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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외교와 동아시아 안전망

균형외교가 지속적인 안정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강대국들의 권력정치 속에서 균형점 자체가 유동적이며, 국력에 따른 위계질서 속에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의 입지가 매몰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자기보전을 추구하는 양자관계 중심의 외교를 넘어서 동북아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게 잡는 외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조세영
  • 입력 2015.04.01 10:30
  • 수정 2015.06.01 14:12

3월 2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7차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가운데),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념촬영을 마친 뒤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사드(THAAD) 문제가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AIIB는 영국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자연스레 상황이 정리되었고 이제 초점은 사드로 넘어갔다. 또 하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지난 3월 21일 개최된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다. 일본과의 역사문제로 여전히 앞길이 험난하지만, 3년 가까이 멈췄던 한중일 협력의 모멘텀을 되살린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 외교의 애로(隘路)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AIIB와 사드 문제에서는 한국이 줄타기 외교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동적으로 강대국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주도적으로 입장을 정하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너무 자조적(自嘲的)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안보의 기본이 한미동맹에 있으니 어느 정도 줄서기는 불가피하며,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균형을 잃지 않는 줄타기의 감각도 갖출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균형외교는 적절한 방향이다.

그러나 균형외교가 지속적인 안정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강대국들의 권력정치 속에서 균형점 자체가 유동적이며, 국력에 따른 위계질서 속에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의 입지가 매몰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자기보전을 추구하는 양자관계 중심의 외교를 넘어서 동북아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게 잡는 외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과거처럼 강대국의 전횡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지역 차원의 다자외교에서는 비강대국도 의미 있는 역할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이 양자관계 중심의 외교를 넘어서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한중일 협력이다. 한중일협력사무국(TCS)이 서울에 소재하고 있으며, 중일 양국의 불편한 관계 덕분(?)에 한국이 3년째 계속 의장국을 맡고 있는데서 보듯이, 한중일 협력은 지역 강국 사이에서 한국이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동북아에 한정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지역협력의 판도로서는 너무 협소하다.

지역협력의 범위를 동아시아로 넓혀서 보면 한국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역할공간이 열린다. 중국의 급속한 대두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변화하는 가운데 새롭게 형성되는 지역질서가 조화롭고 안정된 모습이 되도록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지역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도록 한국은 역내 비강대국들과 사통팔달의 네트워킹을 구사하면서 고민을 공유하고 공통된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현재 한국 정부가 운영 중인 중견국협의체(MIKTA)와 차별화하여 동아시아 차원의 다양한 소다자(minilateral) 네트워킹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그물망 짜기 작업은 줄서기와 줄타기의 위험을 덜어줄 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 중요한 외교 현안에 대해서 동아시아 질서라는 차원의 판단 기준을 추가하는 것이 유용하다. 예를 들어 AIIB가 동아시아에서 중화질서의 재래(再來)를 불러오는 일이 없도록 거버넌스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대북 억지력의 차원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긴장과 군비경쟁을 고조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4월에 다시 한 번 관심이 집중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도 한일 양자관계의 차원보다는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라는 차원에서 문제제기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동아시아를 넓게 조감하는 지역협력의 외교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대전제다. 단호하게 대응할 사안과 실용적으로 협력할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하고, 양자관계와 지역협력을 구분해서 대처해야 한다. 우선 눈앞의 과제는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문제다. 역사문제에 중점을 두는 중국은 아베담화를 보고나서 정상회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정상회담과 역사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도 역사문제에서 일본에게 할 말은 많지만, 한일 양자관계와는 분리해서 한중일 지역협력의 모멘텀을 살려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중일 협력은 한국 외교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히기 위한 좋은 훈련장이기도 하다.

*이 글은 서울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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