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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인터뷰] 선결, "정치는 타협, 예술은 비타협이 미덕이다"(음원)

  • 박세회
  • 입력 2015.04.01 10:28
  • 수정 2015.04.01 12:25

미리 알고 들어가야 할 게 있다. 요새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인디 밴드 선결의 리더 김경모와 나는 15년째 알고 지낸 친구 사이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매우 공격적이다.

오랜 친구와 인터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군요.

경모 저희도 고양이 동영상 정론지와 인터뷰하게 되어 기쁩니다.

음반 얘기부터 하죠. 제목은 왜 ‘급진은 상대적 개념’이라고 지었나요?

경모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명제형의 선언적인 제목으로 짓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비둘기는 하늘의 쥐’ 같은. 단어가 주는 뉘앙스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가사나 앨범을 쓸 때 잘 안 쓰는 단어들을 쓰고 싶었어요. ‘급진’, ‘상대적’ 이런 단어는 가요 가사에 잘 등장하지 않는 단어잖아요. 내용은 제 개인적 경험이 바탕입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과 종종 다른 방식을 택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급진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라디오 뉴스에서 ‘급진’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고, ‘급진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제목을 생각해냈습니다.

밴드 선결. 왼쪽부터 경모(기타 &보컬), 용훈(베이스), 인철(드럼).

정치를 포장지로 쓴 건 아닌가요?

경모 정치를 대놓고 콘셉트의 하나로 차용한 건 사실입니다만, 포장지로 쓴 건 아닙니다. 사실 음반 전체를 봤을 때는 중의적인 음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4번 트랙인 “우리의 연애는 과대평가 되어있어” 같은 경우에 그냥 듣기에는 연애 노래일 수 있지만, 중앙당에 배신당한 새누리당 당협 위원장이 공천 못 받고 쓴 노래로도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들리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는 게 콘셉트였습니다.

가사집이 없는 이유는 뭔가요?

경모 이에 대한 <나일론>의 박의령 에디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전화번호를 알게 되면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다르게 들리고, 반복 청취할수록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컬의 볼륨도 낮은데, 발음까지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요?

경모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밴드가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인데, 발음도 불명확하고 가사집도 제공하지 않아요. 그들의 들리지 않는 가사의 모호함, 노골적이지도 직설적이지도 않은 보컬 스타일 때문에 더 많이 듣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콕토 트윈스와 포크 가수 존 마틴(John Martyn)도 이런 측면에서 비슷한데, 그걸 그대로 따라 한 겁니다.

그럼 저도 제대로 가사를 이해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얘기군요. ‘흔들거리는 그네’에서 ‘나이 들면 함께 누워있고 싶은 사람’이라는 가사 나오죠? 그 사람이 누군가요?

경모 제가 노린 점이 딱 이런 감상입니다. 원래 가사는 ‘나의 님은 지금 어디에 누군가와 누워 있을까’예요. 청자가 그렇게 듣는 경험이 제게도 신비롭고, 반대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다시 들어서 다르게 들리면 새로운 레이어가 생기는 경험이 되는 거죠. 그리고 가사를 제대로 모를 때, 듣는 사람이 짐작하는 가사는 그 사람의 무의식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항상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결의 노래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모 씨만 답하고 다른 멤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네요. 다른 멤버들도 이런 점에 대해 충분히 얘기해보고 하고 결정한 건가요?

용훈 지금 들어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웃음)

지금까지 자신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인 것처럼 말해놓고 김경모 씨는 거의 독재자군요.

인철 정확하네요.

경모 저도 부정하진 않아요. 특히, 이번 앨범 만들 때는, 제게 매우 확고한 그림이 이미 그려져 있어서 나머지 멤버들이 그대로 따라와 준 측면이 많아요. 다음 앨범에서는 인철과 용훈의 입김이 좀 더 많이 들어가는 앨범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오해를 피하고자 정확히 말하자면, 문화 예술계 전반에 만연한 스태프의 저임금 고 노동 문제, 재능기부 등의 문제는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엄연히 정치의 영역이고, 제가 말하는 ‘독재’는 예술 작품 속 창의적인 결정권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경모 씨는 밴드에서 어떤 식의 독재자였나요? (웃음)

용훈 그런데, 굉장히 자상한 독재자예요. 다만, 자기가 원하는 게 정확히 있으면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요. 많이는 아니지만 여러 밴드를 해봤는데, 밴드라는 포맷 자체가 송 라이터가 그런 식으로 이끌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드러머의 경우엔 갑갑한 건 없었나요?

인철 여지를 두질 않아요. 전 사실 같이 밴드를 했다기보다는 제가 세션을 했다고 생각해요.

경모 이거 인터뷰에서 지워주세요. (인철에게) 밴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는 말이야.

드러머 인철.

지금 밴드 구성원의 목소리를 탄압하는 건가요?

경모 제 지론이 있어요. 정치는 타협하는 과정이고 그게 미덕이자 핵심이지만, 예술은 비타협적인 태도가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공동 창작으로 정말 멋진 게 나온 적 있나요?

