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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포위된 병원, 잠자는 것도 쉬는 것도 사치였다

정말로 매일 매 순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고 느꼈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한 처치부터 아주 복잡한 치료까지, 온갖 종류의 의료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안 그래도 처참한 사람들의 상황이 더 나빠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나는 이 전쟁이 끝나면 의사 일을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거의 확고하다. 누구라도 내가 겪어온 일을 겪는다면 이런 마음이 들 것이다. 이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다시 살게 될 것이다.

5년 째에 접어든 시리아 분쟁.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MSF)는 현재 시리아 북부에서 의료 시설 여섯 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에는 직접 의료 구호 팀을 파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도 시리아 사람들이 의료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 의료 시설 100여 곳을 지원하고 있다. 포위 상태에 있거나 격렬한 분쟁이 벌어져 다른 의료 지원이 거의 없거나 전무한 지역들이다.

이 글을 쓴 S는 현재 다마스쿠스(Damascus) 동부의 간이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외과 의사이며, 그가 일하는 병원도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리아 사태 발발 직후부터 의사로서 일해온 그의 지난 몇 년은 시리아의 전쟁과 궤적을 함께 한다.

포위되어 있던 2013년 7월, 다마스쿠스 동부 지역에 임시로 마련한 병원에서 부상자들을 수술하고 있는 의사들. 포위는 2014년 2월까지 8개월간 계속되었다.

우리가 완전히 포위되어 있던 시기에 제왕절개가 필요한 임산부가 있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포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협상을 시도했으나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 그녀를 보낼 수 있는 산부인과 병원은 없었고, 나는 제왕절개 수술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나는 제왕절개 수술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애를 썼다. 시계는 째깍거리고,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기어이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맹렬한 포격이 쏟아지고 있어 주변에는 이미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포격 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우리는 산모를 수술실로 옮겼고 내가 수술을 했다. 여자 아기와 산모 모두 건강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정말 기뻐서 가슴이 벅찼다.

이 광란 속에서 외과의사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그건 마치 전쟁이 남긴 피해를 복구하는 일과 같다. 그렇지만 그 제왕절개 수술은 일반적인 피해 복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돕는 일이었다. 죽음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임시 휴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시리아 사태가 시작된 직후 공부를 마치고 외과의사가 되었다. 사태가 갈수록 더 악화되고 의료 지원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던 2011년 여름에는 작은 개인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지만, 몇 달 뒤 동료 여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2012년 초에 석방된 뒤로 다시 환자들을 치료하고 내 전공인 일반외과 진료를 계속해 왔다. 임시로 마련된 야전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다마스쿠스 동쪽과, 그런 다음에는 의료 지원이 시급한 지역인 구타(Ghout)에서도 일했다.

2012년 말 다마스쿠스 동부 준시골지역에서 격렬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그 지역에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 있었는데, 부상자를 치료할 의료 시설이 한 곳도 없었다. 나는 그곳에 가서 야전병원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적당한 곳을 찾아 다닌 끝에 폭격을 맞아 버려진 학교를 골랐다. 위층은 피해를 입었지만 1층과 지하층은 상태가 괜찮았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포격과 계속되는 공포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우리 의료팀은 의료 지원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도울 수 있었다.

다마스쿠스 동부 지역에 포격을 맞아 파괴된 학교 건물 위층. 우리는 이 학교 아래층에 야전병원을 마련했다.

