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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에서 만난 기꼼바(Gikomba)의 주마(Juma)

벽돌로 지은 집이 거의 없는 마다레의 남쪽을 사람들은 종종 슬럼(slum)이라고 부르면서 불평하는데, 주마에게 마다레는 그저 집이 있고, 또 태어나서 떠난 적이 없는 정든 땅이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마다레가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마다레의 골목 사이사이에는 쓰레기와 폐수가 뒤섞여서 흐르는 크고 작은 시커먼 물줄기들이 가로지르는데 주마와 친구들은 맨발로도 물을 피해 뛰어다니면서 노는 데 도가 텄습니다.

  • 김태은
  • 입력 2015.04.02 10:37
  • 수정 2015.06.02 14:12

나이로비에 있는 기꼼바 시장은 다른 나라에서 버려지거나 중고로 팔린 헌옷(현지에서는 미툼바(mitumba)라고 부름)을 파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무 기둥과 판자들을 덧대어 지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끝없이 이어져 있고, 수많은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골목은 옷을 구경하는 사람들, 짐을 옮기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곳에서 팔 옷을 사러 오는 소매상인들로 시끌벅적합니다. 헌옷을 파는 구역의 한쪽 끄트머리에 가면 옷을 파는 엄마를 따라 나온 다섯 살 주마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귀염을 받는 주마는 얼굴도 몸도 작지만 환한 미소가 얼마나 큰지 웃는 주마를 보면 하루하루 장사에 지친 어른들도 주마를 따라서 웃습니다. 주마 엄마의 가게 주변에서 주마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주마는 아저씨들이 빈 손수레(일종의 리어카. 현지에서는 mkokoteni(므코코테니)라고 부름)를 덜컹덜컹 끌고 가면 거기에 올라타서 모험을 떠나는 사람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웃의 형들과 좁은 골목에서 바람이 빠진 공을 차면서 놀기도 합니다. 수박이나 파인애플을 잘라서 파는 아저씨들은 팔고 남은 작은 조각을 남겨뒀다가 주기도 하고, 땅콩을 파는 할머니는 땅콩을 한 주먹 가득 주기도 합니다. 가끔 외국인들이 골목에 들어오면 부끄러워서 쭈뼛거리는 형들보다도 주마가 먼저 달려가서 인사를 합니다.

마다레

주마네 가족은 나이로비 동쪽에 있는 마다레(Mathare)라는 동네의 남쪽에 삽니다. 어른들은 마다레의 남쪽과 북쪽이 다르다고 하는데 주마는 북쪽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이웃에 사는 친구 까마우(Kamau)가 친척집이 있는 북쪽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북쪽에는 벽돌로 만든 집들이 많다고 합니다. 나무와 양철을 덧댄 집에서만 살아온 주마는 대체 벽돌로 지은 집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지 조금 궁금합니다. 벽돌로 지은 집이 거의 없는 마다레의 남쪽을 사람들은 종종 슬럼(slum)이라고 부르면서 불평하는데, 주마에게 마다레는 그저 집이 있고, 또 태어나서 떠난 적이 없는 정든 땅이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마다레가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마다레의 골목 사이사이에는 쓰레기와 폐수가 뒤섞여서 흐르는 크고 작은 시커먼 물줄기들이 가로지르는데 주마와 친구들은 맨발로도 물을 피해 뛰어다니면서 노는 데 도가 텄습니다. 가끔은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부서진 널빤지 같은 것을 찾을 때도 있는데 아빠가 새끼줄을 끼워주시면 친구들과 함께 번갈아 가면서 끌어주는 썰매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널빤지가 울퉁불퉁한 길에 걸리는 바람에 넘어지면 주마의 무릎에는 크고 작은 상처와 멍이 생기지만 그래도 널빤지를 끄는 놀이는 주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늘 환하게 웃는 주마지만, 그런 주마도 웃을 수가 없는 때가 있습니다. 엄마가 일하는 기꼼바 시장이나 주마가 사는 마다레에는 좁은 공간에 나무를 이어서 지은 가게와 집이 많아서 불이 나면 큰일이 납니다. 어린 주마이지만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망연자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속이 많이 상합니다. 특히 기꼼바에는 큰불이 자주 나는데, 올해 큰 피해를 입힌 불길이 다행히 엄마의 가게가 있는 골목을 살짝 피해갔습니다. 하지만 주마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기꼼바 전체에 큰불이 나서 엄마가 팔려고 챙겨둔 옷과 가게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덕분에 주마네 식구들은 집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어린 주마는 엄마가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떨면서 흐느끼던 뒷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주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이지만, 이상하게도 불이라는 것은 잊어버릴 때쯤이면 다시 나는 바람에 기꼼바와 마타레의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가끔 주마는 누군가 "모또! 모또! (Moto! Moto!; 불이야! 불이야!)"라고 소리를 지르고 엄마의 가게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는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출처: Nairobi News, We have lost millions, say Gikomba traders (기꼼바 상인들이 말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주마의 아빠는 나이로비에서 제일 큰 농산물 도매시장인 와쿨리마(Wakulima; '농부들'이라는 뜻) 시장에서 짐을 옮기는 일을 합니다. 힘이 센 주마의 아빠는 감자, 토마토, 망고, 양파 등이 가득 들어 있는 무거운 푸대를 한마디 신음 소리도 없이 등에 매고 옮기는 데 전문가입니다. 짐이 너무 무거워서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기도 힘든데 몸으로 시장 곳곳의 길을 기억하는 아빠는 한 번도 넘어지거나 배달할 곳을 찾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이 일은 주마가 태어나기 전에 잠깐 하려고 시작했던 일인데 다른 일을 구하는 것이 힘들어서 이제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와쿨리마 시장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 (글쓴이 촬영)