틴에이지 팬클럽 (세 명의 송 라이터가 이끌어오는 민주적인 팀)은요?

경모 그건 경우가 조금 다르죠. 틴에이지 팬클럽은 말하자면 노먼 블레이크가 박정희고 제리 러브는 김종필 아닙니까? 사실 그 세 명 중 기타리스트인 맥긴리는 오히려 차지철에 가깝죠. 드러머 브랜든 오헤어는 3집 이후 숙청당했고요. 옴니버스 영화, 창작촌에서 협업한 미술 작품들이 좋은 경우가 있던가요?

그건 본인의 생각이고, 다른 멤버들은 정말 갑갑할 것 같아요.

인철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사실 편하긴 해요. 누구 한 사람이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방향을 제시하면 그걸 따라가는 건 쉽거든요. (연주자로서의) 자기표현을 하겠다고 하는 밴드는 아니니까요.

경모 우왕좌왕하는 것보다는 낫죠.

노래 제목 중에 이 상황이랑 굉장히 어울리는 노래가 있죠? ‘우린 군주이자 하인이어라’. (일동 웃음) 녹음 방식이 굉장히 특이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릴 테이프 (아날로그 시절에 스튜디오에서 쓰던 녹음 매체)를 쓴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가청 영역 대가 아닌 소리를 살리려고 하는 수고인데 굳이 그런 짓을 한 이유가 뭔가요?

경모 가청 영역 대가 아닌 소리를 살리려고 했다기보다, 굳이 릴 테이프뿐만 아니라 최대한 오래된 악기를 써서 녹음하고 진공관 앰프만을 고집한 이유가 있어요. 하나하나 들었을 때는 그 느낌이 명확하게 다르진 않지만 여러 개의 악기가 쌓이면 확연하게 다른 질감을 줍니다.

용훈 그렇죠. 그렇게 하려고 일부러 베이스 기타도 베이스 앰프를 안 쓰고 기타 앰프를 사용해서 녹음했어요.

인철 사운드 스케이프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기 위한 건 아니지만, 다른 실험도 했어요. 일반적으로 드럼 녹음을 할 때 베이스 드럼, 스네어, 하이햇 등에 다 각자 많게는 스무 개 정도의 마이크를 달거든요. 그리고 보통의 엔지니어들은 그렇게 녹음된 소스들을 갖고 일반적인 밸런스로 일단 맞춰놓죠. 그런데 저희는 저희가 듣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마이크를 적게는 한 개, 많게는 두세 개 정도를 달고 녹음했어요. 저는 이미 연주를 하면서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밸런스로 연주하거든요. 그 밸런스와 그루브에 가장 맞는 지점에 마이크를 둔 거죠.

기타리스트가 없어서 공연이 힘든 상황인데, 앨범은 계속 잘 나가고 있다면서요?

경모 이미 찍은 물량은 다 출고됐어요. 지금 매장에 남아있는 물량이 다 나가면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쇼케이스는 왜 안 했나요?

경모 예전부터 인디 신에서 다른 밴드들이 쇼케이스 하는 걸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대부분이 보통은 서너 달쯤 전에 쇼케이스 날짜를 잡아두죠. 그리고는 그 일정에 맞추려면 적어도 45일 전까지는 믹싱이 끝나야 하고, 적어도 한 달 전까지는 마스터링이 끝나야 하죠. 그런 타임라인을 따라서 날짜를 맞추다 보면 마스터링이나 디자인이 종종 희생되더군요.

김경모가 디자인한 한글 서체.

음원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경모 얼마 전 뷰욕의 인터뷰에서 본 표현인데,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고 난 다음에 IPTV나 파일 형태로 풀리잖아요. 극장에서 보고 IPTV로 다시 보는 사람은 있어도 IPTV로 보고 나서 극장에서 다시 보는 사람은 없어요. 음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스트리밍 서비스로 일단 들어보고 CD나 MP3를 구매하긴 힘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장삿속이었군요.

경모 그런 저열한 표현을 쓰고 싶진 않네요. 제가 해보고 싶었던 건 실험이에요. 지금까지 한국 인디신이 시작된 이래 앨범을 발매하는 행태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습니다.

앨범 가격도 전혀 달랐죠? 발매 첫 달은 5천 원으로 판매했어요.

경모 예전에 녹음의 모든 과정을 릴 테이프로 진행하던 시절에는 아무리 인디밴드여도 막상 음반을 제작하려고 하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죠. 녹음실 사용요금도 비쌌고, 엔지니어 급여, 밴드들 식대 생각하면 1억도 넘게 들어간 앨범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 인디밴드가 녹음하는 방식으로는 많아 봐야 1천만 원이 들어요. 그런데 CD 가격은 1만 원에서 1만 5천 원 사이로 20년간 계속 대동소이했습니다. MP3, 스트리밍도 나오고 음악 청취 환경도 완전히 변했는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중, 실험을 결심하게 된 세 가지 참고 지점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코미디언 루이 CK가 자기 웹사이트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동영상을 5달러에 판매한 점. 힙합 그룹 오드퓨처가 믹스테이프를 발표하고 그 음원을 무료로 배포했던 것. 밴드 ‘푸가지’가 꽤 오랫동안 젊은이들이 공연장에 쉽게 올 수 있게 입장료를 5달러 수준으로 책정했던 일입니다. 루이 CK는 중간 유통 과정을 줄일 수 있었고, 오드퓨처는 저변을 넓힐 수 있었으며, 푸가지는 멋이 있었습니다.

