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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촉탁직과 23개월간 16번 쪼개기 계약

ⓒhyundai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 생산직인 한 기간제 노동자와 23개월 동안 16번에 걸친 ‘쪼개기 계약’을 한 뒤 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차는 이 과정에서 13일짜리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기도 했다. ‘쪼개기 계약’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거센 가운데, 세계 5위의 자동차업체가 불안정 노동을 확산시킨다는 비판이 인다.

<한겨레>가 29일 입수한 현대차 기간제 노동자 박아무개(25)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이유서를 보면, 현대차는 2013년 2월25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23개월 동안 울산공장 아반떼 조립공정에 박씨를 고용하면서 모두 16차례에 걸쳐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평균 근로계약 기간은 44.1일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는 13일짜리(2013년 7월28일부터 8월9일) 근로계약도 들어 있다.

‘쪼개기 계약’은 중소기업중앙회와 2년 동안 7번의 근로계약을 맺은 여성 기간제 노동자 권아무개씨가 상사의 성희롱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전환만 믿고 일하다 해고된 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문제로 불거진 바 있다. 현대차 박씨의 경우 권씨에 비해 2배 이상의 쪼개기 계약이 이뤄진 셈이다.

심지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일부터 시킨 사례도 드러났다. 2013년 4월1일부터 5월 말까지 맺은 근로계약서는 실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가량 뒤인 5월6일에야 썼고, 7월부터 일을 시작하고도 근로계약서는 10월1일에야 쓴 경우도 있었다. 근로계약서 없는 노동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2014년 1월1일과 노동절인 5월1일은 공장 가동을 멈추고 쉬는 날인데도 박씨는 근로계약서를 쓰기 위해 출근하기도 했다.

박씨 사건을 맡고 있는 노무법인 참터의 이병훈 노무사는 “박씨와 현대차가 맺은 근로계약은 형식에 불과했다. 박씨는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을 한 2013년 4월부터 이미 기간의 정함이 없는 현대차 소속 근로자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게 아니더라도 현대차 쪽이 정규직 전환을 암시한 만큼 박씨는 자신의 계약이 연장 또는 갱신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근로계약이 끝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엔 노동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것으로 기대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현대차가 박씨 같은 기간제 노동자를 ‘촉탁직’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현장에 본격 투입한 건 불법파견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2012년 대법원이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를 촉탁직 노동자로 돌려 쓰기 시작했다. 신규 채용 등을 포함해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촉탁직 노동자는 현재 3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낸 촉탁직 모집공고는 “최고 근무기간은 1개월 내지 6개월 내에서 정한다”고 돼 있어 현대차에서 일하는 촉탁직 노동자의 상황은 박씨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촉탁직 계약기간과 관련한 전반적인 상황은 따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대차가 16차례에 걸친 쪼개기 계약 과정에서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고문’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2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13년 2월 입사 전 현대차 인사팀 관계자가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채용이 될 수 있다’고 하고 입사 뒤에도 정규직인 차장이 ‘청소와 일을 열심히 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해 23개월 동안 월차휴가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일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대차 촉탁직 가운데 지금까지 2년을 채워 정규직이 된 이는 한 명도 없다. 현대차는 3월18일 부산지노위에 낸 답변서에서 “현재까지 이 사건 사용자(현대차)에게 촉탁계약직으로 고용돼 근로를 제공한 수많은 근로자 중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밝혔다. 과도한 쪼개기 계약에 대해서는 “언제까지 (인력)수요가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기 근로계약기간을 설정하면 인력운용에 차질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기간 근로계약을 맺고 필요할 때 이를 연장하는 방법으로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계약직 2년 넘기전 ‘해고’

갱신기대권 인정될 땐…법원, 위법판결 내리기도

현행 ‘기간제 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회사가 이른바 계약직 노동자와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고 일을 시키다 계약기간이 2년을 넘기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상당수 회사가 이 의무를 피하기 위해 2년을 넘기 전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끝맺는다. 그러나 법원은 때로 ‘갱신 기대권’을 들어 근로계약 종료가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한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1월 한 공익재단에서 2년 동안 기간제 계약을 맺고 일하다 해고된 노동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회사가 지속적으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암시하거나 해당 노동자가 맡은 업무가 기존 정규직이 하던 업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어 “정당한 인사평가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2011년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계약 갱신의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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