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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여객기 참사가 '우울증' 탓인가

사실을 정확히 모르면서 그런 제목을 뽑는 것도 옳지 않지만, 만약 루비츠가 정말 우울증 환자였다고 해도 그런 식의 기사로 1면을 도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보도는 끔찍한 행동을 사람이 아닌 병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 행태는 마녕사냥이 횡행하던 중세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루비츠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한들 그는 수백만 명의 우울증 환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군인, 변호사, 판사, 기차 조종사, 엔지니어, 화가, 경찰, 은행원,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도 우을증을 않는다. 1986년 나도 정신적 문제를 겪었다.

ⓒAndreas Lubitz from his Facebook page

만약 저먼윙스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Andreas Lubitz)가 정말 극심한 우울증으로 정상적 활동이 불가능했다면 당연히 비행기를 조정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정신 분열 일보직전이었다면 - 사실 정말로 그런 상황이었다면 조종실에 들어가기 전에 조짐이 나타났겠지만 - 마찬가지로 절대 민간 항공기 근처에도 갔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만약, 만약, 만약...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정확히 아는 게 없다. "왜 그에게 비행기 조종을 허락했는가?"라는 식의 제목을 뽑는 에디터들도, 또 "정신 나간 사람이 어떻게 조종실에 들어갈 수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도 사실을 정확히 모른다. 언론들이 아는 것이라곤 그가 앓던 병이 적힌 찢어진 노트 조각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가 2009년에 아팠다는 사실이다. 많은 기자들이 그의 병이 우울증이었다고 단정했는데, 독일 언론과 BBC는 당국과 믿을 만한 취재원을 인용해 이를 부인했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아는 것은...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사들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확한 자료나 정보도 없이 진실을 결정했다.

물론 루비츠가 우울증 환자였다고 결론이 나고 언론사들은 "그것 봐! 그런 제목을 올리길 잘했지!"라고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런 행동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을 정확히 모르면서 그런 제목을 뽑는 것도 옳지 않지만, 만약 루비츠가 정말 우울증 환자였다고 해도 그런 식의 기사로 1면을 도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보도는 끔찍한 행동을 사람이 아닌 병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비행 직전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치자. 그리고 그런 내용이 적힌 노트 조각을 찾았다고 치자. 이 경우에도 이번 알프스 참사를 암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언론은 독일 부기장의 슬픈 암이야기를 다루고 있을까? 만약 그가 천식을 앓았고, 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갑자기 기침이 심해져 비행기가 추락했다며,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천식 환자라고 해야 하나?

루비츠는 용서받을 수 없는 명확한 잘못을 저질렀으며, 그의 병력도 당연히 중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지만 이해는 부족한 우울증에 대한 오해와 터부를 악화시킨다. 병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면서 공포를 퍼뜨리는 데는 선수인 언론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비약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엔 우울증을 앓는 의사들도 있다. 치과 의사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고 상담도 받는다. 한때 아팠던 사람이 지금은 멀쩡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다루는 뉴스의 '통찰력'에 따르면, 이들은 수술도 하면 안되고 위험한 약품이나 날카로운 물체에는 접근해서도 안 되는 것인가?

또 난 우울증을 겪은 선생님들도 안다. 만약에 우울증 때문에 '정신적 도움'을 받고 있던 어느 선생이 학교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면 "왜 이런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게 내버려두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뉴스가 나올까? 슬프게도 아마 그런 짓을 하는 언론이 있을 것이다.

이런 보도 행태는 마녕사냥이 횡행하던 중세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루비츠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한들 그는 수백만 명의 우울증 환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군인, 변호사, 판사, 기차 조종사, 엔지니어, 화가, 경찰, 은행원,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도 우을증을 않는다.

1986년 나도 정신적 문제를 겪었다. 장기간 내재됐던 문제가 터져나온 것이다. 당시 다니던 신문사에서 내 증상을 눈치채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알고 있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결국 병원에 가야 했다.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스트레스가 많은 일을 할 때 등 가끔씩 우울증을 겪었다. 한 번은 도저히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워 동료에게 대신 업무를 부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할 일은 스스로 감당했다.

대변인이나 기획자가 하는 일은 비행기 조종사나 의사, 또는 아이들로 꽉 찬 교실의 선생님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하다.

다만 내게는 다른 많은 우울증 환자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내 상태를 이해하는 가족과 상사와 동료들, 그리고 훌륭한 주치의가 있었다. 내가 겪는 문제를 공개해도 나를 탓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 주변엔 "정신 차려" 같은 말도 안 되는 조언을 하는 사람보다는 "괜찮아? 휴식을 갖든지 의사를 만나는 게 어때?"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루비츠 씨 병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병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알기 때문에 뉴스 보도를 무조건 믿지 않는다. 나는 '변화의 시기 캠페인'(정신병에 대한 오해를 없애는 캠페인)을 하며 많은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때때로 정신적 문제 자체보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또 의사에게 자기 상태를 설명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왜일까? 그들은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태도가 바뀔까 걱정하는 것이다. 직장 상사가 자신감 있는 직원을 하루 아침에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혼자 병을 견디다 증세가 악화되고, 결국 다른 사람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정신병에 대한 오해와 터부가 이런 상황을 조장한다. 이는 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편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무지한 척하며 사실을 오도한 언론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언론은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며 아주 작은 '정보'를 인용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수백만명에게 먹칠을 했다. 이런 행태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동등하게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보건 당국의 원칙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언론은 상황을 퇴보시키고 있다. 우리가 더 열심히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K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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