선결의 앨범 재킷 사진.

앨범 디자인에 관해서도 얘기를 조금 해보죠. 일단 사진은 누가 찍은 어떤 장면인가요?

경모 박정근(트위터에서 북한 계정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후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은 사회 활동가 겸 사진 작가)씨가 2011년도에 명동 ‘카페 마리’에서 찍은 투쟁가의 사진입니다.

정치 콘셉트의 연장이군요.

경모 정치 콘셉트는 아니었고, 사진 자체가 아주 좋았습니다. 2011년에 그 사진을 보자마자 음반 재킷으로 쓰겠다고 허락을 받았어요. 우리의 나긋나긋한 음악에 이질적인 재킷이 필요했었고, 보자마자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연출 사진이 아닌 현장 사진이어서, 사진 속 인물의 표정이 진심인 것이 좋았습니다.

디자인 전공으로 알고 있는데, 앨범 디자인은 누가 했나요?

경모 직접 했어요.

한글 서체도 만든 건가요?

경모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만든 겁니다. 지난번 EP는 저희 기타리스트인 조 홀릭 Joe Hollick이 디자인했는데, 그 서체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어요. 이번 앨범에 쓰인 영문 서체도 같은 거죠. 예를 들면 한글의 'ㅅ‘과 조가 쓴 서체의 A는 꼭지각의 각도가 정확하게 같아요. 한국인 디자이너 입장에서 사실 가장 어려운 게 한글 서체예요. 영어는 알파벳 개수만큼만 만들면 되지만 한글은 글자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만들어진 서체 자체가 적어요. 선택지가 별로 없으니 좀 다른 걸 해볼 수가 없는 거죠. 어떻게든 타계해보려는 방책으로 서체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선결 앨범에서 가장 큰 수확은 서체일 수도 있겠어요.

경모 폰트회사에서 베껴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가죠. 각자 맡은 포지션에서 지향했던 레퍼런스가 있나요?

인철 드럼 레퍼런스를 따로 두진 않았어요. 곡마다 경모 씨가 주문한 분위기가 있어요. 키를 정확하게 맞춘 건 아니지만 그 분위기에 맞게 피치, 서스테인, 터치, 스네어의 톤을 두텁거나 얇게 조절했죠.

용훈 선결은 제가 멤버로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활동을 해왔던 오래된 밴드에요. 그런 의미에서 제 가장 큰 레퍼런스는 전 베이시스트였어요. 선결의 라이브 영상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걸 찾아서 들었어요. 그걸 들어보고 그 라인이 좋으면 그걸 거의 그대로 쳤어요. 플레이에 영향을 준 게 있다면 우리 밴드의 기타 음량이 라이브에서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었어요. 조이 디비전의 베이시스트도 그런 상황이었다는데, 라이브에서 자기 소리가 안 들리니 높은음을 위주로 쳤다고 하더군요. 저도 마찬가지로 높은음을 주로 쳤죠.

경모 음반을 만들면서 제작 측면의 큰 콘셉트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60년대의 슈게이징 음악’, 또는 ‘리버브 이펙터를 안 쓴 슈게이징 음악’을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리버브를 쓰긴 썼는데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을 썼고, 딜레이나 에코 등의 다른 공간계열 이펙터는 전혀 안 썼어요.

처음의 지향점과 결과물은 다른 법이죠.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선결의 이번 앨범 사운드를 정의해 본다면?

경모 ‘비어있는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서울의 마천루를 보는 느낌? 그러나 차를 타고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면 가득 차있는 빌딩의 숲’이라고 표현하는 박세회 에디터의 평이 좋네요. 그대로 써주세요.

요새 가장 맘에 드는 가요는 뭔가요?

인철 전 레드 벨벳의 오토매틱을 한창 듣고 있습니다.

융훈 요새 김현철 1집 같은 한국음악에 관심이 있어요. 오사카에 여행을 갔을 때 일본 씨티 팝과 한국 음악을 좋아하는 일본인 DJ 친구의 집에서 며칠을 지낸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친구가 일본 씨티 팝과 한국의 김현철과 로커스트 등을 믹스하여 들려준 적이 있는데 새로운 맥락에서 들으니 굉장히 새롭게 들리더라고요. 김현철과 동아기획 아티스트들의 LP를 돌아와서 구해 들어보니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요.

경모 역시 한국 밴드 중에선 ‘불싸조’, ‘모임 별’, ‘조월’. 최근에는 ‘라이프 앤 타임’, ‘소리 박물관’, ‘공중도덕’ 그리고 ‘혁오’가 가장 귀에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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