포위...잠자는 것도 쉬는 것도 불가능한 사치였다

2013년 7월의 어느 날 오전 10시경, 우리 병원이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엄청난 폭발로 병원은 쑥대밭이 되고 나무 벽은 압력을 견디지 못해 뜯겨 나갔다. 의료 도구와 직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내 자욱한 먼지가 건물을 뒤덮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전에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폭발이었다. 그 폭발을 시작으로 더 나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고 무력 충돌이 점점 더 심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추스르려 하고 있는데 병원 직원 한 명이 쓰러졌다. 어린 아들이 있는 병원 근처 집 쪽에서 집중 포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몹시 흥분해서 아들을 구해오고 싶어했다. 의료진 중 하나가 자신이 나가서 아이를 찾겠다고 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는 병원 문밖으로 나갔고, 그러자마자 자신을 향해 있는 탱크를 봤다. 건강한 남자가 걸어서 밖으로 나갔고, 고작 몇 분 뒤 몸에 금속 파편이 박힌 채 돌아왔다. 그제서야 우리는 바깥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 우리는 환자 한 명당 직원 두 명씩 붙어서 환자들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했고,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세상에 종말이 온 것 같았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진료소를 향해 최대한 빨리 걸었다. 주변에 포탄이 떨어졌다. 포격 소리가 들릴 때마다 최악의 사태를 생각했다.

기적적으로 우리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떠나온 병원에 장비를 두고 왔지만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에 우리는 교전선이 병원 부근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포격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병원에 가서 장비를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교대로 왔다갔다 했고, 열흘 뒤에는 가능한 한 많은 장비를 옮겨놓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포위 상태였다. 어느 누구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고, 의료 물품도 마찬가지였다. 포위 첫날 이후로 부상자가 끝없이 밀려들었다. 두 사람을 동시에 수술하는 일도 있었고, 우리는 밤낮으로 일했다. 잠자는 것도 쉬는 것도 불가능한 사치였다. 동이 트기 전에 잠깐 일을 멈추고 음식을 먹고 물을 좀 마셨고, 다시 일을 했다. 거의 매일 극심한 포격과 격렬한 교전으로 부상자가 늘어만 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쉴 틈이 없었다. 부상자 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섰고, 하는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2014년 2월 휴전 이후, 여전히 열악한 상황

우리는 2014년 2월까지 8개월간 포위되어 있었다. 8개월간의 고통이 끝나고 휴전이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물자를 구하는 것도 전보다 쉬워졌고, 그 덕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의료 지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주의적 상황은 여전히 열악했다. 여전히 이 지역 주변에서는 무력 충돌이 잦았고 포격도 빈번했다. 이런 형식적인 휴전이 우리 일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드디어 병원을 확장할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이 인근으로 돌아오면서 환자들이 늘어나고 우리의 업무도 늘어났다. 우리는 기초 의료와 만성 질환 관리를 위해 산과와 진료소를 세웠다. 뼈 수술, 내장 수술, 비뇨기과 수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수술들은 이전에는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인명구조 수술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수술들이다.

우리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지원받았다. 실험실 장비도 받아서 진단 검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산과 병동에 필요한 인큐베이터도 받았다. 차츰차츰 우리는 이 지역 주민들의 모든 기본적인 의료적 필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년간 어려운 상황에서 쉬지 않고 진료를 해온 나는 한계에 다다랐다. 끔찍한 장면을 질리도록 목격했다. 얼마 전 외과 교수님과 통화를 했는데,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술 환경이 어떠했든 상관없이, 네가 지난 3년간 한 일은 내 30년 의사 경력과 맞먹는다. 이제 겨우 3년이 지났는데 은퇴해도 되겠구나."

정말로 매일 매 순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고 느꼈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한 처치부터 아주 복잡한 치료까지, 온갖 종류의 의료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안 그래도 처참한 사람들의 상황이 더 나빠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나는 이 전쟁이 끝나면 의사 일을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거의 확고하다. 누구라도 내가 겪어온 일을 겪는다면 이런 마음이 들 것이다. 이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다시 살게 될 것이다.

Dr. S | 시리아인 의사

2011년 시리아 사태가 시작된 직후 의대를 졸업한 젊은 시리아인 외과의사. 2012년 이후로 임시로 마련한 야전 병원들에서 외과의로서 일해 왔다. 현재는 다마스쿠스(Damascus) 동부 준시골 지역, 계속되는 분쟁 때문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보호를 위해 필자의 실명을 밝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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