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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사가 김이나 "좋은 가사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 박수진
  • 입력 2015.03.29 12:45
  • 수정 2015.03.29 12:48
ⓒ한겨레

말이 먼저고 글이 나중입니다. 글이 실은 말을 기록하는 수단이었다는 평범한 사실을, 우린 종종 잊습니다. 글쓰기 강좌가 많습니다. 글쓰기 책도 많습니다. 좋은 글쓰기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말이 직업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최근 작사법 책을 펴낸 작사가 김이나씨를 만나 글과 말에 대해 대화 나눴습니다.

글쓰기 강좌가 아주 많다.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책도 서점 매대에 쌓여 있다. 글쓰기 비법이 글쓰기 책 속에 있다고 착각하는 독자들은 <김이나의 작사법-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문학동네)을 그냥 지나칠지 모른다. ‘나는 아이유 팬이나 브라운아이드걸스 팬이 아니니 굳이 보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작사가 김이나(36)씨는 작사가로서 흔치 않은 인지도를 가졌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나이 사람도 “아이유의 ‘좋은 날’ 작사가”라거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작사가”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에이팝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2003년 성시경씨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작사가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300여곡의 노랫말을 지었다. 엑소 ‘럭키’(Lucky),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조용필 ‘걷고 싶다’ 등 히트곡이 많다. 드라마 <궁><시크릿가든>의 배경음악 작사가로도 참여했다. 2010년 ‘멜론 뮤직어워드’ 송라이터상, 2012~2014년 가온차트 케이팝어워드 ‘올해의 작사가상’ 등 수상 경력이 많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그가 지난 18일 펴낸 <김이나의 작사법>은 작사가 되기, 작사의 노하우, 가수와의 작업 등을 담았다. ‘10대 아이유 팬이 통독하기에 어렵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 만큼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고민을 주로 담았다.

그러나 그를 24일 인터뷰한 것은 대중음악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가수와의 에피소드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말과 글에 대한 고민을 주로 청해 들었다. 작사가는 노래에 말을 붙여 대중에게 파는 직업이다. 태초에 시는 노래였다. 지금처럼 지하철에서 눈으로 읽는 글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낭독하며 운율(라임)을 감상하는 작품이었다. 작사는 입으로 불리는 것을 전제로 한 활자다. 말과 글의 경계에 있다. 좋은 글과 좋은 콘텐츠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통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작사법 책이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24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빌딩 7층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그의 목소리는 외모가 주는 밝은 이미지와 조금 달랐다. 약간 저음이었고 허스키했다. 장난기가 섞인 ‘해요체’를 구사해 얼핏 들으면 가볍게 말한다고 느껴지지만 찬찬히 녹취파일을 들어보면 감탄사나 어조사를 쓰지 않고 말을 적으면 비문 없는 제대로 된 문장이 되는 정확한 말을 구사했다. 작사가로서의 그의 고민을 듣다 보면 활자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얻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가령 ‘문답식 신문 인터뷰는 의미를 중심으로 표준어로 말투의 개성을 세탁한 대담’이라는 깨달음 같은 것 말이다. ‘~다’로 끝나는 남성적인 해라체의 신문사 인터뷰 기사체 원칙에 맞춰 정리한 이 인터뷰 문장들은 작사가 김이나의 말투와 그다지 닮아 있지는 않다.

가사는 듣고 부르는 글

Brown Eyed Girls - Abracadabra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대중들이 흔히 하는 오해에 대한 설명으로 책은 시작한다. “가사는 듣고 부르는 글”이라는 통찰도 그렇고 ‘작사가의 일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곡을 최대한 살리는 발음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라는 지적도 그렇다. 작사가가 좀 더 자유롭게 가사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발라드와 달리 댄스곡은 발음의 흐름에 신경써야 한다는 서술도 흥미로웠다. ‘아브라카다브라’는 성공 사례일 텐데 실패한 댄스곡 가사 작업 중에 가장 기억나는 게 있나?

= 실패는 많지만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가 가장 기억난다. 의뢰가 왔을 때, ‘데모 가이드’(작곡가가 작사가에게 작사를 의뢰할 때 곡에 붙여 보내는 가상의 가사. 발음의 힌트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에 ‘셧업앤(shut up and), 셧업앤, 셧업앤 리슨(listen)’이라고 돼 있었다. 그 어감을 살리려고 멜로디 부분에 ‘턴업앤’(turn up and)이라고 써봤다. 완성된 노래를 보니 가수 휘성이 쓴 가사가 붙어 있었다. ‘철없게, 철없게 살다가 미쳐’로 돼 있더라. 영어 느낌 나게 한글을 쓰는 센스가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자극이 됐다. ‘이건 아직 내 필살기라 할 수 없구나. 더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휘성은 작사 센스가 뛰어나다. 멋있다고 느낀 게 오렌지캬라멜 가사를 작사했을 때다. 오렌지캬라멜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콘셉트에 맞춰 작사를 잘했는데 음악팬 중 일부가 ‘유치한 가사를 썼다’고 휘성을 비난하더라. 그건 휘성이 유치해서 유치해 보이는 가사를 쓴 게 아니라 노래의 전체 콘셉트와 합을 이루게 하려는 건데 일부 대중은 가사만 따로 떼어 ‘휘성의 글’이라고 오해한 거다.

