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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외로워서 그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딴지일보의 편집장 너부리가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다 외로워서 그래"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심히 공감했지만, <폭스 캐처>를 보고나서 또 한 번 'ㅇㅇ 진리임'을 또 한 번 공감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이 '외로움'이라는 것과 싸우거나, 부정하려 몸부림치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것 아닐까? 슬프지도, 씁쓸하지도 않았다. 뭐. 어쩔 수 있나. 하는 생각만 들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 허경
  • 입력 2015.04.08 12:12
  • 수정 2015.06.08 14:12
ⓒ그린나래미디어

<폭스 캐처>는 지금도 잘 알려진 화학기업이자 방산기업 DUPONT의 재벌이었던 존 E. 듀폰이 본인이 후원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총으로 쏴 사망케 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이렇다 할 결론 없이 큰 감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캐릭터를 응시하는 카메라는 오히려 그들의 얼굴보다 그들 사이의 공간을 더 깊게 보여준다.

(미리 언급하지만 실화사건이므로, 스포일러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쓰겠다.) 영화는 존 '골든 이글' 듀폰(스티브 카렐)이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을 만나고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는 마크 슐츠를 부르고선 그의 형을 쏴 죽였을까? 그리고 애초에, 부족함 없을 것 같이 보이는 대재벌이 하필이면 레슬링에 꽂혀 이런 사단을 내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간단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마크 슐츠는, 함께 금메달을 땄던 형 데이브와 함께 훈련에 매진하며 지낸다. 하지만 그에 따른 국가의 지원 및 보상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우직함 하나로 거기까지 간 만큼, 80%의 훈련과 20%의 생활을 유지하며 별 생각 없이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 그러던 그 앞에, 존 듀폰이 나타난다. 그는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화려하게 떠오르는 미국을 다시 보고 싶다고 운을 뗀 그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한다. 융숭한 대접에 감동한 마크는 그가 마련한 것들에 감동하며, 연습을 해 나간다. 그리고 존과의 관계는 점점 더 돈독해진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까워 진 만큼, 틀어지는 것은 순식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틀어진 둘. 존은 전부터 합류를 원했던 마크의 형을 기어코 불러내고 만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객관적이면서도, 이에 따른 것들이 결론에 도착하기까지를 최대한 사려 깊게 그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적 해소의 순간은 없다. 이 이야기는 부... 아니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 보다는, 조금씩 쌓아나가 관객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쪽을 택했다. 마크 슐츠와 동성애적 뉘앙스(그냥 '브로맨스'라고 하긴 좀 더 가까운, '유사 아버지'라고 부르기엔 너무 덜 익은)나 듀폰의 성장 환경에 관한 힌트가 조금씩 주어지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살해의 이유로 명확히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은 영화 전반에 걸쳐 마크와 듀폰에게 거대하게 드리워져 있는 '외로움'이다. 이들은 함께 레스링 세계 재패를 꿈꾸며 친해진다. 그리고 단순히 코치-선수 관계라고만 보기 어려울 수준으로 '베프'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관계가 된다. 마크는 형과 함께였지만,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형에게서 자신도 몰랐던 소외감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인간적인 끌림에 앞서 같은 어둠에 동기화 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기대지만, 반면 자신이 가진 외로움의 크기를 새삼 깨닫는다. '유일한 친구'라고 말하며 함께 하지만, 방향이 다른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사랑받아 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이 둘은 서로 존중한다고 믿었지만, 결국 채우지 못한 것을 다른 곳에서 채우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이야기의 끝에 죽은 것은 엉뚱하게도 데이브다.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존이 쏴야 할 것은 마크였을테지만, 사이가 어떻든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인지는 과녁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화는, 행복한 자에게로 향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딴지일보의 편집장 너부리가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다 외로워서 그래"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심히 공감했지만, <폭스 캐처>를 보고나서 또 한 번 'ㅇㅇ 진리임'을 또 한 번 공감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이 '외로움'이라는 것과 싸우거나, 부정하려 몸부림치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것 아닐까? 슬프지도, 씁쓸하지도 않았다. 뭐. 어쩔 수 있나. 하는 생각만 들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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