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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고 유명한 자선단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세운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다. 놀라운 점은 그가 재단의 돈을 50년 안에 다 소진해 제로가 되도록 운영계획을 짜놓고 있다는 것이다. 재단이 2000년에 세워졌으니까 2050년이면 재단의 돈은 제로가 되고 재단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때면 그의 나이는 95살이다.

  • 김선주
  • 입력 2015.04.01 13:05
  • 수정 2015.06.01 14:12
ⓒASSOCIATED PRESS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고 유명한 자선단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세운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다.

빌 게이츠는 천만달러만 자녀에게 물려주고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고 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해마다 수십억달러씩 재단에 집어넣고 있고 그의 기부 파트너인 워런 버핏 역시 10억달러씩을 꼬박꼬박 재단에 내놓고 있다.

놀라운 점은 그가 재단의 돈을 50년 안에 다 소진해 제로가 되도록 운영계획을 짜놓고 있다는 것이다. 재단이 2000년에 세워졌으니까 2050년이면 재단의 돈은 제로가 되고 재단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때면 그의 나이는 95살이다.

자신이 살고 돈을 벌었던 시대에 가장 낙후하고 긴요한 일에 돈을 쓰고 가겠다는 뜻이다. 당대에 유용한 일을 하고 그다음 세대에 꼭 필요한 일은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또 새로운 개념으로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 그것으로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 대한 책임이나 의미를 만들고 탁탁 털고 가겠다는 것은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부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과 일상을 선택할 수 있다. 비행기를 수집하고 세계 곳곳에 집을 사들일 수도 있고 자신의 후손들이 천년만년 귀족놀음을 하도록 몽땅 물려줄 수도 있다. 천국을 위해 내세를 위해 종교단체에 모든 것을 집어넣고 영생을 꿈꿀 수도 있다. 부자가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부자가 멋진 이름이 될 수 있고 존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핏줄로만 이어진다면 부자를 존경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미국 상류계층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돈을 번 것은 자신이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덕분이다. 자수성가이다. 당대에 번 돈을 당대에 쓰고 간다는, 두고두고 대대손손 재단이 운영되는 것에 미련이 없다는 뜻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도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열살짜리 조카의 교육비를 대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재산은 전부 사회의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우리나라 상류층과 재벌들의 행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들여다보았다. 자식들의 운명과 장래를 뱃속에서부터 계획하고 대대손손 꼭두각시 같은 놀음을 지속시키려고 온갖 코미디 같은 짓을 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드라마일 뿐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소위 돈으로 측정되는 상류층의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기도 해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몸담고 살고 있는 곳에서 보고 배우는 것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세라면 개인의 힘으로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결국 드라마를 보고 욕하면서도 그런 수준의 삶이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법조 문화 그런 것의 축소된 모습이라고 보게 되면 그런 수준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도 빌 게이츠나 팀 쿡처럼 아이티 산업의 붐을 타고 수조원대의 부를 축적한 경제계의 스타들이 있다. 몇 대에 걸친 재벌들 부럽지 않은 재력들이다. 그들이 전 시대의 재벌들의 삶을 동경하고 그들의 행태를 닮아 똑같은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빌 게이츠나 팀 쿡 같은 삶을 보고 배우며 우리나라에 새로운 형태의 돈 쓰는 방법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면 갑자기 즐거워진다.

온통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늘과 땅과 거리와 건물이 먼지로 꽉 뒤덮인 며칠을 보내고 있다. 먼지 먼지... 미세먼지... 뿌연 하늘 밑에서 결국 먼지가 되어 생명은 떠나가는 것이라는 멍한 생각을 한다. 창세기는 신이 먼지에서 사람을, 아담을 만들었다고 써놓고 있다. 먼지에서 와서 수명을 다하고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다.

이름을 남길 생각을 안 한다면, 돈을 남길 생각을 안 한다면, 오히려 그 이름과 돈이 값질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에서 태어나 살고 번 돈을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쓰고 가겠다는 꿈을 갖는 부자들을 보고 싶다는 멍한 꿈을 짙은 먼지 속에서 꾼다.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날아갈 유한한 생명이기에....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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