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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잘못된 반성

정 전 의원의 발언 안에는 적확한 인식도 있고, 옳은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에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먼저 "참여정부 시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잘리고 죽었고 비정규직이 됐다"는 발언에 대해 평가해 보자. 정 전 의원의 발언이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표피적 현상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 이태경
  • 입력 2015.04.02 12:24
  • 수정 2015.06.02 14:12
ⓒ연합뉴스

반성은 좋은 것이다. 반성이 있어야 잘못을 고칠 수 있다. 반성이 없으면 변화도, 개선도 없다. 단 전제가 있다. 반성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다. 그릇된 반성이 올바른 변화와 개선을 이끌 수는 없는 법이다. 당연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늘어놓은 건 정동영 전 의원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모임 정동영 전 의원이 31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향해 한 말 때문이다.

31일 정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정 전 의원이 한 발언들은 아래와 같다.

여야 통틀어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쓰고 정치한 사람으로는 제가 유일하다", "야당이 정권교체 하겠다는 건 이명박, 박근혜와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임에도 문재인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에 국민이 동의하지 않고 있다. 반성문을 내놔야 한다", "참여정부 시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잘리고 죽었고 비정규직이 됐다", "부동산 폭등으로 중하층의 재산가치가 하락하고 중상층은 더 부자가 돼 양극화가 심화됐다", "먼저 그 분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다른 세상을 말할 수 있는데 중도화, 보수화를 말하고 있다", "(새정연은) 전두환 시절 민한당 이후 처음으로 (여당의) 2중대 소리를 듣는 유일한 당인데 정권교체가 된다고 보는 것인가", "노무현이 정몽준과의 단일화가 깨진 상황에서 이회창을 누를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세상 달라지겠네 하는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훌륭한 대통령이었으나 세상을 바꾸진 못했고, 거기에 대해 반성문이 필요한 것", "저는 저 스스로가, 대선 나섰던 사람으로 책임을 자인하고 반성문을 썼고, 그 연장선상에서 국민모임에 참여했고, 관악에 출마한 것"

(정동영 "참여정부서 양극화 심화...文 사과부터 하라")

정 전 의원의 발언 안에는 적확한 인식도 있고, 옳은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에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먼저 "참여정부 시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잘리고 죽었고 비정규직이 됐다"는 발언에 대해 평가해 보자. 정 전 의원의 발언이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표피적 현상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참여정부 시기의 노동시장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근본적으로 규정받고 있었다. 하나는 80년대 이후 전 세계를 석권하던 노동시장 유연화, 다른 하나는 IMF구제금융으로 상징되는 97년 체제. 이 두 개의 요인은 과학기술 혁명으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객관적 상황과 맞물려 노동시장을 황폐화시켰다. 실업과 노동시장 양극화가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사정은 아니며, 참여정부의 실정 탓으로 환원시키기에는 노동시장을 규정하는 객관적 요인의 원심력이 너무 컸다. 물론 참여정부가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에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상상력과 정책수단을 남김없이 가용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 대목에서 참여정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당시 노동시장을 규정하던 그리고 지금도 규정하고 있는 객관적 요인들을 배제한 채 노동시장 양극화의 책임을 참여정부에게 전부 부담시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

"부동산 폭등으로 중하층의 재산가치가 하락하고 중상층은 더 부자가 돼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정 전 의원의 평가는 균형감각을 완전히 잃은 평가다. 참여정부 시기는 유례없는 전 세계적 유동성 과잉으로 OECD국가들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때였다. 그나마 참여정부가 종부세 및 재건축개발이익환수제 등의 투기억제정책, 2기 신도시 건설 등 공급확대정책, LTV 및 DTI 도입을 통한 금융정책, 공공임대주택의 대량 공급 등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들을 유기적으로 동원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최대한 억제했고, 그 덕분에 선진국들이 2008년 금융위기와 부동산 가격 폭락 사태를 겪을 때 대한민국은 무탈했다. 버블세븐 위주의 주택 가격 상승은 참여정부의 실정 때문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국사회가 이룬 소중한 성취다. 참여정부 이후 벌어진 비극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정부가 출현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참여정부 이후 우리가 경험한 정부는 부동산 투기 권하는 정부, 빚을 내 집 사라는 정부, 전월세 대책을 사실상 포기한 정부이며, 그 결과 중산층과 서민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주거비에 짓눌려 질식당하고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정 전 의원의 평가는 이렇듯 잘못됐다. 반성의 경험이 극히 드문 한국 정치현실에서 정 전 의원의 반성은 값진 것이고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것처럼 반성의 전제 중 상당부분이 잘못됐다. 끝으로 정 전 의원의 과거시절 중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2007년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대통합신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정 전 의원은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의 경우 양도세 뿐 아니라 종부세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동영 '종부세 포함 세금 완화' 주장)

주지하다시피 종부세는 투기 억제의 중핵이다. 정 전 의원이 당시 자신이 했던 발언에 대해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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