- 작사가 김이나의 개성은 노랫말에 캐릭터를 부여하는 노력과 미묘한 감정 포착 능력이라는 평이 많다. ‘주제(사랑과 이별)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책 대목도 흥미로웠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난 뒤의 여운을 임재범의 ‘어떤 날 너에게’ 노랫말 작사 때 활용했다는 서술에서도 캐릭터와 인간성에 대한 관심이 느껴졌다.

= 그때그때 다르다. <칼의 노래>는 우연히 읽었는데 좋아서 여러번 읽었다. 특히 이순신이 아들 면이 죽은 뒤 소금창고에서 숨죽여 우는 장면 묘사에서 많이 울었다. 나는 이 묘사에서 ‘호랑이가 우는 소리’를 떠올렸다. (김훈의 문장이) 그런 힘을 가진 거잖아. 가사 쓰면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바람이 분다’처럼 사실을 그냥 툭 던지는 문장 같은. 멜로디는 클라이맥스인데 그저 ‘바람이 분다’라는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 게다가 그게 가수 임재범이었기에 더 어울렸을 것이다. 말랑한 보컬이면 그 가사가 안 먹혔을 텐데.

- 똑같은 남자의 이별을 다루는데 케이윌의 노래 ‘이러지 마 제발’에서는 차를 가진 남자로 캐릭터를 일부러 잡았다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내 차에서 한 이별이냐, 택시에서 한 이별이냐, 버스정류장에서 한 이별이냐에 따라 처량의 온도가 달라진다는 지적 등이 흥미롭다.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신은 플롯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저 어떤 캐릭터를 어떤 상황에 집어넣고 난 뒤 그 캐릭터의 움직임을 따라간다고 쓴 적이 있다. 캐릭터에 대한 관찰력의 비결이 궁금하다. 왜 캐릭터에 주목하나?

= <유혹하는 글쓰기>는 제목은 아는데 읽어보진 않았다. 관찰을 좋아하는 제 성향도 있겠지만 (작사가가 되고 나서) 후천적으로 길러진 게 큰 것 같다. 작사가가 된 지 10년째다. 대중가요 의뢰의 90%는 사랑 노래나 슬픈 노래다. 반복해야 한다. 비참하게 버려진 이야기를 한번 했는데 또다시 비참하게 버려진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다. (감정을) ‘나노 단위’로 나누다 보니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비슷한 감정의 가사들로는 승부가 안 된다. 생존하려고 길러진 거다.(웃음)

- 이별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준으로 캐릭터 유형을 6개로 나누고 해당 유형들을 노랫말로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한 부분도 재밌더라.

= 작사가가 되고 나서 심산씨가 번역한 <시나리오 가이드>(데이비드 하워드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를 읽어봤다.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시나리오 작가들의 기본기는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책에서 ‘잠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히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목이 기억난다. 그래서 나도 내가 하는 작사법 강의 때 학생들에게 편의점에서 담배 사오는 장면을 묘사하도록 시킬 때, 삶에 지친 직원인지 아니면 막 일을 시작한 직원인지에 따라 담배를 건네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가르친다. 또는 직원이 흡연자면 ‘말보로 실버 달라’는 주문을 듣고 바로 담배를 찾아서 줄 테고 비흡연자면 찾느라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디테일에 주목하라고 가르친다.”

시나리오 작법 책에서 영감

주로 작사법을 다룬 이 책의 1부는 종종 훌륭한 처세술 책으로 읽힌다. 현실주의자가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어 파는 직업에 다가가는지에 대해, 작가 지망생들이 얻을 교훈이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었기에 작사가가 되겠다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상’을 떠올리는 데 몰입하는 등의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고 그는 썼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초·중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미국에서 다녔다. 어머니는 음대를 나왔지만 실제 직업은 음악과 무관했다. 집에 피아노는 있었지만 정식 음악교육은 받아본 적 없다. 그는 스스로를 “가요빠”라고 말했다. 다른 10대와 다를 바 없이 대중음악을 들었다. 하나 달랐다. 다른 10대들이 가수별로 앨범을 사서 들을 때, 이상하게 작곡가한테 꽂혔다. 녹음테이프를 이용해 작곡가별로 따로 ‘자신만의 콤필레이션’을 만들었다. 처음엔 작사가가 아니라 그저 ‘노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음반기획사에 취직하려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2000년대 초 들어간 첫 직장은 ‘사브 로즈마운트 마린코리아’ 마케팅팀이다. 한국에는 자동차회사로 알려졌지만 정밀 정유탑 등에 사용되는 정밀계측기 등을 팔았다. 그러다 벨소리 등을 취급하는 모바일 콘텐츠 기획사로 이직했다. 2년여간 대리로 일했다. 그런 방식으로 음악에 한발 더 다가갔다. 가수 및 대중음악 종사자들과 만났다. 모바일 콘텐츠 소비자들을 위한 미니콘서트를 열자고 가수에게 기획을 제안하는 일 등을 했다. 2003년 작사가 데뷔 이후 5년간 회사 일을 더 했다. 첫 저작권료는 6만원쯤 됐다. 2008년부터 작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 작사가가 됐다.

