고 사용자들에게도 큰 불편을 끼치게 된 레진코믹스는, 도리어 발 빠르게 이 사건을 홍보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이 기가 막히다.

창사 이래 최초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에 감사한다며 코인 세일 이벤트를 여는가 하면,

그걸 또 굳이 유해 사이트 차단 안내 페이지를 패러디해 디자인하는 센스까지.

나는 이 사건 이후 레진코믹스의 대응을 보고 그들의 팬이 되어버렸다. SNS 상의 폭발적 반응으로 보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2009년 <무한도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과 방송을 한 바 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 사과 방송은 비틀스의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개사한 '미안하디 미안하다'라는 노래를 여섯 멤버가 부르는 형식이었다. 단발머리 가발을 쓰고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면서. 당시 무한도전에 관련한 몇 가지 논란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하나하나에 대해 노래 가사로 조목조목 사과했다. 이 유쾌하고 흥겨운 사과 방송은 무한도전에 강력하게 항의하던 사람마저 피식 웃어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격렬한 논조로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이 방송 직후 "아 정말 두 손 들게 만드네"라며 일제히 칭찬 모드로 돌아서는 걸 본 기억이 난다.

작년 연말 노홍철은 음주운전으로 인해 <무한도전>에서 하차했다. 팀 안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점하고 있던 노홍철이 빠지자 공백이 컸다. 분명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멤버를 구하는 것 자체를 특집으로 만들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영화 <킹스맨>을 패러디한 <식스맨> 특집은 새 멤버 후보들의 섭외부터 면접, 그리고 최종 선정까지를 쇼로 만들어 웃음을 준다. 멤버가 불미스런 일로 하차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인데도 무슨 큰 잔치 같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들 한다. 그 말을 주워섬기기보단 이처럼 위기를 기회로 뒤집어 보인 멋진 실제 사례들을 발견하는 편이 더 와닿는다. 악재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왕 악재가 생겼다면 그것을 어떻게 뒤집어 놓을지를 연구해 보자.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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