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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인생이 아니라, 그냥 인생

누군가는 이것을 가리켜 '희망 고문'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미 실패했던 사람들이 다시 비상하는 것은 처음보다 몇 배, 몇 십 배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틀린 말도 아니다. 허나 '미련'이란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원더스는 그냥 '희망 고문'만을 주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죽기 살기로 뛰었으며 23명이 프로 구단에 입단했다. 모든 사람이 가지는 못했다. 프로 구단에 입단한 선수들은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그들의 구호를 증명했다. 그러나 입단을 하지 못한 선수라고 해서 원더스 생활이 의미 없는 것이었을까?

  • 허경
  • 입력 2015.04.06 07:28
  • 수정 2015.06.06 14:12
ⓒ오퍼스픽쳐스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거 아니면 저거로 이야기 하라고 묻는다면, '싫다'고 말할 것 같다. 스포츠 전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스포츠는 농구다. 농구가 좋은 이유는 일단 시간이 정해져 있다. 룰이 단순하다. 뭔가 플레이어 단독적으로 멋이 있을 수 있다. 팀이 멍청해도 영웅이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는 점 등이다.

야구는 이와 정 반대다. 룰이 이것저것 엄청나게 많다. 팀이 안 받쳐주면 아무리 날고 기는 누가 와도 그냥 망한다.(애초에 그런 사람이 망한 팀에 가는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나도 안다. 야구 팬들이 '야구가 재미있는 이유'로 드는 점들이 정확히 내가 싫어하는 점들이라는 걸. 그래서 나도 야구 열기가 너무너무 폭발적이라 안 보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분위기마저 있었던 어느 시기에, 즐겨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물론 내 출생지가 충남이라 한화 경기를 봤다는 것에 연원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파울볼>을 무척 재미있게 봤다. 이 영화는 야구 영화이지만 야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울볼>은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이야기다. 3년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엮어냈다. 그냥 독립야구단이었으면 3년이나 버텼을지도 의문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야구 문외한인 나도 아는 김성근 감독이 있다. 야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살았든 죽었든 한국에서 '신'이라는 칭호가 붙는 인물을 나는 딱 두 명 안다. 다른 한 명은 박... 아니다. 넘어가자.) 그가 팀에 합류하면서 꽤 화제가 되었다. 나는 일산에 살고 있음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 봤자 야구.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김감독은 선수들에게 말하면서 '선수 생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양 원더스에 몸담는 모두에게 한 번도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개개인의 절실함을 묵묵히 지켜보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에서 그가 말하듯 '야구'는 그냥 야구가 아니라 누누이 이야기하듯 '야구 인생'임을 느낀다.

그렇듯, 이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김감독은 '너희들은 낭떠러지에 서있는 거다.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고양 원더스는 프로에 지명되지 못했거나, 생활을 하다가 방출 되었거나 하는, 일단의 '루저'들이 모인 구단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루저'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게 원더스의 출발점이다. 루저들이 모여서 다시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는 것. '옛날에 야구했었다'가 아니라 '지금도 야구를 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멋있게 야구할 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들에게 원더스는 단순한 구단이라기 보단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을 곳이었다. "열정에게 기회를" 그것이 이 야구단의 구호였다.

누군가는 이것을 가리켜 '희망 고문'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미 실패했던 사람들이 다시 비상하는 것은 처음보다 몇 배, 몇 십 배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틀린 말도 아니다. 허나 '미련'이란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원더스는 그냥 '희망 고문'만을 주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죽기 살기로 뛰었으며 23명이 프로 구단에 입단했다. 모든 사람이 가지는 못했다. 프로 구단에 입단한 선수들은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그들의 구호를 증명했다. 그러나 입단을 하지 못한 선수라고 해서 원더스 생활이 의미 없는 것이었을까?

무엇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다. 관계도 삶도 이걸 쓰고 있는 내 고물 노트북이든 뭐든 하여튼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것이다. 원더스의 급작스러운 끝에서, 씁쓸한 뒷맛은 남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운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조차 할 수 있는 만큼을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다른 삶을 택해야 할 것이고, 최선을 다 했다면 최소한 미련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야구를 하느냐 마느냐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 닿는다. 김성근 감독은 해단 이후 감독실에서 선수들을 바라보고 마지막 퇴근을 한다. "애들 안보시고 가세요?"라고 말하는 영화의 감독에게, 그는 "여기서 봤잖아" 라고 대꾸한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이었고,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며 해야 할 일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던 선수들과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거리를 두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감독과의 이 극명한 대비는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살아가는데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순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들이 얻었을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다.

<파울볼>은 아쉬운 지점도 있는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감독이 원더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바는 잘 표현되고 있는 것 같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뻔한 말이지만, 이 경우만큼 잘 어울리는 격언은 또 없을 것이다. 버릴 수 없다면,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보는 것이 남은 생 내내 그것에 사로잡혀 괴로워하지 않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p.s :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의 '절룩거리네'가 흐른다. 그런데 크레딧 상에는 '달빛요정 만루홈런'이라고 표기 되어있다. '역전'이 빠져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전'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일 텐데. 실수겠지만 좀 크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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