365페이지에 걸친 이 책에 고개를 끄덕이게 할 반복되는 메시지는 세개다. 가사는 귀로 듣고 입으로 부르는 글이다. 작사가는 시인·소설가와 달리 협업을 해야 한다. 작사는 가수가 부르는 이야기이지 작사가가 쓰는 글이 아니다. 대중음악의 대부분 소재는 사랑과 이별이다. 작사가들의 실력은 같은 주제를 새롭고 신선하게 다루는 능력에서 갈린다. “가사 속의 캐릭터는 화자(가수)의 성격, 환경, 성별 등 다양한 요소로 이뤄지는 한 명의 가상인물이다… 나는 작사 작업을 앞두고 가장 먼저 곡의 분위기를 파악한 뒤 이 캐릭터 설정 단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소설의 캐릭터 설정이나 논픽션의 캐릭터 취재와 결은 다르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 감정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데 능숙하지 않은 초보 작사가에게 캐릭터는 잘 포착되지 않는다.

- 영화, 소설 등 문화예술 작품 가운데서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나 ?

= <하얀거탑>의 ‘장준혁’ 캐릭터(김명민 분)와 <여인의 향기>의 퇴역 장교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를 좋아한다.

- 독특한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 좀 비틀어진, 뭔가 병적인 게 있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캐릭터 자체가 기억나는 건 이 정도고, 보통 재미로 책을 읽으면서 캐릭터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에게 주목한다. <칼의 노래>를 읽어도 ‘이순신이 멋있다’가 아니라 ‘김훈 멋있다’라고 느끼는 거지.

- 저널리즘을 읽는 건 작사에 큰 도움이 안 되겠다.

= 아니, 그렇지 않다. 신문 인터뷰라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다.(웃음) 작사법 강의할 때도 기사 읽으라는 말을 한다. 향수 살 때 계속 시향(구매 전에 시험삼아 냄새를 맡아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코가 무뎌진다. 그때 커피 원두 냄새를 맡으면 다시 후각을 되찾을 수 있다. 신문 기사들이 내게 그렇다. 딱 팩트만 나열하고 은유나 비유 없이 쓰인 기사는 내게 커피 원두다. 가사를 쓰기 위해 단어에 빠져 있다 보면 그 단어의 감정의 늪에 빠져 단어들이 점점 느끼해진다. 그때 아무 기사나 클릭을 해서 읽는다. 특히 정치기사처럼 가장 건조한 걸 읽는다. 그러면 마치 시향하고 나서 커피 냄새를 맡을 때처럼 단어에 대한 느낌들이 정화된다.

- 글을 잘 쓰고 싶은 대중들이 당신 책에서 어떤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 글쓰기 팁은 제가 할 게 없다. 글쎄, 굳이 말하자면 수사 없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글쓰기의 기초능력이라 생각한다. 수사를 가지고 노는 것은 그 이후에 하는 게 아닐까. 가령 운동으로 치면 하체 근육 만들어놓은 뒤 엉덩이 근육이나 이두근 등 작은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수사를 다룰 때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수사를 다룰 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판례도 일부러 찾아 읽었다. 재밌긴 한데 좀 어렵다.

‘좋은 글=좋은 문장 쓰기’라고 착각해온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얻을 통찰이 꽤 있어 보인다. 대중적으로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거나, 그렇게 쓰는 것을 폄하해온 글 독자도,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 많아 보인다.

“다양한 테마와 캐릭터를 위해서라도 자꾸 눌러만 놓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지금 내가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이 구질구질한 감정의 원인은 정확히 뭔지, 지금 심경이 어떤지 등등을 세밀하게 살펴보자. 그 누구보다 우선 나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응시할 줄 알아야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김이나의 이 문장에서 ‘대중의 공감대’를 ‘좋은 글’로 바꿔도 그리 틀린 답은 아닌 것 같다. 이연실 편집자의 도움이 없었으면 원고를 제대로 완성할 수 없었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노랫말 외에 책으로 푸는데 “정신질환 걸릴 뻔”했다는 이 ‘복화술사’는 두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24일 북콘서트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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