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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사망 12주기,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 강병진
  • 입력 2015.04.01 07:52
  • 수정 2015.04.01 07:54
ⓒ해피투게더

2003년 봄. 홍콩은 무너졌다. 중국반환 후 침체되기 시작했던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이라고 할 만큼 심각해졌다. 게다가 사스까지 덮쳐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배우 장국영이 죽었다. 2003년 4월 1일, 오후 7시 6분. 그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투신해 46년간의 생을 마감했다.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이미 심리적 공황에 빠져있던 홍콩 사람들은 그의 유언에서 같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 기사는 장국영의 사망이후, 9시간이 지나지 않아 5명의 사람들이 자살했다고 전한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장국영의 죽음이 가져온 여파는 홍콩 안에서 사그라지지 않았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에 열광했고, ‘투유초콜릿’을 녹여가며 10대를 보냈던 한국 팬들도 상처받은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곳곳에서 그의 영화를 다시 보는 행사가 열렸고,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그의 대사들이 곱씹혔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전에 늘 말했었다. 갖지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고.”(<동사서독>)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 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아비정전>)

사실 장국영의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어느 작품에서나 외롭고 쓸쓸한데다, 죽음의 정조를 품고 있는 장국영을 보게 되니 말이다. 생모를 찾아다니며 방황하는 <아비정전>의 아비, 딸의 이름을 지어주고 죽은 <영웅본색>의 아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칼로 찔렀던 <패왕별희>의 데이. 연인을 못살게 굴면서도 그와 탱고를 추고 싶어 하던 <해피투게더>의 보영. 심지어 <종횡사해>처럼 유쾌한 영화에서도 그는 주윤발과 종초홍의 틈 사이를 갈망하는 남자로 보인다. 그처럼 장국영은 죽음을 예고하듯 작품마다 자신의 스산한 얼굴을 새겨 넣은 배우였다. 아시아 전역의 10대 소녀들이 자신보다 20살은 더 많은 그를 보듬어 주고 싶은 남자로 사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국영이 죽은 지 12년이 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죽음을 궁금해 한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면, 그를 우울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연인인 당학덕과의 불화설, 제3의 연인이 일으킨 삼각관계의 갈등, 점점 늙어가고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불편한 시선, 유작인 <이도공간>에서 연기한 투신자살 장면의 영향. 이유가 무엇이건, 그가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매년 이 맘때면, 그의 절친들은 장국영의 마지막 모습을 하나씩 털어놓는다. 사망 당일 장국영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디자이너 막화병은 지난 2011년 “그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수면제를 먹는 것보다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게 더 낫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장국영이 죽은 후, 10년 간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마지막 연인 당학덕의 이야기도 애잔하다.

10주기였던 지난 2013년에는 자살 전 그의 마지막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그의 오랜 매니저였던 진숙번에 따르면, 장국영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이 기회에 홍콩을 제대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그에 눈이 비친 홍콩이 경제위기와 전염병으로 신음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사라진 을씨년스러운 거리의 풍경이 그때의 장국영을 더욱 외롭게 만든 건 아닐까. <해피투게더>의 아휘(양조위)는 아픈 보영을 간호하며 생각했다. “사실은 보영이 빨리 낫지 않기를 바랐다. 아픈 그와 함께한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장국영을 사랑했고, 장국영을 기억하는 우리가 아휘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추'(追) -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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