언젠가 주마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엄마의 기꼼바 가게에 불이 나는 바람에 식구들이 집세를 내지 못해서 쫓겨났던 날, 아빠는 캄캄한 새벽에 주마를 어깨에 둘러업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와쿨리마 시장은 새벽 5시에 문을 여는데, 시장 입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아이를 먼지투성이에 위험한 곳에 데리고 왔다고 아빠를 야단치고, 얇은 반바지와 티셔츠만 입은 주마가 쌀쌀한 새벽 공기 때문에 감기에 걸릴까봐 캉가(Kanga, 여인들이 주로 허리에 둘러서 입거나 보자기로 쓰는 다용도의 천)를 둘러주었습니다. 하지만 주마는 아빠가 짐을 옮기면서 일하는 동안 망고를 파는 어떤 할머니 옆에 앉아서 멍이 들어 팔지 못하는 망고를 배불리 실컷 먹어서 좋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모릅니다. 망고를 파는 할머니는 파인애플을 가득 실은 트럭을 가리키면서 우간다에서 왔다고 했는데 주마가 "우간다도 케냐에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웃으면서 우간다는 다른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럼 양파는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케냐에서 온 것도 있지만 탄자니아에서 온 것도 있다고 합니다. 옆에서 마늘을 파는 아줌마의 자리에는 마늘 알들이 신기하게 생긴 그림 같은 문자들이 그려진 망 속에 들어 있었는데, 아줌마는 와차이나(Wachina; 중국인들)가 쓰는 글자라며 중국이라는 곳에서 온 마늘이라고 합니다. 우간다와 탄자니아는 어떤 곳들인지, 그리고 중국은 또 어디에 있는 곳인지 주마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오후에 시장이 문을 닫고 주마는 구운 옥수수를 가지고 돌아온 아빠의 품에 안겨서 마다레로 돌아가는데 시장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아빠에게 될 수 있으면 주마를 데려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몸집이 작은 주마가 짐을 가득 실은 차에 치이거나 무거운 푸대에 깔려서 다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마는 와쿨리마에 다시 오지 못한다는 것이 서운했지만, 언젠가 우간다나 탄자니아, 그리고 중국이라는 곳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빠의 어깨에 기대서 잠이 들었습니다.

와쿨리마 시장의 아침 (글쓴이 촬영)

* 나이로비에서 주마와 같은 아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만 주마만큼 기억에 남는 아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 주마가 겪고 해석하는 나이로비의 삶은 어떨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쓴 글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용어나 정보는 배제했습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실제 인물들과 일어났던 일들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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